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초부터 소가 굶어죽는 사진이 사회적인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국제 곡물가격의 폭등에 따른 사료값의 폭등, 쇠고기 수입 확대로 인한 소값 폭락으로 인한 결과이다. 그리고 농산물과 먹거리에 대한 생산과 가격 및 소득을 안정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부재가 불러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2008년에 발생한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허용 여부를 둘러싼 갈등은 대규모 촛불저항으로 이어져 한국 사회를 강타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민감한 사회적 이슈로 남아 있다. 또한 2010년 12월부터 시작된 전국적인 구제역 대란은 소, 돼지 등 약 350만두의 가축이 살처분 매장되도록 만들었고, 약 6조5천억원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을 입힌 것으로 집계됐다. 이 외에도 2009〜2010년에 걸친 쌀값 폭락 사태는 쌀값을 1995년 이전 수준으로 떨어뜨려 농가소득을 크게 감소시켰고, 2010년 하반기에는 무, 배추 등 채소류를 중심으로 2〜3개월이라는 단기간에 농산물가격이 3〜4배 가량 폭등하는 농산물대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과거에도 먹거리의 안전성 문제와 농산물가격의 폭등 및 폭락 사태가 자주 발생하기는 했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발생하고 있는 먹거리 문제의 특징은 발생 빈도가 더욱 증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파급력도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대규모 사태라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한국 사회에서 먹거리 위기가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먹거리 위기와 그 대안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신자유주의 개방농정

한국 농업정책의 기조는 신자유주의 개방농정이라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개방농정은 1989년 농축산물 수입자유화조치와 1991년 농어촌구조개선대책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추진됐고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농업정책의 기본골격으로 유지돼 왔다.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UR) 농산물협상 타결과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을 계기로 쌀을 제외한 모든 농산물시장이 완전 개방됐고, 이후 잇따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쌀시장의 의무수입물량 확대 등으로 시장개방이 빠르게 확대됐다. 정부는 이와 같은 대외적인 농산물의 시장개방을 농업정책의 전제조건 혹은 절대상수로 인정하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

그 대신 정부는 대내적으로 농업구조조정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었다. 농업구조조정의 핵심은 소위 ‘선택과 집중’에 따라 농지와 농기계 등 농업자원을 소수의 정예농가에 선별적으로 지원함으로써 규모화를 통해 경쟁력을 갖추도록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10여만명의 전업농이 정예농가로 선정됐고, 정책자금과 농업자원은 이들에게 집중됐다.

그러나 원천적인 소규모 농지면적의 한계와 생산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건비와 토지용역비를 고려할 때 규모화를 통한 가격(비용)경쟁력은 처음부터 실현 불가능한 목표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실제로 규모화된 전업농이라 하더라도 국제경쟁력은 그다지 높아지지 않은 대신에 자금지원에 따른 농가부채 문제가 심각해지는 부정적인 결과만 초래됐다.

이에 따라 결국에는 정부도 내부적으로는 가격(비용)경쟁력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기에는 가격(비용)경쟁력 대신 친환경, 기능성 등을 중요시하면서 품질경쟁력을 강조하는 변화가 나타났다. 그러나 여전히 소수의 전업농에 대한 선별적인 집중지원이라는 농정기조는 그대로 유지됐고, 특히 이명박 정부 이후에는 전업농 보다 더욱 규모화된 극소수의 주업농과 기업농을 강조하는 등 과거로 회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한편, 시장개방과 농업구조조정으로 몰락의 위기에 처한 대다수 농민과 농촌지역에 대해서는 연착륙을 위한 직간접적인 보완대책이 시행됐다. 건강보험 및 국민연금의 일부 지원, 농가부채 상환기간 연장 및 이자 일부 경감, 소득보전을 위한 직접지불제도의 도입, 농촌관광(그린투어) 및 농공단지 활성화, 농촌정주권 개발 등 매우 다양한 시책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보완대책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농민과 농촌은 빠르게 몰락했다. 보완대책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착륙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경착륙하는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 시기에는 직간접적적인 보완대책의 일부를 폐지하거나 축소함으로써 농민과 농촌의 붕괴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농업·농민·농촌의 위기

지난 20여년간 유지돼 왔던 신자유주의 개방농정의 결과로 한국의 농업·농민·농촌은 빠르게 몰락의 길을 걸어 왔다.
1990년 약 43%에 달했던 식량자급률이 2011년 현재 약 25.1% 수준으로 급격히 하락하면서 국민이 소비하는 먹거리의 약 3/4을 해외에 의존하도록 만들었다. 농가인구는 1990년 약 715만명에서 2010년 현재 약 315만명 수준으로 절반 이상 감소했다. 농업구조조정으로 인해 농가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중소규모 가족농이 하향분해 되면서 절반 이상의 농민이 탈농하는 가운데, 남아 있는 농민층은 소수의 상층농과 다수의 중소농으로 분화되는 양극화가 빠르게 진행됐다.

식량자급률, 농가인구 등과 같은 총량적인 지표뿐만 아니라 농가소득, 농가부채와 같은 실질적인 지표도 농업·농민의 위기 실태를 반영하고 있다. 1990년 농가소득은 도시가구소득의 97.4% 수준이었지만 2010년 현재 66.0% 수준으로 급락해 도농간 소득격차가 크게 악화됐다. 그리고 2005년부터 현재까지 농가소득은 약 3천만원 수준에서 정체돼 있는데, 이는 명목소득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실질소득을 기준으로 하면 같은 기간 동안 농가소득은 오히려 감소했다. 이에 반해 농가부채는 1990년 약 417만4,000원에서 2010년 현재 약 2천721만원으로 약 6.5배나 급증했다.

이와 같이 농촌지역을 지탱하고 있던 농업과 농민층이 몰락하면서 농촌지역도 빠르게 붕괴됐다. 농촌지역의 경제기반이 약화되고, 농촌인구가 감소하면서 전국 대부분의 농촌지역에서 공통적으로 공동화 현상이 발생했고 빈곤화가 빠르게 진행됐다. 그 결과 농촌인구의 초고령화 및 여성화 현상이 일반화됐으며, 대도시 지역의 절대빈곤율 6.6%에 비해 농촌지역의 절대빈곤율은 14.8%로 두 배 이상 더 높은 빈곤율을 기록했다. 특히 농가인구의 빈곤율은 최근 약 20%에 달하고 있어, 다섯 농가 가운데 한 농가가 절대빈곤층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글로벌 시스템에 의존하는 먹거리

신자유주의 개방농정에 따른 농업의 몰락 과정은 ‘세계식량체계’로의 편입과정이기도 하다. 농산물의 시장개방과 농업구조조정으로 국내 먹거리의 생산·공급 기반이 빠르게 붕괴되는 가운데, 그 빈자리를 세계식량체계에서 공급되는 먹거리가 채우게 됐다.

세계식량체계는 먹거리의 생산에서 소비까지 이르는 전 과정에 걸쳐 촘촘한 연계망을 구축하고 있는 글로벌시스템을 가리키는 말이다. 전 세계 곡물무역의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5대 곡물메이저(grain major)를 중심으로 종자, 비료, 농약, 농산물유통, 식품가공 등과 같은 분야의 초국적 기업이 세계식량체계를 주도하고 있다.

그리고 곡물메이저와 초국적 기업들은 서로간에 전략적 제휴, 인수합병 등의 방법으로 수직적 혹은 수평적 결합체계를 갖고 있는데, 이러한 결합체계를 모두 포괄해 ‘농식품복합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곡물메이저와 초국적 기업이 상호 결합해 초국적 농식품복합체를 이루고, 이 초국적 농식품복합체가 세계식량체계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세계무역기구(WTO)와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대표되는 농산물의 자유무역은 관세를 제외한 모든 국경장벽을 철폐하도록 만들고, 농업보호정책을 축소하거나 폐지하도록 만들어 세계식량체계가 전지구적으로 확장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주었다.

농산물 자유무역과 세계식량체계의 확대는 경지이용률의 감소, 중소 가족농의 몰락을 초래해 2000년대 이후 대규모 식량부족 사태와 국제 곡물가격의 폭등을 불러온 주요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또한 유전자조작농산물(GMO) 종자, 대규모 화학농업과 공장식 축산, 장거리·장시간 운송에 따른 화학처리 등은 농산물 자유무역과 세계식량체계에 의해 확대됐다. 이 때문에 농산물 자유무역과 세계식량체계는 먹거리의 안전을 가장 위협이 되는 요인으로도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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