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조원 농업피해…“한국의 25배 농업규모, 경쟁대상 못 돼”


석유화학·자동차 수혜…협상 주무부처 산업부, ‘제자식 챙기기’ 여전



“산업통상자원부 소속 교섭국장이 협상장에 들어갔는데, 섬유·화학·철강·자동차를 모른 척 하겠습니까·”
지난 2일부터 부산 해운대구 파라다이스호텔에서 사흘간 진행된 한중FTA 6차협상에서는 양국이 민감하게 취급하는 산업분야 품목을 지정하는 논의가 진행됐다. 지난달 양국 정상회담으로 ‘높은 수준의 FTA’를 표방한 만큼, 급진전이 예상된다는 여론이 높다. 양국이 기존에 민감품목으로 분류했던 산업분야에 얼마나 ‘통 큰’ 진전을 보일지가 초미의 관심이다.

특히 한국은 농수산 분야와 의류, 운송장비 등을 민감 품목 묶고 있고, 중국은 섬유, 화학, 철강, 자동차를 피해 볼 산업군으로 예측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끈이 풀릴지’ 해당 산업분야 관계자들의 신경은 더욱 예민하게 쏠려 있다.

농업계는 무조건 협상 반대 입장이다. 현재 상태에서 우리 정부의 협상 배경과 태도, 진행상황을 예측할 때 농업분야가 절대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호텔안에서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회의장 밖은 사흘내내 농민들의 집회가 이어졌다. 농민들은 회의 내용이 궁금치 않다는 표정이다. 한중FTA을 바로 중단하던지, 인정할만한 농업 보호대책을 내놓고 협상을 벌이던지 결단을 내라는 게 대정부 주문이다.
정부는 ‘대세론’을 앞세워 농민들의 주장을 이기적 집단 행위로 치부하고 있다. 박근혜정부의 농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여지없이 입증되고 있다.


“교역대상 90% 자유화…농업은요?”

‘높은 수준의 포괄적 FTA’. 지난달 27일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베이징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한중FTA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한 공감하고, 빠른 시일내에 1단계 협상을 마무리 짓자는데 합의했다.

이때 한·중 미래비전 공동성명에서 내 놓은 표현이 ‘높은 수준의 포괄적 FTA’이다. 이는 한국이 중국측에 요구해온 용어이다. 즉 85%~90% 이상의 품목에 대해 관세 또는 비관세 장벽을 없애자는 내용이다. 한중FTA를 통한 ‘내수시장’ 공략을 염두한 협상 방침이었다. 중국의 본래 입장인 제한적인 품목에 대해서만 관세를 철폐하자던 ‘낮은 수준의 FTA’를 양보한 것이다. 이는 중국의 협상 자세가 적극적으로 변했음을 의미한다.

이쯤되면 정상회담을 통해 그간 흐지부지 끌고 오던 협상진행이 추진력(모멘텀)을 받은 셈이다.    
하지만 농업분야 쪽에서 바라보면 청천벽력같은 일이다. 우선 한중FTA협상에 임하는 주무부처가 산업통상자원부다. 정치적인 통상외교까지 감안하던 외교부 시절의 통상교섭이 아니라는 것이다. 협상에 나선 김영무 산업부 FTA교섭국장은 “우리측은 농수산물 보호장치로 시작했지만 상대측이 민감 품목이 더 많다. 중국이 민감 품목을 늘려간다는 건 한국의 중국에 대한 내수시장 진출이 줄어든다는 것이기 때문에 집중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중국의 내수시장에 뛰어들 수출분야는 제조분야다. 즉 중국이 민감 품목으로 내세웠던 섬유, 화학, 철강, 자동차 등에서 긴장을 풀 수 있도록 우리측도 ‘많은 부분’을 양보해야 한다는 뉘앙스가 강하다. 산업부 고위간부다운 발언이다. 농업분야로선 그만큼 달갑지 않은 일이다. 우리가 양보할 부분이면 농수산업이 우선 꼽히기 때문이고, 중국측도 이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다 내부적으로 농산물 품목별 민감품목 선정 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고, 2단계 협상 내용인 관세양허 예외규정을 적용할 품목 선별 작업도 요원한 실정이다. 이와관련된 품목별 협의회에서 다루는 얘기는 개방이후 파급효과에 대한 피해여부가 어떤지, 피해대책은 어떻게 짜야하는지 등 원론적인 ‘초짜’얘기 뿐이다. 

 
“살짝만 열어줘도 몰살입니다”

한중FTA가 발효되면 농업이 얼마나 피해를 볼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가내 수공업을 비롯한 인력조달 중심의 제조업들이 그랬듯이 국내산 원산지를 표기한 농산물을 찾기 힘들것이란 게 전반적 여론이다. 몰살이다.

한중FTA 발효후 15년간 농업피해규모는 약 29조원(KREI 연구)에 달할 것이라는 추정치가 나왔다. 보호막을 치고 빗장을 걸어도 2010년 기준으로 한해 27억7천달러 규모의 무역적자를 기록한 현실을 감안하면, 암담한 미래다. 우리나라의 한해 농업규모(2008~2009년)가 43조원쯤으로 산정되고, 중국이 한국의 25배에 달하는 1천68조원으로 계산되는 상황에서 교역대상으로 보기 어려운 것이다. 

몇몇의 세부적인 비교분석치는 농업분야를 더욱 암담하게 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중 양국간 30여개 주요 농산물 품목을 비교해본 결과,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제외한 전 품목에서 우리가 중국보다 2배이상 가격이 높았다. 관세를 낮추거나 폐지할 경우 가격과 품질을 앞세운 경쟁력 또한 비교대상이 안된다는 분석이다.

일부 경제학자와 위정자들은 중국이 세계 최대의 농산물 수입국이란 점을 강조, 수출 전략을 세우면 희망이 보인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2년 5월 모내기 현장에서 “우리 농촌에서 걱정하는 품목은 아주 민감한 것이기에 별도로 고려하고 있다”며 “중국의 1억명에 달하는 부유층은 품질 좋은 우리 농산물을 선호하기 때문에 경쟁력을 갖추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 농산물 시장을 너무 모르는 발언이라고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고품질 농산물이 다툴 수 있는 시장규모는 우리의 농업분야를 모두 담보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시장경쟁에 틈새를 노릴 수는 있어도 극히 일부분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다. 오히려 동북3성에서 생산된 고품질 농산물의 역공으로 농업붕괴 시기가 앞당겨질 수밖에 없다는 예측이 설득력을 갖는다.

한중FTA발효 10년후쯤 3%정도의 GDP(국내총생산) 증가가 예상된다는 ‘경제우선론’과 84억달러(9조5천억원규모) 수출흑자를 올릴만하다는, 산업부의 ‘내자식(석유화학·철강·자동차 등) 돌보기’에 농업은 희생당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한중FTA, 국민의 힘으로 저지해야”

경제우익을 점치는 경제연구소 조차 농업분야 피해를 인정하는 한중FTA협상에 대해 당사자인 농민들의 목소리가 높다.
농민단체들로 이뤄진 한중FTA중단농수축산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4일 협상장 인근인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농민대표들은 “이번 한중FTA 6차협상과 7차 협상을 통해 1단계 모댈리티(세부지침) 협상을 끝낸다는 게 정부 방침”이라며 “1단계협상에서 농어업분야를 포함한 전체 교역대상 품목의 90%를 자유화한다는 방침이 현실화된다면 우리 농업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성토했다.

단체장들은 또 “앞으로 농업계가 하나로 뭉쳐 정부의 무분별한 개방을 막고 농업을 지켜내기 위한 보다 강력한 투쟁과 정책 활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며 “농어업 뿐만 아니라 제조업 등 소생산자,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 등 경제적 약자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이번 협상의 중단 필요성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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