쌀가공산업 육성법… “기본계획 없는 속빈 강정”

 

시행 후 2년여 동안 ‘논의중’… 사실상 ‘방기’ 수준

통계업무 ‘개점휴업’… 쌀가공산업 집적화 ‘뜬구름’

글 싣는 순서
Ⅰ. 외부 변수에 일렁이는 쌀가공산업
Ⅱ. 쌀가공산업 육성법...기대와 현실
Ⅲ. 농업의 미래동력, 쌀가공산업의 가능성은?
Ⅳ. 농업과 쌀가공산업의 연계방안 및 현안진단 토론회




정부는 지난 2011년 11월 22일 국회가 의결한 ‘쌀가공산업 육성 및 쌀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쌀가공산업육성법)을 공포했다. 이후 6개월 후인 2012년 5월 23일 시행에 들어갔다. 그러나 쌀가공산업육성법이 시행된 지 2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쌀가공산업 육성의 근간이 될 기본계획조차 수립되지 않고 있다.

쌀가공산업육성법 제5조(기본계획의 수립)는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은 쌀가공산업의 육성과 쌀 이용의 촉진을 위하여 5년마다 쌀가공산업 육성 및 쌀 이용에 관한 기본계획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지금까지 정부가 방기하고 있는 쌀가공산업육성법이 담고있는 주요 내용을 짚어본다.


◆ “쌀값 안정 및 쌀가공산업 경쟁력 제고, 농가소득 증대”

“쌀의 새로운 수요 개발과 쌀을 이용한 가공품의 품질향상 등 쌀가공산업의 육성 및 쌀 이용 촉진에 필요한 사항을 정하여 쌀 가격의 안정과 쌀가공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고, 쌀 생산 농가의 소득증대와 국가경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쌀가공산업육성법 제1조가 밝히고 있는 목적이다.
 
쌀가공산업육성법은 지난 2011년 1월 18일 의원입법(당시 민주당 유선호 의원 대표발의)으로 발의됐다. 이에 앞서 2010년 11월 24일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쌀이용 촉진 및 쌀산업 활성화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 지난 2010년 11월 2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쌀 이용 촉진 및 쌀 산업 활성화에 관한 법률제정을 위한 공청회’ 모습.
당시 공청회에 나섰던 농식품부 민연태 식량정책과장은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이 감소하고 있는 반면, 쌀 공급량은 늘어나고 있으며, 정부의 쌀 소비 확대를 위한 장기적인 대책이 미흡하다”면서 “외국의 경우 쌀 가격안정 및 식량의 안정적 공급을 위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만큼, 쌀의 새로운 수요 개발과 쌀을 이용한 가공품의 품질 향상 등을 담은 쌀 산업 활성화에 필요한 법안”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국회 논의과정에서도 법 제정의 필요성이 부각됐다. 당시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의 검토 및 심사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쌀 가격지원 및 쌀 생산량 통제 외에 쌀 제품의 마케팅지원과 바이오에너지 산업에 쌀 부산물 사용을 장려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일본은 ‘미곡의 신 용도로의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전체 쌀 생산량의 14%를 가공용으로 소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쌀 가공식품 비율은 생산량의 6%에 불과할 뿐 아니라 쌀가공산업은 수입쌀 및 재고미 처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과거에도 몇 차례 쌀가공산업 발전을 위한 정부의 지원이 있었지만, 단기적인 재고처분 위주로 이루어져 쌀가공산업 육성이나 쌀가공식품 연구 개발 등 쌀 소비확대를 위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정책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에 따라 쌀가공산업육성법을 통해 장기시책을 마련하고, 쌀가공산업 활성화로 재고미 및 식량안보, 쌀값 하락으로 인한 농민들의 소득감소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입법의 필요성이 크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후 국회 농식품위와 법사위 심사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됐고, 2011년 10월 28일 본회의를 통과한 후 2011월 11월 11일 정부로 이송, 같은 달 22일 공포됐다.

◆ 쌀가공산업육성 5개년 기본계획 2년여 째 ‘방기’

쌀가공산업육성법은 제1조(목적)에서 △쌀 값 안정 △쌀가공산업의 경쟁력 제고 △쌀생산농가의 소득증대 등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를 위한 시책을 수립·시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제3조(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무)의 내용이다.
그럼에도 정부의 쌀가공산업육성 기본계획이 방기되면서 지방자치단체의 시책까지 정체시키는 민폐를 양산하고 있다.

제5조(기본계획의 수립)가 핵심이다. 5조는 농림축산식품부장관으로 하여금 쌀가공산업의 육성과 쌀 이용의 촉진을 위한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시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부의 방기가 기적되는 부분이다. 이미 2년여가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기본계획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쌀가공산업육성법이 정한 기본계획에는 △쌀가공산업 육성 및 쌀 이용 촉진에 관한 기본 목표 및 추진방향 △쌀가공산업 관련 기술의 개발 및 보급 △가공용쌀의 안정적 수급 △쌀가공산업 전문인력 육성 △쌀가공산업과 농업 간의 연계 강화 △쌀 및 쌀가공품의 소비촉진과 유통지원 등의 내용을 포함하도록 하고 있다.

▲ 쌀가공산업육성법 제20조(홍보전시관 등 설치·운영의 지원)에 따라 문을 연 쌀 박물관 오픈식(2012년 1월 10일) 모습.
(경영개선 지원)은 쌀가공사업자에 대한 원료조달, 시설개선, 판로개척 또는 컨설팅 등을 통한 경영개선 지원을 담고 있다.
쌀가공산업육성법은 본 기획의 대주제와 상통하는 ‘농업과의 연계강화’에 대해서도 담고 있다. 제7조(농업과의 연계강화)는 “농업인 또는 생산자단체와 쌀가공사업자가 쌀가공품 생산에 필요한 쌀에 대한 공동구매, 계약재배 등 농업과의 연계강화 사업을 추진할 경우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다”고 명기하고 있다.

특히 ‘계약재배’, ‘전용 재배단지’는 쌀가공산업육성법 전반에 걸쳐있다. 제8조(가공용쌀의 안정적 공급 등)에서 담고있는 ‘가공용쌀 재배단지’, 제17조(쌀가공산업의 집적 활성화)의 ‘쌀가공산업단지 조성’ 등. 쌀가공산업의 안정적 원료공급이나 농업과의 연계강화를 위한 곳곳에서 ‘계약재배’, ‘전용 재배단지’ 등은 빠질 수 없는 단골메뉴이다.

실례로 정부는 지난 2010년 쌀 산업발전 5개년 종합계획을 마련하면서 가공용쌀 전용재배단지 조성사업과 가공용쌀 계약재배(논 소득기반 다양화 사업)를 포함시켰다. 그러나 가공용쌀 전용재배단지는 아직 뚜렷한 성과가 없다. 대신 2011~2013년까지 운영된 가공용쌀 계약재배사업은 쌀가공업체와 생산농가간 계약을 통해 가공용쌀의 생산·공급 관계 구축에 일정부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부는 생산농가의 농업소득 보전을 위해 ha당 220만원을 지원, 쌀가공업체의 가공용쌀 구입단가를 낮춰 쌀가공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담보시켰다. 이 사업에는 전국 23개 시·군에서 50여개 조직이 참여했다. 계약재배 첫해인 2011년 902ha로 시작해서 2012년 2,786ha, 2013년 3,766ha로 늘어났다.

그러나 시범사업 종료 이후 2014년 가공용쌀 계약재배 지원사업은 소멸됐다. 최근에는 2015년 계약재배 지원사업을 재계하기 위해 신규사업으로 예산안을 마련해지만, 농림축산식품부 자체심의에서 조차 탈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 쌀가공산업단지조성 ‘뜬구름’… 시작도 못한 통계조사

쌀가공산업육성법의 제16조(통계조사)는 쌀가공산업의 육성과 쌀 이용 촉진에 필요한 정책적 효율성을 담보하기 위한 통계업무를 담고 있다. 쌀가공산업육성법 시행령에 따르면 쌀가공산업 관련 통계업무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위탁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쌀가공산업육성법 기본계획이 수립되지 않으면서, 관련 통계업무는 시작조차 못하고 있다. 통계는 정책수립의 기반이 되는 기초자료를 생성하는 업무이다. 이를 위해서는 인력, 예산, 전산 장비 등의 프로그램이 충분히 확보되어야 함에도 아직까지 관련예산이나 인력 등에 대한 어느 것도 결정된 바가 없다. 단지 통계업무를 aT가 담당한다는 것 외에는. 그나마 최근 들어 논의되고 있는 쌀가공산업육성법 기본계획에서 매년 3억원 정도의 예산이 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쌀가공산업 관련 통계는 뚜렷한 작성주체가 없었다. 그나마 가공용쌀 배정업무를 담당하는 한국쌀가공식품협회가 회원사를 중심으로 파악한 △쌀가공식품 산업동향 △품목별 쌀가공업체 현황 △연도별 가공용쌀 공급현황 및 소비량 등에 대한 내부 업무자료 등이 전부였다.

쌀가공산업육성법 제17조(쌀가공산업의 집적 활성화)는 쌀가공산업과 농업 등 관련 산업의 상호연계를 위해 쌀가공산업단지를 조성하는 등의 쌀가공산업의 집접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쌀가공업체들은 수도권에 몰려있다.

2011년에 사용된 가공용 정부양곡 23만4,000톤 가운데 57%(13만6,000톤)이 서울, 경기, 인천, 충남에서 사용됐다. 이는 쌀가공산업의 원료쌀 생산과 가공이 지역적으로 분리되어 있음을 뜻한다. 쌀가공산업육성법이 의도한 집적화는 원료쌀의 생산과 가공을 한 곳에 모아 상승효과를 노리기 위함이었다. 의도는 그럴싸했지만, 현실은 뜬구름이다.

쌀가공업체들의 지방이전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던 농식품가치연구소 장인석 소장은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쌀가공기업의 지방 이전으로 원료쌀의 생산주체와 쌀가공식품의 생산 및 판매주체간에 상호 유기적인 협력관계를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면서 “그러나 업체들의 지방이전에 관한 의향을 조사해본 결과 물리적인 지방이전은 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장 소장은 “다만, 지자체의 정책사업이나 가공용쌀 재배단지 지정사업 등과 연계해 정부가 일정규모의 지원안을 제시한다면 지방이전을 검토할 수 있다는 업체의견이 있다”면서 “중장기적으로 쌀가공산업과 농업의 상생협력과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측면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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