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2일 한미FTA 비준안이 국회에서 날치기로 처리되고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들의 심각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한미FTA 이행법안에 서명하면서 2012년 발효를 위한 추진절차를 밟고 있다. 하지만 한미FTA의 불평등한 독소조항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는 가운데, 2007/08년의 국제식량가격폭등 이후 빈발하는 식량위기의 위협 속에 한미FTA를 통한 농업의 전면개방화는 식량안보의 포기이자 더 나아가 미국에 우리 농업을 내어주는 식량주권 포기라는 문제제기가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한나라당은 실효성 없는 22조+α 지원계획, 농어업대책 3200억원 추가지원 추진 등 문제의 본질을 가리는 피해대책 논의를 반복하고 있다. 이번호에서는 1990년대부터 추진된 신자유주의 개방화 정책과 2005년 미국과의 FTA를 통해 중아메리카 6개국의 농업이 어떻게 붕괴되었는지를 살펴보고 이들 국가의 경험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중미 6개국과 미국의 FTA 배경

미국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본격화하던 조지 부시(아버지 부시) 정부 시기 ‘미주대륙을 위한 구상’ 계획을 주창했고, 이는 클린턴 정부 시기였던 1994년 미주대륙 전체 34개국을 아우르는 전미자유무역지대(FTAA, Free Trade Area of the Americas)를 건설하자는 제안으로 구체화됐다.
하지만 ‘전미자유무역지대’(FTAA) 추진에 어려움이 발생하였다. 남미 국가들에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와 신자유주의로 인한 폐혜가 심화되고 민중의 저항이 격화됨에 따라 난관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2005년 발효를 목표로 했던 FTAA를 뒤로 미루고 양자간 협정에 집중하면서 중미 6개 국가들(코스타리카,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온두라스, 니카라과, 도미니크 공화국)과의 FTA를 먼저 추진해 2004년 CAFTA(중미자유무역협정) 체결에 합의하고 2005년 국회통과와 부시 대통령 서명으로 협상을 완료했다.

자유무역과 CAFTA로 인한 중앙아메리카의 농업붕괴

1990년대 이후 개방화와 자유무역의 확대로 인해 중미 국가들은 탈농이 가속화되고 식량수입이 증가되면서 국내 농업이 급격하게 축소되었으며, 이러한 현상은 CAFTA로 인해 심화됐다.
코스타리카의 2008년 지역현황보고서에 의하면 중미지역 2005년 GDP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주노동자들이 본국으로 송금하는 금액보다도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1990년대부터 2005년까지 불과 15년 사이에 쌀, 콩, 옥수수, 사탕수수 등 주곡작물의 재배면적은 52%나 감소했으며, 나머지 절반도 수출작목으로 전환됐다. 또한 CAFTA 체결 후 2005~2008년의 짧은 기간에 농지는 7.4%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산물 시장개방과 자유무역은 자급을 위한 주곡작물보다 수출을 위한 환금작물로의 집중을 가져왔다. 값싼 수입농산물과 경쟁해야 하는 주곡작물보다 수출을 통해 소득을 올릴 수 있는 환금작물에의 집중이 심화되면서 파인애플, 바나나, 농산연료 작물(사탕수수, 야자수 등) 중심의 단작화가 심화됐으며 이는 또한 화학비료와 농약의 사용을 증가시켰다.

한 예로 과테말라에서는 야자수 단작화로 인해 매년 1,350ha의 면적이 야자수 재배지로 바뀌고 있으며 이로 인해 식량위기로 먹을 것이 부족한데도 농산연료의 생산량은 증가하는 모순된 상황까지 발생했다.

이러한 농업붕괴로 인해 이 국가들은 국제 식량가격의 변동에 취약한 체계로 바뀌었다. 2008년 지역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중미 지역에서 세계화의 영향으로 자국 농업은 무시되고, 특히 국내 식량 생산이 감소하고 있으며 (특히 주곡의) 농산물 수입 의존도가 높아졌다고 분석하면서, 최근의 가격폭등으로 상황은 더욱 복잡하게 되었으며 특히 농산연료 사용의 증대문제가 주요한 원인이라고 밝히고 있다.

과테말라 농업농촌연구소의 2008년 보고서에 따르면, 중미자유무역 협정으로 미국 정부의 높은 수출보조금을 받고 값싸게 들어오는 농산물로 인해 국내생산이 크게 감소했으며 국제곡물가격이 올랐을 때는 이미 국내생산력이 감소한 후이기 때문에 식량위기가 심화됐다고 분석했다.

또한 2011년 FAO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수출입 비율 변화 등 사회경제적 요인이 식량위기의 원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80년대 2%에서 2000년 이후에는 27%까지 확대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은 세계화와 농업ㆍ먹거리의 깊은 관계는 국제농업협정과 개도국/저개발국의 식량보장 문제를 따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단적인 예로 국제곡물가격 폭등으로 세계식량위기가 닥쳤던 2008년 엘살바도로 도시의 1인당 한 달 기본식품비는 44.80달러로 전년(38.40달러)보다 6.40달러 상승한 바 있다. 또한 중앙아메리카의 소위 ‘건조 지대’라 불리는 동과테말라, 북니카라과, 중남온두라스는 주곡작물의 부족이 심각해졌는데,이에 따라 2009년 과테말라에서는 40만 가구를 포괄하는 4000여개의 위험에 처한 (지역)공동체가 굶주림과 영양부족에 처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국가재난사태가 선포되기도 했다.

중앙아메리카의 빈곤, 불평등 심화

유엔 라틴아메리카ㆍ카리브경제위원회(ECLAC)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중앙아메리카 국가들에서 지니계수로 본 불평등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유엔의 유아 및 청소년을 위한 펀드의 연구에 의하면 니카라과와 과테말라의 유아 및 청소년 78.5%가 빈곤상태에 놓여 있으며 엘살바도르에서는 86%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특히 농업붕괴로 인한 식량가격의 불안정은 빈곤층의 영양부족과 식량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08 지역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중앙아메리카에서 식량가격 15% 상승은 250만명의 빈곤층 증가로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미FTA는 식량주권 포기선언

중앙아메리카 국가들에서 자유무역과 CAFTA로 인해 15년만에 주곡작물의 재배면적이 52%나 감소한 사례에서 본 것처럼 미국과의 FTA는 25%에 불과한 우리의 식량자급률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한미FTA 농업분야 협상은 예외없는 관세철폐라는 미측의 요구를 사실상 수용했으며, 관세즉시철폐품목 역시 사상 최대이다.(관세즉시철폐 비율 : 한칠레 FTA 15.6%, 한미 FTA 37.6%)

특히 쌀을 제외하고는 5% 수준에 불과한 식량자급율 상황에서, 2007년 협상 때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측에 ‘2014년 이후 쌀개방에 대해 재논의 하겠다’는 사실상의 이면합의를 했다는 위키리스트의 폭로대로 쌀마저 개방된다면 우리 농업에는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이 될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역대 정권들의 신자유주의 개방농정으로 인해 자본과 거대 기업이 지배하는 세계농식품체계에 깊숙이 편입되어 있는 상황에서 거대 농식품기업의 한국에 대한 지배력이 더욱 커질 우려가 높다고 할 것이다.

양극화와 빈곤의 심화

한미FTA는 국민들에게 돌아올 실질적 이득은 없고 소수의 기업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1%를 위한 무역협정이다. 한미FTA로 인해 양극화와 빈곤은 더욱 심화될 것이며 CAFTA의 사례에서 나타난 것처럼 FTA로 인한 농업파괴는 식량권과 먹거리보장의 악화로 이어져 양극화와 빈곤 문제의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킬 것이다.

농업적 대안으로서 식량주권의 가능성

소수의 수출국과 거대 농식품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현재의 세계농식품체계는 농업의 자유무역화 과정에서 많은 개발도상국들의 농업파괴를 가져왔고 오늘날 약 70%의 개도국이 농산물 순수입국의 처지로 몰락했다.

국제 농민운동 조직인 비아 깜페시나는 지역, 지방, 국가 단위에서 농업을 보호하고 회생시키는 식량주권 운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미국과의 자유무역과 FTA 체결로 고통을 겪었던 남미 국가들에서는 식량주권을 법으로 제도화하는 등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어가고 있다.

한국에서도 농업의 일방적 희생을 전제로 한 FTA와 자유무역이 아닌 국민을 위한 무역과 식량주권의 대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할 때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농업의 일방적 희생을 전제로 하는 FTA를 중단하고, 호혜와 평등에 기초한 새로운 무역협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또한 더 늦기 전에 식량주권 실현을 위한 농정전환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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