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관세 철폐에도 소비자가격 117.2% 상승


미·EU 등 FTA 피해지원… “종합 소득안전장치 마련해야”

한·중 FTA, 밭작물 경쟁력 제고 등…‘반면교사’ 삼아야



우리나라의 첫 자유무역협정(FTA) 상대인 칠레와의 FTA 10년간의 농업분야 성적표는 낙제였다. FTA 발효 후 대칠레 농축산물 무역적자도는 11.3배로 심화됐고, 저장기술의 발전으로 계절관세 효과도 크지 않았다. 또한 소비자의 FTA 관세인하 효과는 수출업체의 독점적 지위와 국내 수입·유통업체의 유통마진 확대로 사라졌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한·칠레 FTA 10년, 농업분야 이행평가’에 따르면 2013년 칠레산 농축산물 수입액은 FTA 발표 전인 2003년에 비해 11.3배 증가한 7억8,000만 달러로 나타났다. 한·칠레 FTA의 대표 품목으로 알려진 포도의 경우 12.2배가 증가했고, 돼지고기 3.4배, 키위 6.8배로 늘어났다.

더욱이 3~5월 사이에 수입이 집중되는 칠레산 신선포도는 국내저장을 통해 5~6월까지 판매되면서 우리나라 시설포도의 성출하기(5~6월) 시장가격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칠레산 포도는 국내 포도농가 뿐만 아니라 3~5월에 출하되는 국산 과일·과채의 소비대체로 수요를 감소시켰다.

관세인하 효과도 사라졌다. 소비자 실익도 없었다는 뜻이다. 45%에 달했던 수입관세는 10년간 균등철폐 됐지만, 소비자가격은 꾸준히 올랐다. 우리나라로 수출된 칠레산 포도의 평균 수출단가는 2004년 0.99달러/kg에서 2013년 2.15달러/kg으로 117.2% 상승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농축산물 수출은 면류(라면, 국수 등)와 과자류, 소스 등 570만 달러에 불과했다. FTA 발효 이후 양국간 농축산물 교역증가율은 19.4%p 증가(11.1%→30.5%)했지만, 그 결과 대칠레 무역수지 적자는 2003년 6,900만 달러에서 2013년 7억8,000만 달러로 더욱 악화됐다.

일부에서 한·칠레 FTA 발효 이후 국내 시설포도의 생산량 증가와 가격상승을 들어 피해가 없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는 FTA 발효와는 별개의 현상이다. 곡물 및 육류소비가 줄고, 과일수요가 크게 늘어난 소비자의 식습관 변화에 따른 것이다. 단지 시기가 비슷하게 맞물렸을 뿐, 국내 과수분야 소비확대 기회요인이 한·칠레 FTA로 인해 박탈된 것이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1인당 과일 소비량과 소비액은 58.1kg. 9만2,000원(2000~2003)에서 63.5kg. 14만6,000원으로 각각 9.4%와 58.3%가 증가했다. 더욱이 도시가계 월평균 과일류 소비지출도 2만7,000원(2003년)에서 4만6,000원(2013년)으로 70% 증가한 것이 방증이다.

더 큰 문제는 칠레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한 시장접근을 허용한 미국, 유럽연합(EU)과의 FTA 다. 한·칠레 FTA의 경우 특별법에 따라 과수 부분에 7년간 1조255억원(폐원지원 2,377억원, 경쟁력제고 7,879억원)의 투융자가 집행됐다.

그러나 미국, EU는 칠레보다 농업여건이 우위에 있을 뿐만 아니라 FTA 이행기간 동안 수입피해를 흡수할 수 있는 여건도 불확실해 국내 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보고서는 이에 따라 현재 추진 중인 중국과의 FTA에 대비해서는 밭작물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종합적인 국내 보완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다수의 FTA가 동시에 이행되면서 발생할 수 있는 불특정 수입피해에 대비한 종합적인 소득안전장치를 조속히 정착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문한필 박사는 “FTA 이행으로 수입 농축산물의 점유율이 증가할수록 국내시장은 생산량이 조금만 증가해도 공급과잉으로 인한 가격하락에 직면할 수 있다”면서 “개별사업에 국한하지 말고, 농식품 수요변화에 대응하는 투융자 사업의 개발과 전문영농인력 확보, 기술보급, 수확후 관리, 조직화, 마케팅 등에 대한 재정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