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금이 없으면 사업하기 힘들다
강원도의 고 아무개(43)씨는 작년 한우사육을 결국 포기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으로 한우가격이 하락할 거라는 소문이 떠돌고, 사료값이 올라가자 덜컥 겁이 날 수밖에 없었다. 싼 값으로 한우를 팔아버린 후 예상외로 한우가격이 정상화됐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됐다.

농사를 지으려면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어간다. 쌀농가를 예를 들자. 평균 경작면적인 4500평 쌀농사를 지으려면 대략 4억원이 들어간다. 평당 5만원만 잡아도 2억원, 주요농기계만 갖춰도 1억원, 기타 농비, 생활비 등 1억원이 필요하다. 4억의 필요자금 중 내 돈으로 충당하는 것이 자본금이다. 내 돈이 부족해 남의 돈을 빌리게 되면 부채, 즉 빚이다.

빚이 많은 농가는 농산물 가격이 오르내리면 자본금이 많은 농가에 비해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당장 가격이 하락하면 이자낼 돈이 없게 된다. 빚이 많으면 이자율도 높아진다. 연체될 경우에는 이자부담이 배가된다. 고 아무개씨가 눈물을 머금고 소를 팔 수 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도 결국은 자본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빚내서 사업하는 중앙회 경제부문
한 농가에서 필요한 자본금도 최소한 몇 억이 훌쩍 넘어버린다. 농협중앙회가 전국을 대상으로 다양한 경제사업을 하려면 당연히 많은 자본금을 확보해야 한다.

많은 농업인들이 양재물류센터를 견학하면서 “이게 얼마짜린고?”라며 감탄한다. 당연히 농협중앙회가 천문학적인 액수의 자본금을 투입했으리라고 짐작한다. 농협중앙회의 2008년말 자산이 2600조원을 넘어서는 상황에서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2008년 농협중앙회 내부자료에 따르면 농업경제부문 사내자본금은 1382억원. 2008년말 투자액 1조원의 14%에 불과하다. 축산경제의 경우도 대동소이할 것으로 보인다. 농협중앙회 자본금 10조원 가운데 농업경제에 배정된 사내자본금이 1382억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경제사업의 처지를 대변하고 있다.

2008년 중앙회 대차대조표에는 농업경제사업부채 3조174억원, 축산경제사업부채 8516억원으로 경제사업의 부채는 4조원에 이른다. 농협 내부자료에 따르면 농업경제부문에서 필요한 부채는 투자액 1조원에서 사내자본금을 뺀 8647억원이다. 내부적용금리 6.8%를 계산해 보면 매년 588억원이 농업경제부문에서 신용부문으로 들어가는 대출이자다. 즉 농업경제부문 적자의 절반이 중앙회 신용부문에서 빌린 돈의 이자라는 말이다.

더구나 높은 이자율로 경제사업에 부담을 더 지우고 있다. 작년 국정감사에서 김학용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농협중앙회의 공공부문 평균대출금리 4.6%, 기업 평균대출 금리는 5.31%와 비교할 때 경제사업 지원 금리는 5.6%를 적용하고 있다. 이 점만 봐도 경제사업은 적자사업이라는 농협중앙회의 주장을 받아들이기기 어렵다.

◆필요자본금은 얼마인가?
필요자본금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① 목표 사업량 및 투자규모 ② 현재 확정된 자본금 ③ 분리시기 ④ 분리시기까지 적립할 수 있는 내부유보금 규모 ⑤ 사업별 부채비율 산정기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각각의 설정 원칙이나 타당성을 세부적으로 따질 수는 없으므로 여기서는 농협개혁위원회와 농협중앙회가 산정한 필요자본금을 소개한다.

농협개혁위원회는 2009년말 자본금을 12.2조원으로 산정한다. 경제사업에 5.3조원, 금융지주에 12.1조원, 상호금융연합회에 0.8조원 등 총 18.2조원의 자본금이 필요하다고 계산했다. 따라서 부족자본금은 6.0조원이다.

반면 농협중앙회의 자료에는 현재 자본금을 13.8조원으로 산정한다. 경제사업에 7.1조원, 금융지주에 15.2조원, 교육지원에 1.1조원 등 총 23.4조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경우 부족자본금은 9.6조원이다.

두 계산법은 공통적으로 경제사업자본금의 부채비율을 100%로 계산하고 있다. 또 최소한의 BIS비율을 전제하고 있다. 금융지주의 자본금 차이는 분리시기와 금융사업 목표규모를 다르게 잡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사업의 필요자본금도 농협개혁위원회안에서는 사업준비금을 산정하지 않고, 투자규모를 10조원 정도로 계산했다. 그러나 농협중앙회안은 투자규모는 8.9조원으로 잡고 여기에 사업준비금 2.54조원이 포함되어 있다.

◆부족자본금을 어떻게 조달할까?
부족자본금이 발생할 경우 이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실제 2007년 농협 신경분리안을 합의하여 2017년 신경분리를 결정하게 된 것은 부족자본금을 자체적으로 마련하는 기간을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현재 농협중앙회의 경영여건으로는 부족자본금을 자체적으로 확보할 수 없다. 따라서 중앙회의 조합원인 회원농협의 출자나, 정부 등 외부에서 지원을 받아야 한다.

협동조합 조합원의 의무 가운데는 필요자금에 대한 조달의무가 있다. 따라서 농협 자체에서 가급적 부족자본금을 조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전체를 내부에서 조달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규모와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농협개혁위원회안에서는 2조원을 내부(1조원 출자, 1조원 상호금융예치금 활용)에서 마련하도록 되어 있다. 또 4조원은 정부에서 출자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농협중앙회안은 3.6조원을 내부적으로 조달, 정부가 6조원을 출연하는 방식으로 지원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는 “조합의 자율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라는 단서가 붙어있다.

농식품부는 농협법 개정 입법안 해설에서 “필요자본금의 계산을 위해 법개정 이후 실사를 통해 직접 필요자본금의 규모를 산정하고, 그에 맞춰 지원규모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농협중앙회는 “부족자본금에 대한 구체적인 조달방안이 없을 경우 사업구조개편 추진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농식품부를 압박하고 있다. 농민단체들도 가급적 빨리 정부의 입장을 밝히고, 법개정 취지에 필요한 지원을 하겠다는 사항을 문구로 삽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 왜 경제사업자본금을 먼저 확정해야 하는가?
경제사업의 자본금 계산은 복잡할 수 있다. 우선 경제사업의 목표수준을 얼마나 높게 잡느냐에 따라 투자규모가 달라 질 수 있다. 또 투자된 자본의 활용수준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도 자본금이 달라진다.

농협중앙회는 금융지주회사를 먼저 독립시키고, 경제지주와 상호금융은 나중에 하자는 입장이다. 이 경우 자칫하면 금융지주회사에 자본금이 휩쓸려 들어갈 수 있다. 또 정부의 지원규모가 줄어들 경우 그만큼 경제사업 투자액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법 개정 후 정부지원이 불가능하다고 한다면 실제 경제사업의 운영은 더욱 축소된다. 경제사업 활성화를 위해 신경분리하자는 원칙에는 모두가 동의하지만, 막상 결과는 경제사업을 축소하는 구조개편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농민단체도 경제사업자본금을 먼저 확정하고, 이후에 금융지주회사의 자본금을 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금융지주의 역할은 무엇인가?
농협중앙회의 은행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따라 금융지주를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진다.
농협중앙회는 금융지주 활성화를 통해 경제사업과 회원농협의 경영을 지원하는 ‘수익센터’로서의 역할을 주장하고 있다.

이 경우 매년 1조원 정도의 수익을 농협에 제공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매년 4조원 이상의 순이익을 올려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다.

반면 농협개혁위원회는 은행업은 엄밀히 말하면 협동조합적 사업이 아니다. 따라서 금융지주를 분리, 기업공개를 통해 상장차액을 확보하는 ‘투자센터’로 하자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서는 일선 조합장들이 반발하고 있다. 조합장들은 이를 두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팔자는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자본금 배분, 이렇게 하자
지금까지 알아 본 바와 같이 자본금 배분의 방식을 결정하는 데에는 많은 쟁점과 복잡한 판단기준이 얽혀 있다. 하지만 원칙을 명확히 하고 접근한다면 쉽게 입장을 정할 수 있다.

첫번째, 현재 자본금 수준에서 경제사업과 금융지주회사, 상호금융에 투입할 자본의 비율을 정하고, 이후 내부유보금에 대해서도 동일한 비율을 적용한다.

두번째, 분리시기에 부족한 자본금에 대해서는 역시 동일한 비율로 지원규모를 정한다. 이때 금융지주는 정부의 자금이 필요한 만큼 직접 투입되고, 경제사업은 출자, 출연, 보조사업 지원 등을 포괄하여 산정한다.

세번째, 지원규모를 산정할 때는 각 사업의 목표와 규모를 우선 합의하고, 그것을 달성하는 데 충분한 자본금을 제공하는 것으로 한다는 것을 명확히 하면 되겠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법개정 취지문에 포함시키고, 국회에서 의사록으로 남겨두는 수준에서 상호신뢰하에 구조개편을 추진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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