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자연이 만들어낸 최초의 인공호안림

함양 상림(上林)의 절경은 사계절 내 그 빛을 발한다. 여름철의 상림은 도심에서도 선계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신라 진성여왕대의 최치원 선생은 자연과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것으로 보인다. 천 년 전 그때, 환경생태학적인 관점으로 낙엽활엽수림을 이용한 인공호안림(人工護岸林)을 조성했으니 말이다. 현재까지 잘 보전되고 있는 상림은 전형적인 남부 온대활엽수림으로서 학술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지닌다.




■ 농민들을 위해 조성된 상림숲

경남 함양군 함양읍 대덕리, 운림리에 위치하고 있는 함양 상림은 1962년 12월 3일, 문화재보호법 제정과 함께 천연기념물(제 154호)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상림은 지금부터 약 1,100여 년 전 신라 진성여왕 때 천령군(天嶺郡, 현재 함양군)의 태수였던 고운(孤雲) 최치원 선생이 재임 중 강둑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했던 인공림이다. 당시에는 지금의 위천수가 함양읍의 중앙을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홍수 피해가 잦았다고 한다. 그래서 홍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현재와 같이 강물을 돌려 둑을 쌓고 그 위에 나무를 심어 가꾸게 되었다. 당시 조성 목적은 농경지를 안전히 지키고 농민을 비롯한 백성들의 편안한 생활을 돕는 것이었지만, 나중에 숲이 우거지면서 휴양지로도 활용됐다.

처음 대관림(大館林)으로 명명된 이 숲은 잘 보존되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홍수로 중간 부분이 유실돼 상림(上林)과 하림(下林)으로 갈라지게 됐다. 현재 하림은 많이 훼손됐지만 상림은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상림의 면적은 약 21ha로 120여 종류 2만 여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다. 특히, 남부지역의 특징을 나타내는 온대낙엽활엽수림이 잘 보존되고 있으며 숲 생태계 변화 모니터 연구 등의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이 숲의 나무들은 최치원 선생이 직접 합천의 가야산에서 옮겨 심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 뱀이 놀라 도망간 상림의 전설

신라 최고의 문장가이며 동방 18현인(賢人) 중 한 사람인 최치원 선생은 헌강왕 원년(857년)에 경주 사량부에서 태어났다. 그는 홀어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그 효성이 지극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최치원의 어머니는 아들이 업무를 나간 사이 혼자 상림에서 산책을 하다가 뱀을 보고 놀라서 기절을 했다. 소식을 들은 최치원은 맨발로 달려와 어머니를 간호했다. 어머니가 정신을 차리자 최치원은 바로 상림으로 가서 “상림에 있는 뱀이나 모든 미물은 일체 없어져라. 그리고 다시는 이 숲에 들지 말라”고 주문을 외었다. 이후 상림에서 뱀을 본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개미들도 상림을 피해 다녔다. 또한, 함양에서 임기를 마친 최치원은 어머니를 모시고 가면서 관원들에게 “상림에 뱀이나 해충이 나타나면 내가 죽은 줄 알라”고 말했다. 최치원은 어머니 사후에 관직을 그만두고 전국을 유랑하다가 가야산에서 여생을 마쳤다. 최치원이 죽은 뒤부터 함양 상림에는 다시 해충이 생기기 시작했지만 이상하게 뱀은 돌아오지 않아 지금도 뱀이 없다고 한다.

■ 울창하게 펼쳐진 낙엽활엽수림

상림은 울창한 낙엽활엽수림으로 수령(樹齡)이 100년에서 500년 이상 된 신갈나무, 서어나무, 이팝나무, 말채나무, 느티나무, 밤나무, 까치박달나무, 굴참나무 등 참나무류와 물푸레나무, 다릅나무, 단풍나무, 회화나무, 산벚나무, 느릅나무 등이 상층목을 형성하고 있다. 그 아래층은 쪽동백나무, 국수나무, 자귀나무, 개암나무, 산초, 싸리류, 개옻나무, 병꽃나무, 작살나무, 찔레류, 청미래덩굴, 인동, 칡, 머루, 조릿대 등으로 이뤄졌다.

현재까지 조사된 식물은 총 91속 116종류(100종 13변종 3품종)이며 이 가운데 목본식물은 상록수 2속 2종류(1종 1변종), 낙엽수 52속 66종류(59종 7변종 3품종)이다. 초본류는 총 37속 46종류(41종 5변종)로 조사됐다. 상림의 식생유형은 15군락으로 분류가 됐는데 졸참나무-개서어나무 군락이 31.9%로 가장 많이 우점하고 있었다. 또한, 졸참나무 군락 14.5%, 개서어나무-졸참나무 군락 7.6%, 개서어나무 군락 2.2%, 졸참나무-갈참나무-개서어나무 군락 2.1%, 느티나무-이팝나무 1.6%, 졸참나무-느티나무 1.4%의 분포 비율을 나타났다.

기타 군락은 졸참나무-갈참나무, 갈참나무,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느티나무-졸참나무, 느티나무-상수리나무 군락이다. 주요 비오톱 유형으로는 관목층이 훼손된 참나무류 노령림이 32.4%로 가장 많이 나타나고 있다. 단층구조의 낙엽활엽수 노령림이 12.6%, 다층구조의 참나무류 노령림이 9.4%, 단층구조의 참나무류 노령림이 4.5%로 조사됐다. 상림의 식생 유형 및 비오톱 유형의 변화는 생태적 복원사업과 자연적인 생태 천이로 인해 계속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 관찰된 바에 의하면 향후 교목층은 개서어나무, 느티나무가 우세해질 것으로 보이며, 아교목층은 개서어나무, 느티나무, 나도밤나무, 사람주나무, 쪽동백나무, 당단풍나무 등이 우점하는 군락으로 서서히 바뀔 것으로 조사됐다. 

■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호안림’

상림이 생태학적 가치가 높은 이유 중 첫 번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환경생태학적 인공호안림(人工護岸林)이라는 점이다. 이곳은 주로 낙엽활엽수림이며 원활한 생태계 cycle을 위해 숲 내 배수와 수분 공급의 통로가 되는 생태하천을 호안(護岸) 성토할 때 함께 조성했다. 두 번째는 때죽나무, 사람주나무, 쪽동백나무, 나도밤나무, 당단풍, 윤노리나무 등 소교목류와 느티나무, 서어나무, 갈참나무 등의 대교목류가 함께 있는 혼효림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인 만큼 생태적으로도 안정된 다층구조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청딱다구리, 오목눈이를 비롯한 텃새 17종, 다람쥐 등에 훌륭한 서식처가 된다. 언급된 이 세 가지는 임업적인 측면에서 생태계 및 생물종 다양성 변화를 살피는 데 중요한 학술적 자료가 되고 있다.

■ 상림의 특이한 연리목(連理木)

상림에는 신비로운 연리목이 있어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뿌리가 다른 두 나무의 수간(樹幹)이 결합이 돼 하나가 된 것을 연리목, 두 나무의 가지가 합쳐져 하나가 된 것을 연리지(連理枝)라고 한다. 예부터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가진 나무가 남녀 간의 애틋한 사랑을 담고 있다고 생각해서 ‘사랑나무‘라고도 불렀다. 문헌상으로는 『삼국사기』에 신라 내물왕 7년 시조묘의 나무, 고구려 양원왕 2년 서울의 배나무가 연리지가 됐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사』에도 광종 24년, 성종 6년에 연리지가 출현했다는 내용이 있어 그 형상을 상서롭게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연리목은 같은 수종끼리 비교적 결합이 잘 이뤄지는 경향이 있는데 서로 다른 수종 간에는 아주 드물게 나타난다. 이곳 상림의 연리목은 느티나무와 개서어나무의 몸통 전체가 결합돼 있어 더욱 특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나무 앞에서 손을 잡고 기도하면 남녀 간의 사랑이 이뤄진다고 전해진다.

■ 계절마다 특유의 아름다움 뽐내

함양 상림은 천연기념물 제154호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적 숲이라는 역사적 가치를 지님과 동시에 홍수 피해를 막고자 한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문화적 자료가 된다. 상림은 각 계절마다 특유의 아름다움을 뽐내 방문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관광공사에서 선정한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관광지 99곳’ 중 하나이기도 하다. 특히, 상림은 생태계의 변화를 지켜볼 수 있는 중요한 숲이다.
 현재는 인위적인 훼손으로 인해 식생그룹의 종 다양도가 타 지역 자연림 즉, 광릉숲, 가야산숲 등지보다 낮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 서식환경 변화와 주변 개발 등의 추세를 본다면 상림의 종 다양성은 계속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상림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또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갈 우리의 유산이다. 학술적, 생태적 가치가 뛰어난 상림의 자연 환경을 보존하고 발전시켜나가기 위해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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