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협조합원 4분의 1이 무자격자라고?
경남의 모 축협에서 조합원 10여명이 지난 1월 12일 부적합 조합원이 선거인 명부에 기재돼 있는 등 정관에 어긋난다며 법원에 조합장 선거 중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법원은 “2009년 조합원 실태조사 당시 1613명의 조합원 중 약 34%에 해당하는 549명이 실제로는 양축을 하지 않고 있고, 무자격 가능성이 큰 조합원이 30% 이상인 선거인 명부에 따라 선거가 치러지면 이를 무효할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한 내용상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가처분 이유를 밝혔다.

이에 따라 1월 20일로 예정된 선거가 미뤄지고, 조합원 실사를 통한 재정비에 들어갔다. 그 결과 전체 조합원 1600여명 중 양축조합원 1095명과 휴업조합원(양축하지 않은지 1년 이내의 조합원) 103명으로 조사된 1198명을 조합원으로 확정했다. 나머지 400여명에 대해서는 조합원 자격이 박탈됐다.

조합원의 4분의 1 가량이 무자격자, 심지어 남아있는 휴업조합원도 100여명. 이는 실제 협동조합 사업을 이용하지 않는 조합원이 3분의 1이라는 말이다. 이런 협동조합을 협동조합이라 할 수 있을까? 이런 조합원이 과연 협동조합의 발전을 위한 사업 참여와 의사결정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또 다른 축협에서는 좀 더 상황이 심각하다. 작년 개정된 농협법과 정관례에 따라 정관을 고치면서 이용고 기준을 조합원 평균이용의 100%로 정했다. 그 결과 기존에 있었던 출자금 기준, 신용도 기준 등을 함께 고려해 보니, 이감사로 출마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스무명 남짓한 상황이 벌어졌다. 자격을 갖춘 조합원이라 하더라도 제대로 축협사업을 이용하는 농가가 많지 않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낸 사례다.

◆협동조합원칙은 길잡이다.
“어떻게 하면 협동조합을 잘 운영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내가 참여한 협동조합이 일반적인 기업의 사업처럼 돈만 보고 하는 것은 아닐까? 농협의 발전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지만, 내가 하는 이야기가 과연 장기적으로 협동조합다운 협동조합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올바른 주장일까?”

앞의 생각들은 농촌현장의 조합원 뿐만 아니라, 농협을 개혁하겠다는 협동조합 운동가들이나 연구자들에게도 언제나 자문하게 된다. 이런 질문에 대해 그나마 제대로 된 답변을 얻으려면 “성공한 협동조합의 일반적인 운영원리들이 무엇이고,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

협동조합의 원칙은 이런 필요성에 의해 운동가들의 실천이나 이론적인 토론으로 만들어졌다. 무엇을, 어떻게, 어떤 단계를 거쳐 바꿔나가야 조합원이 진정한 주인이 되고, 일반기업에 비해서도 경쟁력이 있는 올바른 협동조합으로 만들 수 있을까?라는 고민의 답은 협동조합의 원칙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 찾기가 어렵다.

◆시대를 반영하는 협동조합의 7대원칙
성공적인 협동조합의 운영원리를 정리한 것이 협동조합원칙이다. 이는 협동조합의 발전과 시대의 변화에 따라 계속 변화되어 왔다. 유럽에서 처음으로 성공적인 협동조합을 운영한 로치데일협동조합의 운영원칙부터 국제협동조합연맹의 3차례에 걸친 협동조합원칙 선포까지. 협동조합원칙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유연하고 폭넓게 변해 오고 있다.

따라서 협동조합 원칙은 딱딱하게 굳어 새로운 협동조합활동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다.  협동조합의 가치를 활동 속에서 되짚어 볼 수 있도록 해주는 협동조합의 헌법이다.

1995년 국제협동조합연맹 총회에서 확정된 협동조합원칙은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조합원 제도부터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관리 △조합원의 경제적 참여 △자율과 독립 △교육, 훈련 및 정보 제공 △협동조합 간의 협동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의 7가지로 이뤄져 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1원칙인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조합원제도”는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이루는 핵심이다.

◆“협동조합, 핵심은 자발적인 조합원”
국제협동조합연맹에서는 제1원칙에 “협동조합은 자발적인 조직으로서, 협동조합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조합원으로서 책임을 다할 의지가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性)적·사회적·인종적·정치적·종교적 차별 없이 열려 있다”라는 설명을 달고 있다.

또한 이를 더욱 상세히 설명한 해설에서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조합 참여를 결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많은 나라에서는 경제적 압력과 정부제도가 사람들에게 특정한 협동조합에 가입하도록 강요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협동조합은 모든 조합원의 참여를 이끌어 내어, 자발적으로 협동조합을 지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 특별한 책임이 있다”라며 비자발적인 협동조합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그런 협동조합에게 더 열심히 조합원의 참여를 이끌어 내기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 농협은 처음 생겨날 때부터 현장에서 성장하고, 조합원의 자발적 참여가 확대되면서 전국적으로 퍼져간 것이 아니라 정부가 제도적으로 육성했다. 조합원들의 출자금도 처음에는 보리수매대금의 일부를 출자금으로 전환하여 마련된 것으로 어찌보면 세금같은 느낌이 강했다. 설립된 후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농협은 정부의 법적, 제도적 지원을 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정책이 농협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이런 구조에서 농협조합원들도 협동조합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조합원으로 참여하기 보다는 다른 이유가 더 크게 영향을 미쳐 조합원이 되는 구조다.

여기서 다른 이유란 가입하지 않으면 농어촌에서 정책자금이나 각종 지원의 우선순위가 낮아지고, 신용사업과 관련해서는 가입하지 않으면 각종 대출이나 예금에서 이자율의 손해를 보는 것 등이다. 

이렇게 가입한 조합원에게 협동조합은 ‘정부의 지원이 나오는 창구, 내가 아니더라도 정책과 제도로 운영되는 일종의 기업’ 쯤으로 인식된다.

◆농협이 자초한 비자발적 조합원 문제
조합원의 가입이 처음에는 자발적이지 않았더라도 협동조합은 그 가치와 성과를 조합원에게 전파하고, 참여와 지지를 이끌어 내야 한다. 그러나 조합원이 협동조합의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앞서 축협의 사례같이 자격없는 조합원을 방치한 행위는 축협 스스로 조합원을 주인이 아니라 고객 정도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실제 농촌현장에서는 조합장 선거가 다가오면 조합원 가입이 늘어나는 경우가 있다. 한 표라도 더 받기 위해 굳이 가입할 의사가 없는 농민들을 복수조합원제도를 악용하여 가입시키는 것이다.

조합원에게 영농기술교육은 시켜도 협동조합교육은 거의 하지 않는다. 협동조합교육을 시키면 직원이 피곤해진다는 말이 직원들 사이에서 농담처럼 떠돈다. 이게 농담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양한 사례에서 보인다. 농민단체가 조합에게 협동조합교육을 시키자고 요구하면 얼마나 실행이 될까?

“조합원들이 농협을 잘 모르고 농협을 비판한다”, “조합원들이 조합사업에 관심이 없다”고 임직원이 한탄하는 비자발적인 조합원의 문제는 이렇게 그동안 농협이 조장하고 자초한 것이다.

◆농협운영이 거꾸로 간다
자발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다른 이유로 참여한 조합원이 많으면 협동조합의 운영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우선 대의원이나 이감사, 조합장을 뽑을 때도 협동조합의 일꾼을 뽑는 것이 아니라 지역유지, 가까운 사람의 기준으로 뽑는다. 심지어 돈과 향응으로 표를 사는 경우도 발생한다. 최근 조합장 선거가 혼탁한 데에는 조합원이 협동조합에 무관심하고 은행 정도로 여기는 풍토가 가장 큰 원인이다.

필자는 한 조합원을 만나 조합장 선거에 돈을 뿌린 조합장이 되면 조합재산을 어떻게든 자기 것으로 만드는 비리가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을 했다. “받으면 안되는 것 아니냐”며 말을 걸었다가, “조합 돈이 내 돈인가, 자네 돈인가, 조합장이 안 먹으면 딴 사람이 먹을 건데 뭐가 문젠가”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생각하는 조합원이 많을수록 농협의 발전은 정말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복합영농을 하는 농민들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4~5곳의 협동조합에 가입한 농민들이 많다. 지역농협, 지역축협, 원예농협, 품목축협에 고루 들어갔을 뿐만 아니라, 신협, 새마을금고 등을 포함하면 4~5곳의 조합원으로 가입한다. 이런 조합원은 당연히 주인으로서가 아니라 고객으로서 행동하게 된다. 금리가 더 싼 곳, 수수료를 적게 주는 곳, 환원사업을 더 많이 해 주는 곳 등을 찾게 되고, 조합장 선거와 연계되어 조합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어렵게 된다.

◆“자발적 조합원 육성이 최우선”
농협의 발전을 위해 여러가지 처방이 나와 있다. 합병이나 연합사업, 신경분리 등. 하지만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지키는 조합원 자발성을 키우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단지 농협운영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높이는 것에서 머무르게 된다.

협동조합다운 농협을 만들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조합원들의 자발적 참여 확대가 중심에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다음의 과제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첫째 자격 없는 조합원을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 생산자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무자격 조합원을 정리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둘째 조합원에 대한 협동조합 교육을 지속적으로 시켜야 한다. 생활협동조합은 조합원이 가입하면 교육을 의무화하고 있다. 소비자협동조합보다 더 높은 참여가 필요한 농협에서 협동조합교육을 하지 않으면 조합원들의 적극적 참여는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 대의원, 이·감사, 조합장의 자격조건으로 교육이수 여부를 정관에 명시해야 한다. 올해 농협법 개정 후 정관개정에서 반드시 관철되어야 할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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