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사례탐방-괴산 불정농협

규모는 작지만 조합원 개개인이 갖고 있는 협동조합에 대한 이해도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또한 조합 운영에 있어 조합장의 독단이 없다. 조합원 스스로 예산을 편성하고, 조합 임직원은 주간 및 월간 단위 일정은 물론 세부적인 업무추진 상황까지도 조합원 모두와 공유한다.
협동조합에 대한 조합원의 높은 이해도와 조합운영의 투명함을 자랑하고 있는 이곳이 바로 충북 괴산의 불정농협이다.

◆“협동조합을 알자”

불정농협이 전국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농민 조합원 스스로 조직한 ‘협동조합연구모임’ 때문이다. 협동조합연구모임은 농민 조합원 스스로가 협동조합의 이론과 목표를 자각하고, 현실적인 조합운영에 참여하면서 협동조합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노력이다.

협동조합연구모임은 1986년 불정지역에서 작목반형태로 출발한 ‘새농회’가 모태다. 당시 새농회는 작목반 조직이면서도 산지 경매를 진행했다. 3~4년간 산지 경매의 경험이 쌓이면서 작목반원들은 자연스럽게 경제사업의 개념을 깨닫게 됐다.

산지경매가 자리를 잡으면서 돈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지역농협의 견제가 들어왔다. 그 동안 손 놓고 있던 지역농협이 산지경매에 뛰어들면서 작목반과 조합이 경쟁하는 꼴이 됐다. 이에 협의를 통해 조합이 경제사업을 담당키로 했다.

막상 조합이 경제사업을 전담하자 문제가 생겼다. 농민 조합원이 생각하는 바를 조합이 따라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새농회를 중심으로 “조합의 대의원과 이·감사에 진출해 농민 조합원의 요구대로 조합을 변화시키자”는데 뜻이 모아졌다.

◆매달 1·11·21·31일…‘연구모임의 날’

협동조합연구모임은 1990년 부터 본격화 됐다. 새농회의 진성회원(500만원 출자회원)을 중심으로 모임이 진행됐다. 매달 1일과 11일, 21일, 31일 등 1자가 들어가는 날에 모임을 갖기로 했다.

연구모임 초기에는 친목회 수준이었다. 사랑방에 모여 조합에 대한 서로의 불만을 토로하는 자리였다. 그러다 차츰 서로의 의견이 쌓이면서 협동조합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으로 옮겨갔다. 누구 하나가 조합의 사업에 대해 듣고 오면 그에 대한 토론이 진행됐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조합에 자료를 요구하기 시작했고, 자료를 보기위한 공부가 진행됐다.

연구모임의 중심회원이었던 현 불정농협 남무현 조합장은 “연구모임을 통해 1992년에 감사가 된 후 자료를 직접 보기 시작했다”며 “원칙을 알면 농협회계가 일반회계보다 쉽다. 다만, 접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연구모임의 성과를 설명했다.

조합에서 진행하는 사업과 의사결정 과정도 되짚어봤다. 일종의 역할극이다. 조합에서 결정한 사업과 의사결정에 대해 회원 스스로가 조합의 임원역할을 대신했다. 이를 통해 조합원이 요구하는 조합의 참모습 실현을 위한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조합이 나아갈 방향과 조합원에게 필요한 조합의 역할 등에 대한 요구가 구체화됐다. 구체화된 내용을 조합에서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대의원과 이·감사직의 진출이 필요했고, 불정농협은 서서히 변화되어 갔다.

불정농협은 어느새 대의원의 70%, 이사 11명 가운데 9명이 연구모임 출신으로 채워지게 됐다. 연구모임의 몇몇 회원들은 외부 회계감사로 나설 정도다. 그리고 2005년 연구모임 출신 조합장이 탄생됐다. 지금의 남무현 조합장이다. 남 조합장은 1차례의 고배를 마셨지만, 2005년 첫 조합장에 당선된 후 지난해에는 무투표로 2선 조합장이 됐다.

◆“누구나 참여하는 연구모임으로”

현재 불정농협의 연구모임은 멈춰있다.
이유는 안팎에 있다. 우선 외부 견제가 심해졌다. 연구모임 출신들이 대의원, 이·감사는 물론, 조합장까지 진출한데 대한 질투어린 시선이다. 특히 조합장을 배출한 후 연구모임이 조합장의 사조직이 아니냐는 야유까지 나왔다.

지역사회에서 조합장이 차지하는 위치는 남다르다. 특히 농촌사회에 있어 조합장의 위치는, 지방선거 등에 있어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기 때문이다. 일부에서 이를 의식하고 견제가 노골화 된 것이다.

내적으로도 끈이 풀어졌다. 조합의 핵심적인 자리를 연구모임 회원들이 차지하면서 성취욕에 취했다. 조합운영의 변방에서 중심을 향해 전력질주했다. 그러다 중심에 서자, 초심이 흔들렸다. 남 조합장은 “연구모임을 통해 조합장이 배출된 후 성취감에 들떠 연구모임 자체가 흐지부지됐다”고 아쉬워했다.
불정농협의 연구모임은 거듭남을 준비 중이다. 최근 불정농협은 교육사업으로 연구모임을 흡수하려 하고 있다. 조합의 교육사업을 통해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협동조합을 교육하기 위함이다.

인터뷰-남무현 불정농협조합장

“지역농협은 지역농업을 고민하지 않으면 존재할 가치가 없다”

“지난해 말 한꺼번에 100억원의 예탁금이 증가했다. 이는 경제사업에 대한 수매대금이 조합원들에게 지급되면서, 이 돈이 조합에 다시 예치됐기 때문이다. 경제사업을 통한 조합원의 수익증가는 자연스럽게 조합의 신용사업으로 이어졌다.” 경제사업의 효과를 설명하는 남무현 조합장의 말이다.

불정농협이 관할하고 있는 충북 괴산군 불정·감물 지역은 백태(노란콩)의 전국 최대 주산지. 우리나라 백태값은 불정농협이 좌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정농협이 수매하는 백태값은 전국 평균을 상회한다.

남 조합장은 “지난해 불정농협은 kg당 3415원에 백태를 수매했다”면서 “여기에 이용고 배당 등을 합칠 경우 실질적으로 조합원에게 돌아간 수매가는 kg당 3500원 수준이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전국 평균 수매가(kg당 3200원) 보다 300원 높은 가격이다. 40kg으로 환산하면 1만2000원이 조합원들에게 더 돌아간 것이다.

지난해 추곡수매에서도 불정농협은 전국에서 가장 빨리 수매가를 결정했다. 40kg 1가마당 5만원. 4만5000가마를 수매하는 불정농협은 가마당 5000원 정도의 손실이 예상됐다. 그러나 조합원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 손실은 조합이 충분히 부담할 수 있다는 판단에 내린 결정이었다.

남 조합장은 “협동조합 운영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조합의 수익창출이 아닌, 조합원이 영농활동을 통해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불정농협은 조합원들에게 무료로 비료를 나눠주거나, 출자·이용고배당 등을 선호하지 않는다”면서 “조합 운영에 있어 1~2억 정도면 조합원들에게 충분히 생색을 낼 수 있는 행동들이지만, 협동조합의 원칙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료 비료지원 등 생색내기 사업에 조합원들이 길들여져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남 조합장은 “지역농협은 지역농업을 고민하지 않으면 존재할 가치가 없다. 이것이 불정농협이 추구하는 ‘제1 가치’다”고 역설한다. 불정농협은 지난해 8억원의 흑자를 냈다. 이는 괴산군에 있는 지역농협의 수익을 모두 합한 것보다도 많다는 설명이다. 산지가 많은 불정, 감물 지역은 다양한 작물이 재배되고 있다.

콩, 감자, 옥수수, 홍고추 등 1년 내내 수매사업이 이어진다. 최근에는 공동브랜드 ‘햇사레’로 복숭아가 출하되면서 재배농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불정농협은 이를 지원하기 위해 전문 원예기사를 스카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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