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불통’…‘선FTA 후농민’ 노선 여전



정부, “AI발병 농민 탓”…행정책임 무마 실태 여전
남북 정치·군사적 긴장 개선없이 농업지원…‘흡수통일’ 뜻


지난달 24일 가진 농식품부 대통령 업무보고의 요지는 개방지향적인 수출시장 개척, 다른 표현으로 FTA나 TPP 대상국들과의 대책 조율로 집약된다. 이색적인 것은 농림축산분야 남북협력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내용.
농민들이 실질적으로 소득을 체감할 수 있는 대안도 대폭 늘리고, 개방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키 위해 보완대책도 세우겠다고 언급하고는 있으나, 실속이 없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FTA 등 시장개방 정책이나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보좌하는 정도의 농정. 농민들의 요구가 어느샌가 철저히 무시되고 있고, 이는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대파 풍작으로 밭을 갈아엎는 풍경은 여전하고, 수입농산물이 할인매장 전시코너 중앙에 활개치는 모습도 뚜렷하다.
평가부터 오차 투성이인, 농식품부의 업무보고 몇몇을 짚어본다.

□“개방화시대 경쟁력 강화(?)”

농식품부는 한중FTA 등 주요 협상이 ‘큰 갈등 유발없이’ 마무리되고 있고, 농업보호에 역점을 두면서 아태지역 경제통합 발판 마련에 기여하고 있다고 했다. 설명대로라면 박근혜 대통령 언급대로 한중FTA, 영연방 3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과도 근시일내 마무리하게 된다.

줄기차게 FTA협상이 진행되는 것에, 농식품부는 제동은 걸지 못하고 ‘체질강화를 위한 국내 보완대책 정비’라는 모호하고 선언적인 후렴구만 외치고 있다. 한중FTA 대비책으로 밭농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지만, 수입되는 신선농산물에 신경쓰기보다는 농식품수출 쪽에 매진하는 형국이다. ‘제2 파프리카 품목’ 발굴 및 지원을 목표로 한다고 밝히고 있으나, 현지 식품박람회를 통해 기업들의 지원세력으로 움직이고 있다. 실례로 지난달 26일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농수산식품 수출 상담회에는 정부가 선정한 30여개 농식품 기업이 참가했다. 유자차, 홍삼, 버섯 등을 다루는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 이들 대부분은 식품·음료 위주의 가공식품 기업들이다. 일부 국산원료를 제외하면 수입산 원료를 사용하는 기업이 상당수다. 이런 지원사업으로 한중FTA 농업부문 대비책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호주·캐나다·뉴질랜드 영연방국들과의 FTA에 대비한 축산보호대책은 포인트가 잘못 설정됐다는 지적이다. 업무보고에는, 기존 FTA 대책을 개선하고 친환경 축산업 발전대책을 세우겠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축산물 생산비 절감, 무항생제 인증 등은 비현실적이거나 규제 일변도이지 보호대책이라 할 수 없는 것들이다.

□“AI방지책 ‘삼진아웃제’”

농식품부는 농업재해 대응력 강화 대책 중, AI 종식을 위해 범정부(안전행정부, 환경부, 식약처, 지자체, 군 등) 원스톱 위기대응체계를 구축해 비상방역체제를 가동키로 했다. AI상황이 진정되는 대로 근본적인 개선방안의 하나로, 철새도래지 등의 AI위험지구에는 축사시설 신규 허가를 제한하는 동시에 기존 농장 이주시 인센티브를 지원할 방침이다.

헌데 AI가 빈발하는 농장에 대해서 살처분보상금 ‘삼진아웃제’를 도입키로 했다. 정부 방역조치로 인한 손실을 보상한다는 취지지만, 따지자면 AI가 발생하는 농장 자체가 죄를 짓는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1차 발생하면 보상금 20% 삭감하고, 2차시엔 50%, 3차 땐 80%까지 보상금을 깎는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농가입장에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그도그럴것이 일단 AI 발생을 자처하는 농가가 있을 것이냔 얘기다. 설사 AI 발병 농장이라도 나름 능력껏 예방대책을 세운 상태에서 벌어진 일에, 처벌규정에 가까운 보상금 삭감을 시행할 수 있겠냐는 반문이다.

결국 AI로 벌어지는 일련의 현안들의 최종 책임은 농가의 몫이라는 무언의 책임전가로 읽혀지는 대목이라, 농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정부의 떠넘기기식 행정이 그대로 재현되는 사례란 지적이다. 양계업계 관계자는 “철새가 날아다니다 병균을 옮기는데 무슨 수로 이를 막을 수 있으며, 어떤 발상을 갖고 이같은 규제를 만들었는지 묻고 싶다”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빚쟁이로 내몰리는 일만 생긴다”고 한탄했다.

□“통일대박론과 농업협력”

MB정부 5년을 건너뛰고 다시 일년이 지난 뒤 ‘남북농업’이란 단어가 업무보고에 나왔다. 물론 이는 박 대통령 신년기자회견 때 언급했던 ‘통일대박론’의 옵저버(Observer) 쯤으로 풀이된다. 농식품부는 남북교류 확대에 대비해 남북농업협력 추진체계를 구축키로 했다.
농식품부, 농진청, 산림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어촌공사, aT, 농협 등 관계기관과 전문가가 참여하는 남북농업협력추진협의회 및 추진단을 구성한다는 계획이다.

과거 협력 경험이 있는 사업부터 발굴하고, 공동영농 시범사업도 확대할 방침이다. 세계식량기구(FAO)와 같은 국제기구나 비정부기구 등과도 협력해 나갈 예정이다. 온실·농축산 자재 지원을 시작으로, 공동영농 시범사업을 단계적으로 황폐화된 산림을 대상으로 시범조림 및 산림 병해충 방제사업도 추진키로 했다.

하지만 이 또한 농업협력으로 보기 어렵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현 남북의 정치적·군사적 긴장감은 그대로 둔 채 통일대박론을 주장하며, 통일준비위원회와 협력기구를 만들겠다는 것은 ‘흡수통일’ 의도로 풀이된다는 게 전문가들 주장이다. 즉 실천적 의미의 남북교류사업을 통한 농업발전을 기대하기엔 무리수가 따른다는 것이다.

□“농협을 통한 유통구조개선”

‘농축산물의 유통비용을 줄이고, 가격진폭을 완화해 생산자는 제값 받고 소비자는 덜 내는 유통생태계 조성’. 정부가 내세우는 유통구조 개선 목표다.
이론은 쉽다. 단계를 줄이고 직거래 등 유통비용이 낮은 경로를 넓히면 되는 일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실제 온·오프라인 직거래, 생산자단체 계열화, 산지 직구매 등을 정책 대안으로 만들고 실천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간 사업 추진 실적을 보면, 농협에 ‘일감몰아주기’식의 사업이 대부분이란 지적이다. 실제 농협안성물류센터, 농협로컬푸드직매장 등이 유통구조개선 사업의 전부다. 정부는 지난해 세운 ‘농축산물 유통구조 종합대책’을 올해도 지속 추진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르면 올해 사업은 농산물 직거래 오픈마켓인 ‘플랫폼’을 구축하고, 로컬푸드 직매장도 30여개소 확충키로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업이 경쟁구도로 짜여진 유통절감 대책이라기보다 농협중앙회 사업 일환으로 변질될 소지를 내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직거래 활성화나 유통구조 개선책은 생산자를 중심으로 대안을 내놓을 때 생산자나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의 충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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