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가 숨겨놓은 신성한 숲, 걸으면서 에코 힐링


사람들은 주로 여행을 목적으로 제주도를 찾는다. 배나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를 방문한 관광객들에게 그 자연풍광은 ‘한라산과 아열대 나무 가로수 그리고 해안의 기암과 조랑말이 달리는 넓은 초지대’로 기억된다. 하지만, 근래 아는 사람만 알고 있던 숨은 숲과 숲길이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기 시작했다. 바로 ‘사려니 숲길’이다. 사려니 숲길은 한라산 동쪽 중산간의 작은 화산인 ‘오름’과 난대림, 그리고 비자림이 연결된 곳이다. 그 길은 등산복으로 무장할 필요도 없고 가벼운 운동화와 물 한 병만 있으면 충분히 걸을 수 있다. 제주도 특히, 중산간지역은 수시로 비가 오기 때문에 비옷 한 벌이 더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사려니 숲길은 그 정도는 감수하고도 남을 만큼 매력적인 장소이다.

다섯 살이 된 ‘사려니 숲길’, 사려니가 없다?

제주에는 368개의 오름이 있다고 하는데 어떤 이는 더 있다고도 하지만, 매일 하나씩 올라도 1년이 넘게 걸린다. 오름은 제주도의 화산인 한라산이 만들어질 때 함께, 그리고 따라서 올라온 화산들이다. 한라산 높은 곳 자락에도 있고 바닷가에도 있다. ‘사려니 숲길’의 이름은 ‘사려니오름’에서 왔다. 사려니 숲길은 원래 한라산 옆을 돌아가는 산림작업 도로였다. 교래리 비자림로에서 물찻오름과 붉은오름, 천년의 숲 비자림이 연결되고 도중에 한라산 남쪽 서귀포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이 산길을 지난 2009년 사려니 숲길이라는 이름으로 공개한 것이다.

사려니오름은 서귀포의 끝에 위치한다. 사려니 숲길의 전체 구간 중 사려니오름으로 가는 길은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가 연구를 위해 관리하고 있는 제주시험림이다. 이곳은 평소에는 개방하지 않고 매년 5월 마지막 주부터 2주간만 개방한다. 물론 이 길을 통하지 않고 사려니오름이 있는 제주시험림을 방문하는 방법도 있다. 산림청은 홈페이지에서 별도 예약(허가)을 하면 하루 100명까지 탐방객 출입을 허용하고 있다.

 ‘사려니’는 그 어원이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밧줄을 달팽이처럼 둥글게 간추린다’는 뜻의 ‘ㅅㆍ려니’로 보기도 한다. 사려니오름의 후면 절벽모양 때문에 사려니오름이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일부에서는 ‘신성하다’는 뜻의 고어에서 왔다고도 말한다. 한 문화학자는 ‘숲 안’을 의미하는 제주 고어라고 주장했는데, ‘사려니’는 숲이 없던 시절부터 쓰던 ‘사려니오름’에서 따온 말이니 첫 번째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사려니 숲길을 찾은 방문객들은 평소에는 사려니오름까지 걸어갈 수 없다는 점과 사려니오름으로 들어가려면 1주일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불편해하지만, 숲을 떠날 때는 이구동성으로 예약제가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출입이 제한돼 있어서 동·식물이 보존되고 숲이 숲다운 모습을 갖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사려니 숲길에는 사려니가 없다고 한다.

사려니오름의 ‘오고셍이’ 오솔길 스토리텔링

한남시험림 입구에 위치한 사려니오름은 높이가 524m이다. 입구의 해발고도가 대략 400m 이므로 실제 오름을 오르는 높이는 100여 미터이다. 오름의 남쪽은 40여 년 된 붉은 색의 삼나무가 하늘 높이 곧게 자라 장관을 이루고, 북쪽은 제주도에 자생하는 난대 상록수 및 낙엽수들이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어우러져 자라고 있다. 남쪽에서 사려니오름을 올라가려면 777개의 일직선 급경사 나무계단을 올라가야한다. 이 계단은 원래 연구자들이 오름 정상에서 숲을 관찰하기 위해 만든 것인데 오르기도 힘들지만 비오는 날에 내려오려면 아찔하다. 그래서 몇 해 전 연구소에서는 계단 옆 삼나무숲 속에 안전하고 완만한 오솔길을 만들었다. 그 오솔길의 이름은 ‘오고셍이’이다.

오솔길은 삼나무 사이사이 길이 없는 숲 속 비탈면을 직접 걸어올라 가면서 주변의 돌을 주워 쌓아올려 만들었다. 제주는 비바람이 많아서 흙은 빗물에 쓸려가기 때문이다. 새로 만든 오솔길에는 이름과 스토리가 필요했다. 오솔길은 맨 아래에서 8번째 삼나무가 있는 88번째 계단에서 숲속으로 들어가 333번째 계단에 연결되고 다시 들어가 420번째 계단의 휴식 데크로 연결된다.

 ‘팔팔(88)’하게 들어가서 ‘삼나무 길을 삼삼(333)’하게 걷고 ‘사이좋게(420)’ 나오라고 만들었는데, 문제는 그 다음 연결할 600번째 계단 근처였다. 제주에 살고 있는 숲 해설가와 상의해서 593번째 계단에 연결하였다. 그리고 소리(오구삼)가 비슷한 ‘오고셍이’ 오솔길이라 붙였다. 오고셍이는 유네스코가 사라지는 언어로 지정한 제주어로 ‘본래 그대로’라는 의미의 말로 숲속 오솔길에 딱 어울렸기 때문이다. 이제는 오솔길이 주로 내려오는 길로 쓰여서 스토리텔링이 거꾸로 됐다. 그리고 계단 숫자를 세어 보면 776개만 있는데 마지막 한 개는 420에 붙어 있는 휴식 데크 계단이다.

 피톤치드와 80년 된 삼나무 숲

숲이 상쾌한 이유는 초록의 싱그러움도 있지만 피톤치드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들 편백나무를 좋아한다. 제주의 숲에는 편백나무와 더불어 삼나무도 있는데 삼나무도 편백나무 못지않게 피톤치드를 많이 뿜는 나무 중 하나이다. 사실 삼나무는 제주에 원래 있던 나무가 아니라 1924년에 처음 심어졌다. 사려니오름이 있는 한남시험림에는 1933년에 심어져 이제는 두 세 아름드리가 된 삼나무숲이 있다. 이곳에는 1,850그루의 거목들이 가득 들어차 있는데 키는 28미터 전후이다.

제주 숲의 나무들은 바람 때문에 키가 이 정도에서 더 자라지 못하고 굵게만 자란다. 이곳은 제주에서도 비가 가장 많이 오는 곳으로 일 년에 보통 3,000mm이상이 오는데 거의 열대 우림과 비슷하다. 물기가 많아서 아름드리 삼나무의 아랫부분은 일 년 내내 초록색 이끼로 덮여있다. ‘삼나무 전시림’이라 불리는 이 숲에는 천천히 둘러보는 데 30분에서 1시간 정도가 걸리는 원형의 나무 데크길이 있다. 길의 입구와 오른쪽은 80년 된 삼나무 숲이고 뒤쪽 왼편은 제주의 곶자왈 지역과 많이 닮은 숲이 있다.

원형의 데크길 가장 안쪽에는 정낭(제주의 전통 대문)으로 막아놓은 또 다른 길이 붙어있는데 그 안쪽 숲에 노루가족이 살고 있다. 가끔 너무 가까이 가면 큰 소리로 짖는데 그 소리가 큰 개의 짖는 소리와 흡사해 육지손님들은 그 소리를 유기견이나 멧돼지 소리로 오해하기도 한다.

이 멋진 숲은 가보지 않으면 짐작할 수 없는 팔색조의 매력을 지닌 곳이다. 철새인 팔색조도 이곳에서 새끼를 키우고 떠난다. 이 숲에 대한 설명은 외국인 산림과학자들의 얘기로 대신한다. 삼나무숲 아래에 키 작은 나무와 풀들이 많이 없어서 흙이 쓸려내려 간다고 자기 나라를 걱정하던 일본 학자는 감탄사를 연발했고, 은퇴를 눈앞에 둔 노르웨이 학자 부부는 등 떠밀려 떠나면서 아쉬운 듯 계속 뒤돌아보다 꼭 다시 찾아와서 실컷 보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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