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형 진  농업인·시인

오늘은 아주 오랜만에 동네에 마실을 갔습니다. 제 집과는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십년 전에 제가 살다 떠나온 동네입니다. 그곳엔 지금도 큰 형님네와 조카들이 살고 있고 위아래 친구들도 몇 명 살고 있습니다. 형님 댁에 볼일이 있으면 잠깐씩이야 얼른 갔다 오지만 마실은 몇 달만인 것 같습니다. 아침나절 한 시간 정도 구절초 밭의 꽃대궁을 예초기로 베어 내고 나서입니다.

하루에 조그마한 일 한가지씩이라도 하지 않으면 왠지 밥 먹기가 편찮아서 이제는 몇 가지 남지 않은 금년 일을 조금씩 아껴가며 할 요량입니다. 참 우습지요· 빨리 빨리 해치워 버리고 놀기 싫다면 어디 노동일이라도 찾아가야 할 텐데 말이지요. 정말이지 겨울엔 날만 좋다면 한 사나흘씩이라도 일 할 데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쨌거나, 저는 씻고 평상복으로나마 갈아입고 집을 나섰습니다. 특별할 것도 없는데 기분은 꼭 나들이 가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일에 대한 부담도 덜어지고 또 오랜만이어서 일겁니다. 이럴 때 저는 항상 마을로 바로 가지 않습니다.

굽이 진 신작로를 조금 걷다가 눈앞에 동네가 보이면 동네 뒤편에 있는 밭둑길을 타고 가며 이 밭 저 밭을 둘러봅니다. 언제부턴지 이제 밭마다 남아 있는 것은 김장 무 배추와 마늘 한 두룩 정도씩밖에 없습니다. 양파나 보리 같은 것은 눈을 씻고 봐도 없습니다.

보리를 심지 않은 것은 베서 탈곡을 할 수단이 없기 때문입니다. 5킬로미터도 더 떨어진 이웃 동네에나 가야 콤바인이 한 대 있는데 일거리가 적다고 그 콤바인이 오지 않는답니다. 그러니 뜨거운 초여름 그 껄끄럽고 그 중스러운 보리를 누구 손으로 베어서 탈곡을 합니까, 도저히 되지 않으니 심지를 못하는 거지요. 또 보리농사가 돈 되는 것도 아니고요. 양파가 심겨지지 않은 것은 일이 힘이 들어서입니다. 심는 일이야 캐 담는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것도 뜨거운 날씨에 허리 꼬부라진 할머니농부들이 할 일이 못되지요.

사정이 이러하니 가을밭이 쓸쓸하고 황량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 밭 저 밭 어디를 둘러봐도 어수선하기만 합니다. 겨우 뽑아 놓기만 해서 뻘겋게 말라가는 고춧대가 흰 비닐 끈과 검정비닐이 엉켜서 보기 흉합니다. 누구네 밭이라 할 것 없이 밭둑 구석진 곳에는 플라스틱 농약병이 쌓여 있고 농약봉지와 빵 같은 것이나 담아 가지고 와서 먹고 버렸을 비닐봉지들이 바람에 날려 흩어져 있습니다.

어떤 밭에는 쓰고 그대로 놔둔 것인지 버린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농약통·비닐호스·모터 따위가 뒹굴고 있기도 합니다. 작은 물도랑 옆에 있는 어떤 밭에는 몇 년을 버려서 쌓인 것인지 모를 비닐들이 산더미 같습니다. 그것이 일부 지난여름 큰물이 졌을 때 바다에까지 떠내려가 동네 뒷장불은 비닐투성이가 됐습니다. 이런 밭도 밭이며 이런 농사도 농사일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합니다. 어머니 대지를 이렇게 만들어가게 한 것이 무엇일까요?

저는 우리 동네 밭들이 이렇게 변하기 시작할 때 두려움에 남몰래 몸을 떨었습니다. 아무것도 심겨지지 않은 묵은 밭들이 여기저기 생겨나는 것은 그것이 바로 외지 사람들에 의해 투기된 것이란 증거입니다. 그곳에 쓰레기만이 쌓여갈 때, 저는 한때 그것을 제 식구들과 함께 일주일에 하루씩이라도 날을 잡아서 정기적으로 치워 볼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우선 저 혼자 몇 마대씩 주워내 보기도 했는데 날마다 줍는 것보다도 버려지는 것이 더 많았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서서히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가서 드나드는 외지인들이 많아진 때문이기도 하지요. 그러면서 제 마음속에도 쓰레기가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사실은 이렇게 변해가는 제 마음이 더 무서운 것이겠지요. 여기가 제 탯줄만 아니라면, 부모형제들이 물려준 제 피와 살 같은 저 땅만 아니라면 저는 아마도 진즉 이곳을 떠났을지도 모릅니다. 하기야 어쩌면 철들기 시작하면서 눈에 보이는 이런 것들 때문에 제가 시를 쓰게 된 것이긴 합니다만…….

천천히, 여러 생각에 잠겨서 걷다가 제가 가는 곳이 지금은 해수욕장이 된, 동네 서편에 있는 백사장입니다. 까아만 바둑돌, 반짝이는 조가비가 띠처럼 백사장을 뒤덮고 노송이 울창한 모래언덕에 빨간 해당화가 저녁노을에 피처럼 물들던 곳입니다. 뒤꼭지에 붙은 동네가 지척이어도 여름 소나기가 오려할 땐 도깨비가 날뛰던 곳, 시를 쓰다가 가슴에 불덩이 같은 게 차오르면 혼자 달려가 몇 시간이고 서서 서해바다에서 몰려오는 주먹씩만한 눈송이들을 온몸으로 맞던 곳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 백사장도 지금은 사람천지가 되고 호텔을 짓는다고 타워크레인이 서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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