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변수에 일렁이는 쌀가공산업...‘원료수급 불안’

 
 잉여쌀 처분창구 ‘태생적 한계’…저가공급에 ‘일희일비’

쌀가공산업 집적화 단지 조성…“원료 자립기반 마련해야”



글 싣는 순서

Ⅰ. 외부 변수에 일렁이는 쌀가공산업
Ⅱ. 쌀가공산업 육성법...기대와 현실
Ⅲ. 농업의 미래동력, 쌀가공산업의 가능성은?
Ⅳ. 농업과 쌀가공산업의 연계방안 및 현안진단 토론회



지난 2011년 11월 22일 제정된 ‘쌀가공산업 육성 및 쌀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쌀산업육성법)에 따르면 ‘쌀가공품’ 이란 “쌀(벼·현미와 그 도정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을 원료 또는 재료로 하여 가공한 식품 또는 제품”을 뜻한다. 특히 쌀가공품은 감소하고 있는 쌀 수요를 확대할 수 있는 대안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에 우리 농업의 미래동력으로 쌀가공산업과의 지속가능한 연계방안과 그 가능성을 4회에 걸쳐 짚어본다.

◆ 쌀가공산업의 태동...1985년, 재고미 처분 할인공급 시작

▲ ‘2013 쌀가공식품산업대전’에 참석한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사진 가운데)과 박관회 한국쌀가공식품협회장(사진 좌측)이 ‘떡담’의 즉석 떡 제조과정을 지켜보며 시식하고 있다.
우리나라 쌀가공산업의 본격적인 태동은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부는 재고미 소진을 위한 정책적 판단에 따라 국내 13개 제과업체에 가공용 정부미를 일반 방출가격보다 10% 정도 싸게 공급하며 쌀가공식품의 개발을 독려했다.

1986년에는 쌀빵, 쌀라면, 쌀국수 등 구체적인 제품생산을 지원하기 위해 3년 이상 묵은쌀 1,500톤을 kg당 480원(정부 방출가격보다 15.7% 할인) 수준에 쌀가공업체들에게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는 당시 정부가 밀가루의 2~3배에 달하는 쌀가루 가격이 가공식품 개발을 막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이다.

이후 쌀가공식품을 위한 정부의 재고미 공급정책은 1987년 1만 톤, 1988년 2만2,000톤으로 늘어났다. 이 같은 정부의 지원에 따라 1987년 ㈜기린을 통해 쌀과자가 처음으로 생산됐다. 수원에 식품연구소와 수원공장을 세운 ㈜기린은 본격적인 쌀과자 생산에 들어갔고, ‘쌀로별’과 ‘쌀로본’ 시리즈를 첫 출시했다.

㈜기린의 쌀과자는 1988년 올림픽과 함께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당시 쌀과자는 비스킷, 스낵류 등에 비해 당분과 색소 등의 함유량이 적고, 쌀을 주원료로 사용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어린아이와 노인들의 간식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언론자료에 따르면 ㈜기린의 쌀과자 매출은 1987년 6억원에서 1988년 36억원으로 9배나 성장했고, 1989년에는 80억원으로 급증했다. 1990년대 들어 쌀시장 개방문제가 부각되면서는 수요가 더욱 늘어나 1992년에는 쌀과자 매출이 180억원을 기록했다.

이후 1990년에 ㈜농심이 쌀과자 시장에 뛰어들었고, 1993년 5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그러나 쌀과자 시장이 급성장을 기록하고 있었음에도 국내 농업과의 연계는 미약했다. 특히 일부 대기업들이 대만과 태국 등에서 값싼 쌀과자를 수입·판매하면서 갓 형성되기 시작한 국내 쌀과자 시장을 진탕시켰다.

이 시기 정부는 110~214만 톤의 재고미 과잉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10% 혼식 의무비율을 폐지(1986.11) △정부미 10분도 규정 해제(1989.5) △쌀막걸리 제조 허용(1990.11) △쌀가공업체 시설현대화자금 285억원 지원(1988~1991) △증류식 소주 제조에 쌀 허용(1991.9) △밀가루 수준으로 쌀 공급가격 인하(kg당 250원) 등 쌀소비 촉진을 위한 규제완화 정책이 펼쳐졌다.

◆ 자립기반 없는 산업성장...10년만의 드러난 맨얼굴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과 파격적인 재고미 할인공급은 쌀가공산업의 급격한 성장세를 가져왔다. 1986년 10여 개에 불과했던 가공업체 숫자는 정부의 지원 속에 1994년 940개로 대폭 늘어났다. 정부가 공급하는 가공용쌀 소비량도 1만3,000톤 수준에서 20만 톤 규모로 급증했다. 정책지원이라는 급물살을 탄 쌀가공산업은 내실을 따져볼 겨를조차 없이 빠르게 흘러갔다.

러나 곧 위기가 찾아왔다. 1993~1994년 기상재해로 인해 생산량이 크게 감소했다. 그럼에도 수급상황을 예측하지 못한 정부는 이 시기에 26만6,000톤을 주정용으로 처분했다. 더욱이 1995년에는 예상치 못했던 대북지원 15만 톤까지 처분하면서 1996년 재고량은 25만 톤까지 떨어졌다. 이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권장한 72만 톤을 훨씬 밑도는 물량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가공용쌀의 원료가격을 인상(kg당 250원→1,058원)하고, 공급물량도 축소시키는 등의 규제정책으로 전환했다.

그 동안 저가공급에 길들여져 왔던 쌀가공업체들은 4배 이상 오른 원료쌀 값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정부만 바라보고 원료쌀의 안정적 공급체계를 갖추지 못한 구조적인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2000년도 말 기준으로 절반 이상의 업체들이 문을 닫으면서  407개 업체만이 살아남았다. 가공용쌀 소비량도 6만7,000톤 규모로 축소됐다.

이후 침체됐던 쌀가공산업은 농식품산업 육성을 제창한 MB정권에서 쌀 소비를 위한 정책대안으로 재조명됐다. 이 시기 정부는 △가공용쌀 제품별 가격인하(kg당 쌀가루용 355원, 떡류 및 과자류 709원 등) △쌀가루 소비촉진운동(R10) △떡볶이, 막걸리 등 주력품목 홍보 추진 등의 정책을 펼쳤다.

이 같은 정책변화의 결과는 곧 시장규모의 확대로 나타났다. 한국쌀가공식품협회의 업무자료에 따르면 쌀가공산업의 매출규모는 △2009년 1조8,000억원 △2010년 2조1,000억원 △2011년 3조3,000억원 △2012년 3조5,000억원으로 분석됐다. 또한 쌀가공업체는 2012년 기준 924개로 조사됐고, 가공용쌀 소비량은 42만 톤으로 늘어났다.



◆ 정부의존형 기형적 산업구조....“원료쌀 자립기반 구축해야”

쌀가공산업은 본격적인 산업의 틀을 형성한 지 30년이 채 안됐다. 그럼에도 성장과 침체, 재도약 등 순탄치 않은 과정을 겪어왔다. 특히 쌀가공산업의 굴곡은 태생적 한계에 기인한다. 정부 재고량에 따라 업체수와 시장규모가 좌우되는 부침은 철저한 정부의존형 산업구조임을 방증한다.

쌀가공산업의 정부의존은 저가로 공급되는 원료쌀 때문이다. 정부 입장에서도 의무수입물량(MMA) 으로 들어오는 가공용쌀과 정부비축 재고미의 소진을 위해 쌀가공산업과의 연계는 일정부분 필요해 왔다.
최근 들어 쌀가공산업은 장기적인 사업계획 수립을 위해 안정적인 원료조달 자급기반 마련을 모색하고 있다. 그 동안 정부의 저가공급 정책에 ‘일희일비’ 하면서 순간의 달콤함에 만족했지만, 장기적인 사업계획 수립의 한계를 체감해 왔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쌀가공산업의 자립기반 구축과 원료쌀의 안정적인 수급을 위해서는 생산을 담당하는 농업과의 연계가 필수이다. 농가 입장에서는 지속적인 판로가 확보되고, 쌀가공산업은 원료쌀의 안정적인 수급이 가능해 지며, 국가적 차원에서는 식량생산기반을 유지할 수 있는 이상적인 시스템이 구축된다.

지난 2011~2013년까지 한국쌀가공식품협회 주관으로 가공용쌀 계약재배 시범사업이 추진됐다. 정부는 전국 23개 시·군에서 50여개 조직이 참여한 가공용쌀 계약재배에 1ha당 220만원을 지원했다. 농가들은 정부의 지원을 믿고, 3년 동안(백미 1kg당 △2011년 1,454원 △2012년 1,718원 △2013년 1,642원) 계약재배에 참여했다.

계약재배에 참여했던 쌀가공업체 대부분은 원가절감과 원료의 안정적인 조달 시스템 구축이라는 점에서 지속적인 사업참여 의사를 밝혔다. 또한 계약재배 참여농가들의 과반수 이상 역시 지속적인 사업참여 의견을 표시했다.

계약재배 시범사업을 통해 드러난 문제는 여럿 있다. 우선 다수확 품종의 종자수급과 연구기관의 생산량과 실제 지역별 재배량의 차이, 이로 인한 계약단가의 수정 등이다. 물론 이 같은 문제는 계약주체들 사이의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그러나 계약재배 참여의 가장 큰 전제가 됐던 정부지원이 사라졌다. 시범사업 종료와 함께 계약재배사업도 멈췄다. 모두 정부가 지원하는 ha당 220만원의 보조사업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뚜렷한 이유 없이 예산배정에서 빠진 계약재배 지원사업은 올해 신규사업으로 예산안 심의가 신청됐지만, 농림축산식품부의 자체 심의과정에서 탈락했다.

시범사업에 참여했던 충남의 한 농가는 “정부 지원사업을 바탕으로 계약단가를 합의할 수 있어 기본소득이 보장되는 느낌”이라며 “정부지원은 단순히 돈을 떠나서 업체와의 계약관계에 대한 신뢰를 정부가 담보해 주는 듯한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고 말했다.

계약재배 참여 업체와 농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던 농식품가치연구소 장인석 소장은 “일본은 수년 전부터 ‘가공제품용 쌀 재배면적’과 ‘쌀가루용 재배면적’을 별도로 관리하고 10a당 각각 2만엔과 8만엔을 보조하고 있다”면서 “이를 통해 가공용쌀의 안정적 공급과 가격 경재력을 지원할 뿐만 아니라 지자체와 쌀가공업체간의 제휴를 토대로 지자체가 별도지원(10a당 1만1,000엔~2만5,000엔 규모)을 병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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