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필리핀 관세화 유예시도 실패에 쌀개방 불가피 시사


농업계, “유예연장이던 고율관세화던 협상 시도해야” 주장


우리나라처럼 쌀관세화 전환 여부를 놓고 고민하고 있는 필리핀이 쌀관세화 유예조치 재연장을 WTO에 요청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상품무역이사회에서 필리핀이 요청한 ‘쌀 관세화 의무의 5년간 추가면제(waiver·웨이버)’ 안건이 부결됐다고 지난 9일 밝혔다. 특히 농식품부는 “필리핀이 MMA 물량 대폭 증량과 이를 희망하는 모든 나라에게 쿼터를 부여하고, 쌀 이외 품목에 대해 관세인하 등 상당한 대가를 제시했음에도 쌀 관세화 웨이버 요청이 부결된 것은 쌀 관세화 유예 종료를 앞둔 우리나라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우리나라가 유예기간 추가연장을 요청해도 회원국 동의를 얻기 어렵고, 설사 연장이 되더라도 필리핀보다 무역규모가 큰 우리나라가 치러야 할 대가도 매우 클 것이라는 전망도 덧붙였다.
그러나 농업계는 정부가 필리핀의 유예연장 요청 부결 소식을 전하면서 우리도 같은 결과를 얻을 것이라며 쌀관세화 전환을 기정사실화하는 정부의 쌀문제 대응자세에 깊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10일 논평을 내고 “필리핀의 협상 결과를 깊게 분석하고 우리의 쌀 관세화 전략을 세워야 함에도 정부가 이를 관세화 정당성을 유포하는데 활용하는 등 쌀문제에 대한 속마음을 미리 쌀수출국에게 알려주는 매우 경박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WTO 상품무역이사회의 이번 ‘부결’ 결정은 (협상 완료가 아니라) 협상의 ‘계속’을 의미한다”고 강조하고, “정부는 쌀 관세화 유예 입장을 제압하는 일에 집착하지 말고, 필리핀의 경우를 절대화 하는 우에 빠져서 협상 의지마저도 포기해서도 안된다”며 신중하고 깊이있게 쌀 관세화 대응전략을 세울 것을 주문했다.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정책연구소 강정현 실장은 “농업인은 유예기간 연장 또는 현상유지(standing still·스탠딩 스틸)를 주장하고 있고 정부는 무조건적인 관세화 전환과 이후 400~500%의 고율관세 부여 가능성을 얘기하고 있지만, 두 가지 모두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반드시 추가적인 협상이 필요한 문제다”면서 “정부가 미리 결과를 예단하고 협상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우리 쌀산업과 식량주권을 책임져야 하는 정부의 자세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강 실장은 또 “정부 생각대로 무조건적인 관세철폐를 표방하는 TPP에 가입할 경우 고율의 쌀관세화 전략도 무용지물이 되므로 쌀문제만큼은 보다 철저한 대비책을 세우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리핀은 2011년부터 쌀 관세화 개방을 5년간(2013~2017) 연기해달라고 WTO에 요청하면서 그 댓가로 의무수입물량을 35만톤에서 80만5천톤으로 늘리고, 의무수입한 쌀에 부과하는 세율을 현재 40%에서 35%로 인하하는 조건을 제시했었다.
그러나 주요 쌀 수출국인 미국, 캐나다, 호주, 태국 등은 필리핀이 제시한 조건 외에 추가 요구사항을 제시하면서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부결’됐다.

우리 정부는 올해 9월까지 WTO에 쌀시장 개방여부를 통보해야 한다며 오는 6월까지 입장 정리를 공표, 사실상 관세화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농업인들은 의무수입물량 증량없이 관세화 유예조치 재연장 가능성을 놓고 협상을 시도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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