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인간이 일반적으로 많이 사육하고 사용하는 가축 중에서도 비교적 늦게 가축화됐다. 소는 1만 년 전에 가축화됐지만 말은 약 6천~5천년 전에 가축화됐다. 말의 가축화 과정에 또 다른 특징은 인간의 개입이 적었다는 것이다. 말은 소, 돼지보다 야생종의 유전적인 변이성이 적은 요인도 있지만 역축으로서 인간이나 물자를 빠르게 운반하는 선천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생동물을 가축화하면서 인간은 보다 많은 우유, 고기, 털, 지방을 생산할 수 있도록 개량 해 왔으나, 말은 가축화되기 이전부터 장거리를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진화돼 왔기 때문이다. 가축화된 말에서 인간이 요구한 것은 속력과 견인력의 향상뿐이었다.

말이 가축화 된 신석기시대 흑해연안 유적에서는 인위적으로 절단된 말의 뼈가 출토된다. 가축화의 초기단계에서는 육용으로 이용됐다는 증거이다. 인간이 말을 운반이나 농용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4천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약 천년이상 말의 사육목적은 식용이었던 것이다.

언제부터 기마기술을 인간이 습득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그 기간은 매우 오래 걸렸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말은 앞니와 어금니사이에 송곳니가 없고 송곳니 자리에 치극이라는 이빨이 벌어진 곳이 있다. 이곳을 잘 이용하면 인간의 의도대로 말을 조정할 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치극에 맞는 도구로 재갈을 발명하게 된다. 기원전 4천년에서 3천년 전 경 것으로 추정되는 목재, 뼈, 뿔 등으로 만든 재갈이 발견된다. 그 이후에 안장 등자의 순으로 마구가 개발됐다고 한다.

유목민족에게 기마기술과 새로운 마구의 개발은 인간사회의 큰 변화를 가지고 왔다. 기마기술이 전투수단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특히 등자의 개발은 기승자의 활동영역을 대폭적으로 넓게 만들었다. 등자는 말에 탄 사람이 말의 등에서 엉덩이를 들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고, 마상에서 활이나 창을 던질 수 있게 됐던 것이다. 등자를 처음으로 이용한 부족은 몽고의 흉노족으로 알려져 있다. 말위에서 인간이 자유롭게 활동하면서 화살, 창 등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지금의 전차에 미사일을 장착한 것과 같은 전투효과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유목사회의 민족과 농경사회의 민족은 본래부터 서로 다른 문화에서 성립된 것으로 양자간의 이질성이 컸다. 이 이질성은 언제든지 충돌을 할 수 있는 위험요소가 내포돼있고 또 자주 충돌하고 있었다. 유목민에게 전해진 기마기술은 이런 충돌의 규모를 확대 시키는 계기됐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역사가 다이내믹하게 바뀌는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이다. ‘말이 역사를 바꾼 것이다.’

지평선의 끝에서 수많은 기마군단의 기습공격은 농경사회에서 매우 두려운 존재였고 수비자인 농경사회는 공격으로부터 방어키 위한 벽을 설치하고 기마기술을 배움으로서 유목사회에 대응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기마전술과 병기는 더욱더 발전하게 된다.

기원전 1천년 이후 유라시아대륙의 중앙부에서 북부에 걸쳐서 스키타이족, 흉노족, 초기몽골의 일파인 선비족, 돌골족, 회골족 등 기마기술이 발달한 유목민족은 유목국가를 만들었다. 이런 유목국가 중 최고의 국가는 우리나라까지 침략한 몽고제국이다.

근대이후에 무기의 발달은 기마전술을 무력화 시키는데 성공했다. 기마라는 전술 무기로 무장한 유목국가의 파괴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지구상 마지막 유목국가를 지금의 중국 신장 지역에서 백여 년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가 지난 1757년 청의 고종에게 붕괴된 종갈제국이다. 기마군단의 위력은 1914년에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거의 찾아 볼 수가 없게 된다.

지금은 말의 군사적인 역할은 찾을 수 없으나 아직도 인간과 말은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기마라는 행위를 통해서 인간과 말이 하나가 되는 일체감을 최소한 인간은 즐기고 있는 것이다. 현대인이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기계와 인간의 일체감을 즐기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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