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들이 과거보러 지나던 숲길

▲ 조령관의 전나무와 소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쉼터
문경새재는 영남 지방과 서울을 잇는 영남대로 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갯길이며 또한 군사 요새지이다. 삼국시대에는 이보다 동쪽의 계립령이 중요한 곳이었는데, 고려 초부터는 이곳을 새재 즉, ‘조령(鳥嶺)’이라 이름하고 중요한 교통로로 이용하였다.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왜장 고니시 유끼나가가 경주에서 북상해 오는 카토오 키요마사의 군사와 이곳 조령에서 합류했을 정도로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점이었다. 신립 장군의 애환과 신길원 현감의 순국, 신충원의 의병활동 등 이곳의 군사적 중요성이 재확인 되자 군사시설을 서둘러 숙종 34년(1708)에 이르러 3중의 관문을 완성하였다.

문경에서 충주로 통하는 제1관문을 주흘관(主屹關), 제2관문을 조동문(鳥東門) 혹은 조곡관(鳥谷關), 제3관문을 조령관(鳥嶺關)이라 이름하였다. 3 관문을 잇는 문경새재길은 약 6 킬로미터에 달하며 계곡을 따라 거의 직선적으로 이어져 있고 장원급제길, 책바위, 교귀정, 원터 등 군데군데 옛 선비들의 자취가 남아있다. 대성산업(주)의 사유림으로 탄광 개발을 위한 갱목으로 이용하기 위해 소나무를 벌채하고 심은 전나무, 잣나무, 일본잎갈나무(낙엽송)도 있지만 계곡을 따라 자생하는 물푸레나무, 가래나무, 신갈나무, 졸참나무 등을 즐길 수 있다.


▲ 조령관의 ‘영남제3관’ 현액
■ 청운의 꿈 안고  한양 가던 선비들의 ‘관문’

7월의 무더위를 식히면서 즐길 수 있는 숲길은 여러 곳이 있지만 영 발길이 안 닿는 곳이 있다. 문경새재길이다. 영남 지방에서 서울로 가기 위한 가장 좋은 길이 문경새재였다. 그러나 임진왜란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기에 가길 꺼려하는 곳이다. 그러나 고려사를 재조명하는 사극을 찍기 위한 드라마촬영장을 조성하면서 많은 학생들의 수학여행지로 이용되며 선비들의 자취를 따라 이 숲길을 걷는 이들이 늘고 있다.

고사리 주차장에서 2킬로미터 정도 걸어 올라가면 나타나는 문경새재 정상에는 ‘조령관(鳥嶺關)’, ‘영남제삼관(嶺南第三關)’이라는 현판을 단 관문이 있다. 충북 쪽으로는 느티나무와 층층나무, 당단풍, 산뽕나무 등의 활엽수들이 숲길을 이루고 있다. 영남 쪽으로 나오면 1헥타르 정도의 잔디 광장이 조성되어 있고 좌우에는 전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다. 관문 왼쪽 편으로 산신각이 있고 버드나무가 누워 그늘을 드리운 옹달샘이 있다. 조선 숙종 34년(1708년) 조령성 구축 시 새재 정상(해발 650미터)에서 발견되었다는 이 샘물은 지금은 마실 수 없지만 청운의 꿈을 안고 한양 길을 넘나들던 옛 선비들이 목을 축이며 피곤함을 달래곤 했을 약수였다.

■ ‘책바위’에서 시험 합격, 소원성취 기원

단풍나무 길을 따라 잔디광장을 벗어나면 본격적인 숲길이 시작된다. 차로를 벗어나 옛 선비들이 보따리 봇짐을 메고 걸었을 ‘장원급제길’을 따라 걸으면 산골짝 시내를 즐길 수 있다. 활엽수림을 뚫고 뻗은 숲길 주변에는 으름덩굴, 두루미천남성, 대사초, 세잎양지꽃, 생강나무, 좀깨잎나무 등이 바닥을 덮고 있다.

시냇물이 계곡으로 넓어질 무렵 ‘책바위’가 있다. 마치 책을 쌓은 듯 돌을 층층이 쌓아 둥글게 만든 탑에는 각종 시험의 합격을 기원하는 글귀들이 붙어 있다. 이곳에서 기원하면 천기(天氣), 지기(地氣), 수기(水氣)를 받아 소원이 성취될 뿐만 아니라, 신선이 하늘에 함께 기원해 주어 장원급제한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책바위 주위에는 칠성단, 감투바위, 칠성바위 등이 있어 자연숭배신앙의 깊이를 더해준다.

차도와 만나 길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동화원으로 내려오는 길에는 잣나무와 자작나무숲을 볼 수 있다. 석탄산업이 한창일 무렵 이곳의 소나무들이 베어져 갱목으로 쓰였고 그 대신 이 나무들을 심은 것이다. 당시 베어지지 않은 길가의 소나무들은 일제 강점기 때 당한 송진 채취의 흔적으로 줄기에 깊은 상처를 안고 서 있다. 과거길로 접어들면 커다란 밤나무 한 그루가 주변의 활엽수 틈에 끼여 길을 막고 있다. 이 깊은 곳에 밤나무가 있다는 것은 인가가 주변에 있었다는 흔적일 것이다. 동화원에는 작은 인공폭포를 만들어 놓아 원두막에 앉아 떨어지는 물줄기를 감상할 수 있고 아래쪽 집에서는 식사도 가능하다.

▲ 두터운 수피를 가진 굴참나무와 통통한 손을 느끼게 하는 당단풍 잎
■ 걷다가 지치면 도랑에 걸터앉아 ‘탁족놀이’

커다란 활엽수들이 그늘을 드리운 찻길은 고운 진흙을 깔은 듯 맨발로 걷기에 적합하다. 걷다가 지치면 길가의 도랑에 걸터앉아 쉬면서 탁족을 즐기며 발을 씻을 수 있다. 위를 올려다보면 층층나무, 산벚나무, 야광나무, 팥배나무 등 열매에 육질이 풍부해 새들이 좋아하는 나무들이 초록빛 수관을 펼쳐 스테인드글라스처럼 하늘을 가리고 있다. 그 사이를 뚫고 스며든 햇빛에 소나무 줄기가 더욱 붉게 느껴진다.
길로 나와 햇볕을 즐기던 살모사는 인기척에 놀라 줄행랑이다. 길가의 졸참나무는 줄기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 다람쥐나 어치 등 야생동물들의 서식처를 제공한다. 커다란 느릅나무도 직사각형으로 조각 난 독특한 수피와 잎밑 부분이 짝짝인 잎을 달고 우람차게 자라 있다. 그 아래로 잎이 작고 뾰족한 서어나무와 잎이 넓은 쪽동백나무가 대비되며 자리한다. 고로쇠나무도 손바닥 모양의 잎을 활짝 펼치며 길손을 반긴다. 길은 평탄하여 한가롭기 그지없으나 아직 갈 길이 만만치 않다.

▲ 성벽 바위틈의 석위
■ ‘조곡폭포’ 시원한 물줄기로 한여름 더위 식혀

임진왜란 당시 신립 장군의 농민 모병군 제2진의 본부가 있었던 이진터와 겨울에 큰 빙폭을 이룬다는 색시폭포, 귀틀집과 바위굴을 지나 휴식용 원두막에 앉아 문경새재아리랑을 듣는다. 그렇게 3.5킬로미터를 내려오면 제2관문인 ‘조곡관’이 나타난다. 소나무 숲으로 가려진 조곡관 가까이에는 조곡약수가 있어 목을 축일 수 있다. 조곡교를 지나 제2관문휴게소에 이르면 다리 위에 올라 문경8경 중 하나인 새재계곡을 감상한다. 거기서 조금 내려가면 길 왼쪽으로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줄기가 한여름의 더위를 식혀준다. ‘조곡폭포’이다. 그리고 통나무의 속을 파 이어 쌓아 물길을 만들고 그 끝에 물레방아를 설치한 길이 나타난다. 통나무가 이어질 때마다 깊이 판 짧은 통나무를 두었기에 머리를 담가 물을 흠뻑 적신다.

‘산불조심’이라 쓰인 표석을 지나 소원성취탑에 돌을 올린다. 이 길을 지나가면서 한 개의 돌이라도 쌓고 간 선비는 장원급제하고, 몸이 마른 사람은 쾌차하고, 상인은 장사가 잘 되며, 아들을 못 낳는 여인은 옥동자를 낳을 수 있다는 전설이 있는 곳으로 문경새재길이 얼마나 지루하고 기나긴 길인지 짐작케 한다. 이제 길은 활엽수 숲길에서 소나무 숲길로 바뀌어 있다. 물론 졸참나무, 느릅나무, 물푸레나무 등이 함께 나타난다. 그 아래로는 비목이 길쭉하고 약간 광택이 나는 도피침형 잎을 달고 부드럽게 존재함을 알린다.

▲ 옹달샘에 그늘을 드리운 버드나무
갖가지 주연이 베풀어진  ‘용추폭포와 약수’

바위에서 호박돌 크기로 작아진 개울 한가운데 ‘꾸꾸리바위’가 있다. 바위 밑에 송아지를 잡아먹을 정도로 큰 꾸꾸리(환경부 보호어종 2급으로 고양이눈을 가진 여울성 물고기)가 있어 지나가는 아가씨와 새댁을 희롱했다는 전설을 안고 있다. 그 근처 물가에는 굴피나무가 피침형 소엽들로 이루어진 복엽을 한껏 달고 있다. 굴피나무의 수피는 굴참나무처럼 두터워 굴피집 지붕을 잇는 재료로 쓰였다.

우리나라 최초로 유학 갔다가 돌아와 천주교를 전파한 신부 중 한 분인 최양업 신부의 체취가 느껴지는 예배굴 주변에는 굴참나무와 층층나무가 암벽을 가리고 있다. 조선시대 어명을 받아 부임하는 경상감사가 구 감사와 업무를 인계인수하던 곳인 ‘교귀정’ 앞에는 용추폭포가 있다. 넓은 암반과 깊은 계곡, 그리고 용추약수가 있어 물이 용처럼 휘감아 흘러내리는 느낌이 드는 이곳에서 갖가지 주연(酒宴)이 베풀어졌을 것이다. 개울가 커다란 소나무 밑에 자리한 용추약수 주위에는 야광나무들이 감싸고 있다.

■ 한여름의 문경새재길, 옛 선비의 정취 느껴
길은 이제 단풍나무들로 바뀌어 알록달록 색깔을 칠한 듯하고 주위에는 잣나무숲이 우거져 있다. 마당바위와 무주암, 돌로 둘러싸인 원터를 지나 느티나무숲길과 호박돌로 덮인 개울을 따라 내려가면 사극 드라마 촬영장이 나오며 드디어 영남제1관문인 ‘주흘관’이 넓은 대지 위에 우뚝 서있다.

한여름의 문경새재길은 옛 선비들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많은 문화재와 좋은 숲길을 안고 있으며 숲으로 덮여 있어 시를 낭송하고 숲과 계곡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러나 주흘관에서 주차장까지의 길은 양산이 필요할 정도로 넓은 광장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문경쪽에서 새재로 올라가기 보다는 제3관문인 조령관에서 제1관문인 주흘관으로 내려오면서 즐기는 것을 권하고 싶다.

▲ 탄광 개발을 위한 갱목으로 이용하기 위해 소나무를 벌채하고 심은 전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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