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품속 같은 서울의 명산 ‘북한산’

북한산은 1985년 도봉산과 함께 북한산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자연보존’의 길을 걷고 있는 천오백만 서울 시민의 뒷동산이다. 최근에는 둘레길을 뚫어 산 정상을 향하지 않고도 숲을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또한 각종 종교건물 뿐만 아니라 바위 밑의 촛불기도 장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간 활용을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는 진흥왕순수비가 있는가 하면 조선시대에는 국방의 요새인 산성의 흔적도 남아 있다. 이렇듯 북한산은 자연자원의 보고인 동시에 민족문화의 산실이다. 입추가 지나고 이제 수확의 계절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가족들과 함께 북한산에 오르며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이 북한산의 녹색 향기를 맡고 더욱 건강한 도시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 수도권 시민들이 가장 즐겨찾는 ‘보통의 산’

북한산은 서울사람이면 불과 20~30분이면 접근할 수 있기에 ‘보통의 산’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능선 위에 불쑥 솟아있는 인수봉, 백운대 등 새하얀 화강암 봉우리들은 이 산이 노년기에 속하는 나이 든 지형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심성암인 화강암이 풍화에 의해 부스러지고 유기물이 섞여 토양화 과정을 거친 흙으로 덮여있다. 흔히 ‘마사토’라고 부르는 거친 모래가 많은 흙이다. 흙에 모래 성분이 많다는 것은 양분의 함량이 적고 물이 잘 빠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건조가 지속되면 뿌리를 마르고 큰 비가 오면 산사태를 내기도 한다.

북한산 능선부에는 바위의 틈새에 흙이 채워진 곳에 식물이 자라 개박달나무-돌양지꽃 군락이나 소나무-노간주나무 군락을 형성하고 있다. 산록부는 참나무림으로 덮여 신갈나무 군락, 느티나무-귀룽나무 군락 등 자연군락이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 지역에 신갈나무 대신 리기다소나무와 물오리나무, 아까시나무가 출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 수종은 30~40년 전에 황폐한 산지에 식재했던 나무이다.

■ 삼국시대부터 이어진 역사와 재밌는 식생

백운대는 북한산의 한 봉우리이다. 북한산은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의 세 봉우리가 솟아 있어 삼각산(三角山)이라고도 한다. 북한산성은 백운대를 북동쪽 정점으로 하여 남쪽과 서쪽으로 능선을 따라 축성된 포곡식 산성이다.

 서울과 고양시에 걸쳐 있으며 1968년 사적 제162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삼국시대 때부터 있어온 토성이었던 것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도성 외곽을 고쳐짓자는 의견이 일어나 숙종 37년(1711) 왕명으로 토성을 석성으로 고쳐지었다. 성의 규모는 대서문, 동서문, 북문 등 13개의 성문과 불을 피우던 곳으로 동장대, 남장대, 북장대가 있었다. 성내에는 중흥사를 비롯한 12개의 사찰과 99개의 우물, 26개의 작은 저수지, 그리고 8개의 창고가 있었다.

현재 북한산성에는 삼국시대의 토성이 약간 남아 있기는 하나 대개 조선 숙종 때 쌓은 것으로 여장은 허물어졌고, 대서문과 장대지·우물터·건물터로 생각되는 방어시설 일부가 남아 있다.
북한산의 식생은 매우 단순하다. 산자락에는 아까시나무, 리기다소나무 등 산지사방용으로 식재한 수종들이 남아 있고 마을 주변에는 유실수인 밤나무가 자라고 있다. 봄철에는 진달래 능선을 따라 오르며 분홍빛 진달래꽃에 취해 봄직하지만 겨울에는 대성문을 통해 성곽길을 걸으며 눈 덮인 숲과 바위, 성벽과 성문의 모습을 즐기는 탐방활동이 바람직하다. 다만, 북한산은 경사지가 많고 암반 노출지가 많아 겨울에는 산행의 필수품이 된 아이젠을 꼭 착용해야 한다.

■ 백운대 정상에서 외치는 “야~호”

북한산은 품 안에 수많은 종교를 품고 있다. 북악공원지킴터에서 대성문까지 3.4km를 걷는 산길에도 서너 개의 사찰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사찰은 크든 작든 뒤에 봉우리를 배경으로 따뜻한 양지녘에 자리하고 있다.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사찰 앞까지 도로가 발달한 모습을 보면서 아쉬움도 남지만 산을 쉽게 오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또한 등산로 초입에는 소나무, 신갈나무, 물오리나무 등이 섞여 자라고 있고 계곡길로 이어진 등산로를 따라가니 산지사방사업의 대표적인 흔적인 견치석을 이용한 골막이 구조물이 나타난다. 그 뒤편에 퇴적된 흙더미에는 참나무류가 침입하여 자라고 있다.

능선길을 따라 대성문에 다다르면 성곽을 따라 비교적 평탄한 길을 걸을 수 있고, 보국문을 지나 다시 오르막길을 거쳐 그 정점에서 남쪽을 보면 칼바위가 시야에 들어온다. 가늘고 긴 바위들을 비스듬히 포개놓은 듯 날카로운 모습인데 그 위에도 사람들이 올라간다.

이때부터는 완만한 내리막길로 대동문에 다다르게 된다. 산성 안쪽으로는 완만한 사면이 발달해 있는데 참나무가 커다란 군락으로 숲을 이루고 있다. 잠시 후면 ‘삼신산 불로초’라 새겨진 바위를 만날 수 있다. 그리 크지 않은 바위에 한자와 한글로 새겨놓은 글씨를 보며 북한산성에 대한 누군가의 염원을 느껴 볼 수 있다.

용암문을 지나고 긴 숲길을 따라 오르내리면 멀리 백운대가 보인다. 이때부터는 암반길이다. 철제 난간을 부여잡고 한 걸음 한 걸음 떼어놓고 왼쪽 아래로 대서문 방향을 바라보면 원효봉이 눈에 들어온다.
수직에 가까운 암벽에는 소나무가 한 폭의 동양화를 그리듯 충분한 여백을 두고 아름답게 배치되어 있다. 곧이어 위문에 오르는 나무 계단길을 만나고 쉽게 위문에 다다른다. 위문은 북한산성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문이다.

나무계단, 철제 난간, 철제 계단길을 오르며 산 아래 펼쳐진 사람 사는 모습을 내려다보면서 태극기가 휘날리는 백운대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 동쪽으로 대머리 같은 인수봉이 뾰족하게 솟아 있으며 그 뒤로 도봉산이 보인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인천 앞바다까지 보인다는 백운대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오르지만 정작 근처에도 오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가슴속 깊이 크게 외쳐본다.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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