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형 진  농업인·시인



얼마 전에 전화 한통을 받았습니다. 구들방을 하나 만들고 싶은데 일해 줄 수 있겠냐는 전화였습니다. 저는 우선 구들방을 놓을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 있는지 대강 몇 가지 물어보고 직접 방문을 해서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지난 가을부터 지금껏 일주일에 한 번 발행되는 지역신문에 구들방을 만들어 드린다는 광고를 실어왔는데 그게 이제야 처음으로 반응이 온 것입니다. 해서 저는 약속한 날에 그 집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참 으리으리한 기와집이었습니다. 동네 한가운데 그런 집들을 네다섯 채씩 지어놓고 살고 있어서 두 번 물을 것도 없이 대문을 찾아 들어서는데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군데군데 낡고 퇴락한 곳이 있고 이곳저곳 풀이 우거진 곳이 많은 걸로 보아 옛날엔 번성했을지언정 지금은 아닌 듯 했습니다.

짐작한대로 늙은 부부 두 분만 살고 있었습니다. 지금 세상으로 본다면 결코 늙었다고 볼 수 없겠지요. 그 집에서 일하면서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남편은 69세이고 부인은 62세였으니까요. 늙고 젊고를 떠나서 그 커다란 집에 둘만 살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농촌의 어디를 가나 으레 그러려니 생각하지만 막상 그 모습을 보면 느낌은 언제나 씁쓸한 것입니다. 그 집은 지은 지가 100년이 되었답니다. 편리한 것을 좇아서 심야전기 보일러를 놓게 되었는데 살다보니 그게 아닌 것 같아서 옛날처럼 다시 구들방에서 살고 싶다 했습니다. 하지만 대강 비용을 계산해보니 250만 원 정도는 들어야 되는 일 이었습니다. 시골 보통 집안에서는 쉽게 결정 내리기 망설여 질 액수입니다. 하지만 그 정도의 비용은 걱정이 되지 않는지 아무 날부터 일을 시작하자고 했습니다. 이것도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예전엔 천석지기의 집이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뒷일꾼 한 사람을 데리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보일러 놓은 자리를 걷어내는 일만 그쪽에서 하기로 하고 재료의 구입에서부터 죄다 맡아서 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일을 도맡아서 하는 업자가 아니라 단순히 기술만 제공하는 사람이니 필요한 재료를 구해 달라고 목록과 구입처를 적어드려도 그분들은 막무가내로 다 알아서 해달라고만 했던 것입니다. 다행히 보일러 놓은 것을 걷어낸 사람이 옛날 구들방의 원형을 훼손하지 않아서 재료도 생각만큼 많이 들지 않았고 일도 조금 수월했습니다. 100년 전에 지은 집이니 그때는 모두 나무를 때서 방을 데우는 세상이었고 또 천석꾼 하는 대갓집이니 구들 하나라도 격식 있게 놓았던 것입니다. 처음에 저는 속으로 궁금하기도 했지요. 지금껏 구들 놓는 일을 배워서 스물다섯 개 구들방을 만들어줬지만 옛날 집에 놓는 일도 드물었을 뿐더러 더군다나 이처럼 큰 기와집 구들을 다시 놓는 일은 처음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짐작한대로 예나 지금이나 방식은 똑같습니다. 아궁이 자리와 굴뚝자리가 결정되면 윗목과 아랫목의 높낮이를 계산해서 인고래를 파서 쌓고 부넘기를 만드는 것 말이지요. 아랫목에 날개를 붙이고 방의 모양과 굴뚝의 방향에 따라 고래 길을 만드는 것도요.

이런 일을 하면서 정말 필요한 것은 주인과 잦은 대화를 통해 과정을 설명해야 되는 것입니다. 일이란 것은 또 정해진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방법이 있는 것인데 주인의 경제적인 능력이나 성품에 따라서 선택할 수 있게 제시해줘야 합니다. 또 오해의 여지가 없게 분명히 해둬야 되는 것들도 있습니다.

품삯 공사기간 먹매 같은 것 말이지요. 품삯이나 먹을 것은 미리 정해두는 게 좋고 공사기간 재료사용 따위는 최소치와 최대치를 말해줘야 합니다. 그러면 중간에 혹시 조금 사정이 변해도 서로 이해하며 무난히 일을 마칠 수 있습니다. 이집 주인은 처음에는 나와 보지도 않더니 사흘째와 마지막 날 되는 나흘째는 제 일하는 것을 보면 재미있다는 듯 거의 종일을 옆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어쩌다 꿈에 떡 얻어먹기 식으로 하고 다니지만 그분들이야 기로울 게 없는 분들인데 저와 나누는 이야기가 별것이 있었을까요? 그저 말 푸접 삼으시는 거겠지요. 하지만 저는 저대로 조금은 안타까웠습니다. 옛말에 이런 게 있지요. ‘집은 작아야 흥한다.’ 집은 큰데 식구가 적어서 찬바람만 휘영거리면 그 집에 귀신 도깨비가 안날 턱없는 것이지만 흥부 새끼들처럼 식구들이 우글거리면 작은집은 자꾸 크게 늘여내겠지요. 한 사회를 지탱하던 농업적 가치가 한번 무너지자 농촌 곳곳이 지금 이렇게 귀신 도깨비 날 지경, 아니 남아있는 사람자체가 귀신 몰골인 것이지요. 구들을 다 놓고 첫 불을 넣어 화통하는 날 그분들은 불앞에 벌겋게 익은 얼굴로 앉아 자꾸만 술을 내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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