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작인디요. 하지감자 수확험서 아무말도 못했어라…”


양파·감자·고추·무 등 가격폭락에 ‘갈아엎기’ 확산…농업·농촌 ‘신풍속도’

정부 통계조사, “송아지값 1만원으로, 육우 생산비 낮다” 분석

상위 5% 위한 엘리트 농정 편중…“농업보호대책 될 수 없다”




‘수입증가→작목전환→공급과잉→가격하락→소득감소’.
예전에는 전문가들 사이에 FTA가 진행되면 이런 과정을 거쳐 농업이 쇠락의 길로 접어들 것이라는 예측이 쏟아졌다. 헌데 최근 상황을 예의주시해보면 모든 현안이 한꺼번에 몰아치고 있다. 품목전환의 여지도 없고, 정부의 지원대책을 기다릴 새도 없이 풍랑에 허우적거린다.

‘생고매저(生高賣低)’. 지금 농촌 현장은 생산해서 출하하기까지 품값, 자재비 등은 물가상승분을 뛰어넘도록 비싸지는데 반해, 농산물을 제값받고 팔았다는 기억은 가뭇하다. FTA를 받아들인 후 농업·농촌·농민은 시나리오대로 고사하고 있다.

생산비에 털린 인생

경기도 화성에서 낙농을 하는 한 모씨(59)는 얼마전 육우 20마리를 급처분했다. 쉽게 말해 공짜로 내다줬다. 그간 젖소와 육우를 같이 길러왔지만,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이르렀다. 육우 송아지 가격이 최근 3년간 1만원대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 예전만 하더라도 30만원대를 호가하던 것이, FTA 영향을 받고 부터는 마리당 생산비 손해만 140여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계산됐다.

한 씨는 “미국 유럽 등과 FTA를 맺은 것부터 한우 사육두수가 늘어난점, 또 쇠고기 수입량이 급증한 것 등이 육우사육을 포기하게 했다”면서 “전국에 낙농가들이 공통적으로 육우사육을 회피하는 실정이지만, 낙농업에서 육우사육은 빠뜨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최대 난제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한 씨는 “대책을 내놓는다며 뜬금없이 송아지요리 운운하더니만, 이조차 용두사미가 됐다”고 정부의 정책부재를 질타했다.

생산비가 높은 것과 출하가격이 낮은 것으로 인한 모순된 현상은 정부의 통계발표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최근 통계청이 내논 2013년 축산물 생산비조사 자료를 보면, 송아지, 우유, 육계는 전년대비 생산비가 증가했고, 한우비육우, 육우, 비육돈, 계란은 생산비가 감소했다고 나온다. 생산비가 줄어든 축종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송아지, 병아리 등의 가축비가 줄었기 때문으로 설명하고 있다.

송아지에게 사료를 먹이는 등 높은 값을 지불하고 소를 길러 다시 송아지를 생산해서 가격이 1만원대 형성한 것을, 송아지 생산비가 늘고 육우 생산비가 줄었다고 통계한 것이다. 생산비를 줄이는 방법은 소를 기르면서 송아지를 생산하지 않으면 된다. 기막힌 계산법이다.

결국 한씨는 20마리의 육우송아지를 처분했고, 곧 낙농업도 처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지난 3일 전남 구례에서 풍작을 이룬 감자수확을 끝낸 이정철씨(47)는 걱정 덩어리를 안고 있다. 지난해 감자값 폭락의 여파가 올해로 이어지면서 강원지역을 중심으로 아직 재고가 많은 것을 알고 있어서다. 올 4월만해도 농산물시장 감자가격은 황특 20kg기준으로 5천~8천원선에서 거래됐다. 전년도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가격이다.

씨는 “하지감자를 수확하면서 풍작으로 기분이 좋을 법도 하지만, 서로 말도 하지 않을 정도로 조심스러웠다”면서 “지난해보다 감자재배 농가가 감소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예전같이 가격이 오르리라고는 기대하지도 않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작물도 매한가지. 전남 무안과 함평을 시작으로 전국 양파 수확이 한창인 5~6월, 지난해에 이어 양파가격 폭락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쌓인 재고 양파에다, 올해 햇양파 수확량도 만만치 않은 풍작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5월중순 현재 kg당 양파값은 500~600원선으로 바닥이다. 지난해보다 2배이상 낮아진 가격이다.
이같은 현상은 무와 배추, 당근, 파 등으로 이어져 지난해보다 20%이상 폭락한 채 시장에 팔리고 있다.

 경제론이 만든 농업 ‘생존학’

FTA 관련, 경제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상대국에 비교우위가 있는 상품은 경쟁력에서 밀려 해당산업이 몰락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또한 “FTA는 대외수출을 장려·성장시킬 수 있는 좋은 수단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그러한 대외수출로 이익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산업으로 해석되는 농업은 부가가치가 떨어지는, 개량이 필요한 고철덩어리다. 농지는 도시인의 투기대상이고, 수출 문턱에 걸리는 농업분야는 가지치기가 필요한 정책 대상인 것.
정부가 농업·농촌·농민 ‘3농’을 아울러 보호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로, 이러한 산업화 과정의 비효율성을 지목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윤석원 중앙대 교수는 “최근 5, 6년간 우리의 농가소득은 도시근로자 가구 소득의 절반 수준으로 하락했다”면서 “농민은 보이질 않고 산업으로서의 농업 중심 정책을 구사하거나, 상위 5%이내의 엘리트 농민과 농업을 위한 농정에 편중돼 있다”고 꼬집었다. 농정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농업·농촌의 지속 가능성은 있을 수 없다는 지적을 덧붙였다.
결국 현재의 FTA협상을 진행하기 위한 농업에 대한 보호대책은 산업분야로서만 필요한 지원이 있을 뿐이란 것이다. 

10년이 넘은 한칠레FTA로 국내 포도 생산은 34% 감소했고, 재배면적도 1만ha가 사라졌다. 대체 과일로 분류되는 딸기와 감귤에도 막대한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연평균 12.9%씩 수입이 증가하고 있는 칠레산 돼지고기는 이미 돼지고기 시장의 수급조절용으로 자리를 굳힌 상태다. 해마다 관세가 낮아짐에 따라, 국내 양돈업계의 가격 기대치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잠재된 우려사항을 무시하고 있다. 오히려 FTA로 인한 수출입 규모 확대를 홍보하고 있는 중이다. 관세청이 최근 내논 ‘2013년도 FTA 체결국과의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FTA 미체결국과는 수출입 증가율이 1.3% 증가에 불과했으나, FTA체결국과는 3.5% 증가했다고 밝혔다.

특히 FTA체결국과의 수출입 중에서도 FTA 혜택품목군의 수출입이 FTA 비혜택품목군의 수출입보다 크게 증가, FTA가 수출입 증가에 기여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덧붙였다. 아무 문제없이 잘되고 있다는 자화자찬인 것이다.

올초까지 영연방 3개국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와 FTA를 체결하거나 약속한 것을 보면, 농업분야를 보호하겠다는 인식이 전혀 없다는게 뚜렷이 감지된다. 축산선진국인 이들과의 무역개방 선언은 한우농가의 피해는 물론 중장기적인 축산업 붕괴를 의미하기에 충분하다. 현재 40% 수준(호주)의 쇠고기 수입관세가 2030년이 되면 완전 사라지고, 국내 쇠고기시장은 ‘국제육류유통센터’로 바뀌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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