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밟힌 코리안 드림… 농촌 이주노동자 인권피해 심각

우리나라 농축산업 분야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2012년 기준 1만7,000여명으로 현재는 2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농촌을 떠나고, 고령화가 이뤄지는 가운데 농축산업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의 비중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농축산업의 경우 외부와 고립된 사업장에서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생활환경으로 인해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특히 저임금으로 고통받기도 한다.
본지에서는 2회에 걸쳐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의 노동 및 인권 실태와 제도적인 문제점을 짚어보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 드러나지 않는 농축산업 외국인 노동자 고통

보디아 출신인 D씨는 2011년 3월에 한국에 왔다. 3일간 한국어 공부를 하고 농장으로 일하러 갔지만 생활은 매일 5시 30분에 일어나서 사장이 시키는대로 멀리가서 일하는 것이 일상다반사였다고 한다.

근로계약서에 없는 장소에서 처음 4개월 동안은 사과, 김치. 계란, 라면으로만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는 전남 일대 17개 장소 47개 밭에서 일해야 했다. 근로계약서에는 월 260시간 노동, 임금 100만원으로 명시되어 있지만 이때 당시 최저임금 시급 4,320원을 적용하면 260시간 노동시 1,123,200원을 받아야 했다.

지역의 고용센터가 승인한 계약서 자체가 최저임금법 위반이
▲ 이주노동자 지원 쉼터 지구인의 정류장을 운영하는 김이찬 씨가 이주노동자들로부터 건네받은 사진. 캄보디아 출신 여성 이주노동자 두 명은 충남 논산에 있는 한 농장에서 9개월여간 일하다 더 참지 못하고 나왔다고 한다. 이들은 사진 속 숙소에서 잠을 자야했고, 취사도구들로 밥을 해먹어야 했다.
었고, 실제 노동시간은 일 평균 11시간, 월평균 28일 298시간이 됐다. 6개월 후에 최저 임금법위반을 알고 자신의 모습을 3개월에 걸쳐 영상에 담았다. 그 후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한 단체의 도움으로 지역 고용센터에 신고, 밀린 월급을 모두 받고 농장을 옮길 수 있었다.
D씨의 사례는 장시간 노동, 저임금, 열악한 생활환경에 놓여 있는 농축산업 외국인 노동자들의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2012년 발간된 고용허가제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인권백서에 따르면 농축산업에 외국인노동자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2003년 산업연수제를 통해서다. 1990년 666만 명이던 농업 인구가 2004년 342만 명으로 줄었고, 전체 농가 중 60세 이상의 농장주가 전체 60%를 넘었다. 이러한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농업 부분에도 산업연수제를 도입해 2003년 7월 923명의 외국인이 외국인농업연수생의 신분으로 들어왔다.

3D업종 제조업의 노동력을 외국인 노동자가 채웠던것처럼 농축산업에서도 외국인 노동자가 그 자리를 메운 셈이다.
출입국 외국인정책본부의 통계월보에 따르면 4월 현재 농업에 종사하는 외국인은 2만1,229명으로 합법체류자가 1만7,339명, 불법체류자가 3,890명이다.

특히 2004년 고용허가제 도입 이후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농축산업 부문이주노동자 도입 쿼터제를 통해 농축산업 외국인 노동자는 매년 150%씩 증가, 2009년 2,000명에서 2012년 4,500명으로 늘어났다.  2013년 도입 쿼터는 6,000명으로 다시 늘어났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고용허가제는 국내 인력을 구하지 못한 기업이 적정규모의 외국인노동자를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농축산업에서도 인력이 부족해지면서 고용허가서를 받으려는 고용주들이 증가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를 채용하기위해서는 먼저 면사무소에서 영농규모 증명서를 발급 받고, 사업장관할 고용센터에 신청해야 한다. 단 외국인 채용시 관할 고용센터에 2주간 내국인 구인신청을 우선해야 한다.
2012년부터 외국인 노동자의 배정을 선착순에서 점수제로 바꿨지만 고령화와 젊은 일손이 부족한 농촌에서는 이들의 고용 수요는 여전히 높다.
하지만 농촌이라는 환경의 특성상 고용 규모가 2〜3명 수준으로 적고 지역적으로 고립돼 있는 경우가 많아 외국인 노동자들이 겪는 상황은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

■ 근로계약서, 최저임금 적용 받기 어려워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2만여명에 육박하면서 이들의 처우에 대한 문제가 사회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지난 해 국정감사에서도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외국인 여성 노동자의 사례가 발표되기도 했다. 당시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한 한 이주여성은 자신은 320시간을 일했지만 해당 지방고용노동청은 120시간만 인정했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에는 국가인권위원회의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 보고서가 발표됐다.

▲ 본지가 입수한 농축산업 외국인 노동자 근로계약서. 2012년과 2013년에 작성된 것으로 2012년 계약서에는 근무시간 오전 6시부터 저녁 6시까지로 적혀있다. 12시간씩 28일을 근무한다고 가정할 때 336시간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하지만 2012년 최저임금 4,580원을 대입하면 1,538,880원 이어야 할 임금은 1,035,080원으로 책정돼 있다.그리고 2013년 계약서에는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의 근무시간이 적혀있다. 월 평균 226시간의 임금은 1,177,460원이 돼야 하지만 1,098,360원으로 적혀있다. 그럼에도 농축산업 외국인 노동자의 근로시간은 여전히 지켜지기 어려운 상황이다.계약서에 명시된 근로기준법 63조에 따르면 농림, 축산, 양잠, 수산 사업의 경우 같은 법에 따른 근로시간, 휴게, 휴일에 관한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다고 돼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161명의 응답자들 가운데 90% 이상인 147명이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이들 중 86명, 58.5%는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된 계약서로 계약을 체결했고 54명, 36.7%는 근로계약서를 교부받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근로계약과 노동조건이 다를 경우에 시비를 가릴 수 있는 근로계약서를 교부받지 못하면 결국은 외국인 노동자에게 불리해질 수  밖에 없다.
또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 가운데 61.1%는 최저임금법을 위반한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있었고, 실제 사업장에서는 90.7%가 이보다 더 긴 시간동안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평균적으로 250시간이 넘는 장시간의 근무시간을 기재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이들의 월 평균 근무시간은 283.7 시간이었고, 경상도의 미나리 재배 농장에서 일한 외국인 노동자는 무려 100시간 가까운 일을 더한 378시간이라고 밝힌 경우도 있다. 하지만 평균 휴일은 한달에 2.1일에 그쳤다. 이렇게 받는 급여는 월 평균임금은 127만여 원으로 법정 최저임금 월 137만8천782원보다 적었다 임금체불, 벌금공제, 강제근로 등도 발생했는데 응답자 가운데 68.9%는 임금 체불을 경험했으며 끝까지 임금을 받지 못한 경우도 32.9%나 됐다. 정해놓은 휴일에 쉰다고 일당을 제한 임금을 받은 응답자는 26.1%였으며, 시키는 대로 일을 하지 않았다고 징계를 받았거나 일을 잘 못한다고 임금에서 벌금을 공제당한 경험이 있는 응답자도 각각 18.6%와 12.4%에 달했다. 또한 휴일에 노동을 강요당한 경우는 57.8%였다.

특히 일이 없거나 적은 농한기에는 23.1%가 임금을 받지 못하거나 일부만 받은 적이 있고, 13.0%가 숙식을 제공받지 못한 적이 있으며, 12.4%가 해고를 경험했었다.
농축산업 이주노동자의 60.9%인 98명은 고용허가를 받은 원 사업장이 아닌 다른 사업장에 보내져 일한 경험이 있었는데, 특히 작물재배업에서 그 비율이 높았다. 다른 곳으로 보내져 일한 경험이 있는 이주노동자의 70.1%는 길어도 1주일 미만의 단기간 동안, 71.4%는 네 번 이상 반복적으로 다른 곳에 보내져 일했다.
앞서 사례를 밝힌 D씨처럼 근로계약서에 없는 농장에서 근무하는 경우도 허다한 것이 사실로 밝혀진 것이다.

이주 노동자의 쉼터인 지구인의 정류장 운영자 김이찬 씨는 “근로기준법을 악용해 일은 많이 시키고 임금은 적게 주는 악행이 고용주들에게서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다”면서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닌 만큼 근로기준법이나 고용허가제 같은 제도를 고쳐서라도 바로 잡아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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