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이름은 한자로 쓰면 그 의미가 상당히 고상하고 품격이 느껴진다. 그러나 한글로 써놓고 불러보면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한문이름에 담긴 깊은 뜻(?)에 스스로 위안을 하곤 한다.
음식의 이름에 얽힌 유래를 알아보면 생각 외로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많다. 우리가 익히 즐기고 있는 음식 중에서도 명사들의 은밀한 사연이 숨겨져 있는 음식들은 그 맛만큼이나 색다른 즐거움을 안겨준다.

 원래 ‘샌드위치’는 영국의 지방 이름이었고, 그 지방의 귀족 이름이 샌드위치 백작이었다. 이 샌드위치 백작은 카드놀이를 워낙 좋아해 한번 시작하면 날밤 새우는 것이 보통이었다. 식사를 제대로 할 리 없었던 그는 먹으면서 게임을 할 수 있도록 카드 테이블 위로 얇게 썬 고기와 빵을 가져오도록 했다. 그러자 도박할 때 먹는 간단한 식사 소문이 유럽 대륙 상류 사회로 퍼지게 되어 오늘날의 샌드위치가 된 것이다.

“당신이 무엇을 먹었는지를 이야기하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줄 수 있다”는 말로 유명한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Brillat-Savarin)은 ‘먹는 것’과 ‘테이블 위의 예술’에 대해 진지하게 글을 써온 사람들 중에서 최고의 자리에 있다. 법률가인 그는 1825년 「미각의 생리학」이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미식이라는 영역을 체계화하고 집대성하였다. 그의 이러한 성취에 대한 인정으로 치즈, 오믈렛, 연어 요리나 가니시, 디저트 혹은 콘소메에까지 그의 이름을 붙이고 있다.

또 다른 에피소드. 당대 최고의 요리장이자 근대 요리의 창시자인 에스코피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여가수 넬리 멜바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러나 그는 수줍어서 그녀에게 꽃조차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넬리 멜바가 런던의 사보이 호텔에서 혼자 식사를 하게 되자 에스코피에는 특별히 만든 디저트를 그녀를 위해 선보였다. 바닐라 시럽에 디저트용으로 쓰이는 데친 복숭아를 아이스크림 위에 곁들인 이 디저트는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너무나 마음에 드는 디저트를 발견한 그녀는 그에게 요리의 이름을 물어보았는데 에스코피에는 복숭아(피치)와 그녀의 이름(멜바)을 따 ‘피치 멜바(Peach Melba)’라고 하면 영광이겠다고 대답했다. 그녀가 이를 허락해 이후 이 디저트는 가장 인기 있는 메뉴이자 세계적인 디저트가 되었다. 20세기 초에 인기를 얻었던 넬리 멜바의 이름은 이미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으나 그녀의 이름을 딴 디저트 ‘피치 멜바’는 아직 남아 있으니 ‘인생은 짧고 음식이름은 길다’라고 해야 하나.

샐러드의 가장 기본적이면서 훌륭한 맛을 지니고 있는 것이 바로 ‘시저 샐러드’다. 기본적으로 채소(상추), 갈릭 드레싱, 치즈, 달걀, 앤초비(멸치젓), 빵조각으로 만든 샐러드를 뜻하는 시저 샐러드에는 다양한 기원이 있다. 특히 시저 샐러드의 메인 재료인 상추는 로마인들이 대중적으로 소비하는 것이라 ‘로메인 상추’라고 불리는데, 시저가 좋아해 ‘시저 샐러드’로 불린다는 설이 있다.

우리 음식에는 사람의 이름을 따다 붙인 음식은 없지만 그 이름에서 만든 사람의 정성과 기원이 그대로 담긴 운치 있고 품격 있는 음식이 꽤 있다. 정월 대보름날 농사의 풍요와 복을 기원하는 ‘복쌈’, 삼키기 아까울 정도로 맛있다는 ‘석탄병’, 탱글탱글한 볼에 입을 오므린 만두가 석류처럼 탐스러운 ‘석류탕’, 절묘한 맛이 기생이나 음악보다 더 낫다는 ‘승기악탕’ 또는 승가기탕, 경기 광주에서 보낸 국이 새벽종이 울릴 때쯤 서울 집에 도착한다는 ‘효종갱’, 여유와 멋이 느껴지는 ‘신선로’, 입을 즐겁게 해주는 ‘열구자탕’, 마치 매화나무에 참새가 앉은 모양과 같다하여 매화 매(梅), 참새 작(雀)을 쓴 ‘매작과’ 등이 있다. 이 얼마나 멋있는 이름인가.

우리가 불고기라 부르는 음식의 옛 이름은 ‘너비아니’이다. ‘설야멱적’은 너비아니구이의 원조 격인 음식으로, 쇠고기 등심을 넓고 길게 저며 썰어서 꼬치에 꿴 후 양념을 발라 구운 것이다. 눈 오는 밤 친구를 찾아가 구워 먹는다는 뜻으로 눈 雪, 밤 夜를 써서 雪夜覓炙, 雪夜炙이라고도 했으니 얼마나 낭만적인 이름인가!

과줄을 아시나요? 강정, 다식, 약과, 정과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름 ‘한과’와는 비교할 수 없이 고운 이름이다. 화반, 화전, 화채 등은 또 얼마나 멋들어진 이름인가!
우리 음식은 먹어서 입이 즐거울 뿐만 아니라 그 고운 이름을 자꾸 불러서 입이 즐거워진다. 자꾸 부르고 싶은 詩句처럼 고운 우리 음식! 복쌈, 너비아니, 과줄, 매작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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