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형 진  농업인·시인


요 며칠 날이 꽤 춥습니다. 바람이 세게 불고 하늘엔 검은 구름 짱이 쉴 새 없이 몰려왔다 사라집니다. 방안에 있으면 방문이 금방 환해졌다가 또 어느새 캄캄해집니다. 이럴 때마다 방안의 불을 껐다 켰다 합니다. ‘사흘 굶은 시어미 낯짝 같다’더니 그 말이 딱 맞다 싶게끔 하늘이 으르렁댄다고나 할까요, 일기예보엔 눈 소식과 함께 올 겨울엔 삼한사온의 날씨가 이어지겠다고 합니다. 삼한사온,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입니다. 그리고는 어느덧 잊힌 말인데 그게 금년 겨울엔 찾아온다니 어떤 모습일까요?

저희 집 식구들은 약 일주일 전부터 삼한사온 덕을 보는 것 같습니다. 가을 날씨가 내내 이어지다가 갑자기 물이 버걱버걱 어는 한겨울날씨가 찾아와버리니 열세 살 먹은 막둥이 아들 녀석이 먼저 감기에 걸렸습니다. 저희는 늘 하는 대로 몸을 따뜻하게 안정시키고 감기에 좋은 차를 달여서 마시게 하며 좋아지기를 바랐는데 끝장을 보려는 듯 제만해야 낫겠다는 듯 차도가 없었습니다. 이럴 땐 병원에 가야할까요? 항상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저희는 그냥 견뎌보기로 합니다. 병원에 아픈 아이 데리고 왔다 갔다 하기도 그렇고, 병원의 역할이란 게 결국 항생제 처방일 텐데 저는 그것에 대한 불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니 아픈 아이 하나를 가운데 두고 식구 셋이 얼굴 맞대고 들러붙어있게 됐습니다. 그래야 애가 빨리 낫기라도 한다는 듯이 말이지요. 특히 제 누나는 더 심하여서 기침으로 자지러지는 동생을 끌어안고 ‘내가 대신 아프고 싶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원대로 사흘째 되는 날 부터는 딸애가 열이 나고 기침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뱃가죽이 다 딸려 올라오는 듯해서 기침도 속으로만 하며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는 모습이 안쓰럽습니다.

요즈음 애들이 옛날 저희 클 때와 비교해 볼 때 면역력이 덜해서 그럴까요? 아니면 주변의 여러 환경이나 기후가 감기에 더 쉽게 걸리게 변해서 일까요? 제가 보기엔 둘 다 그렇다고 여겨집니다. 몸이 환경의 변화에 서서히 적응하면서 대비해 나가게끔 해야 되는데 지금은 그러기가 참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제 이럴 때 저희 내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애들이 구미를 놓지 않게끔 좋아하는 음식을 해 먹이는 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애들이라고는 하나 높은 신열과 기침에 시달리는데 무슨 입맛이 있겠습니까? 끼니때마다 겨우 잡아 일으켜서 턱밑까지 음식을 갖다 대 주어도 반 숟가락이면 도리질입니다. 음식 맛이 다 쓰기만 해서 이상하다고 하며 심지어 전등에서도 전자파가 나오는 듯하다며 불을 끕니다. 이렇게 또 사흘을 버티자 아들놈은 이제 그만해서 한고비를 넘겼나 싶은데 이제는 제가 어제부터 조금 얼쩍지근합니다. 밖에 나가서 조금 움직이면 금세 근육통이 생기고 목이 간질간질합니다. 여기서 더 움직이면 일 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는 형편이군요.

서해안지방에 눈이 오겠다는 12월 중순 무렵의 일기예보는 이곳에 오랫동안 살았던 저의 경험상 적어도 1미터 이상의 적설량과 20일 이상의 궂은 날씨일 거라는 느낌으로 다가오니까요. 그렇다면 가장 먼저 준비해놔야 할 게 땔나무입니다. 물론 비상용 장작이 앞 뒤 빼고 윗방과 정지방 처마 밑에 가득 쌓여 있습니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비상용입니다. 나무도 해가면서 때야지 그렇지 않으면 제아무리 많이 있다고 해도 금세 없어져 버리거든요. 그래서 날이 궂겠다 싶으면 단 열흘 땔 것이라도 새로 준비합니다. 이래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평생을 가난의 버릇에서 비롯한, 소심한 사람의 조바심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또 배추가 아무리 진딧물로 다 주저앉았다고는 해도 얼핏 보니 아직 열대여섯 포기 정도는 쓸 만한 게 있습니다. 그것도 눈 오기 전에 도려다가 겉잎 벗겨낼 만큼 벗겨내고 신문지로 겹겹이 싸놔야지요. 그러면 나중에 가끔 하나씩 꺼내서 나물이나 겉절이 따위의 새 반찬을 만들어 먹을 수 있습니다. 사정이 이러니 제 몸이 조금 이상하게 아플 조짐이 있다 해도 나까지 드러누울 수는 없습니다. 애들에게는 제 아비어미가 옆에서 건강하게 보살펴 주는 게 최고의 약이 아니겠습니까? 저녁에 아플 때 아프더라도 우선은 옷 몇 겹 든든하니 껴입고 밖에 나가서 나무하고 배추 도려다 놔야겠습니다. 사람 몸이란 게, 그리고 마음이란 게 참 신기해서요, 제가 이렇게 맘을 먹자 희한하게도 몸이 그대로 따를 준비를 합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달라지는 이 변화를 가만히 저는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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