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우리에게 12월은 온통 크리스마스이다. 11월말부터 대형 백화점의 쇼윈도에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시작되고 각 지방자치단체 청사 앞에는 대형트리가 설치되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거리엔 캐럴송이 올려 퍼지고 빨간 구세군 냄비가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어느 누구나 할 것 없이 이번 크리스마스엔 가족들, 연인들, 친구들에게 어떤 선물을 할지, 어떤 이벤트로 즐겁게 보낼 지를 고민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 조상들은 이 시기를 어떻게 보냈을 지가 궁금해지면서 불현듯 크리스마스 며칠 전에 있는 동지(冬至)가 떠올랐다. 동지는 1년 중에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음(陰)의 기운이 가장 강하다는 동지는 이 날을 계기로 다시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기 때문에 태양이 다시 부활하여 양(陽)의 기운이 싹트기 시작한다고 하여 옛 중국의 <역경>에서는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로 삼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전통사회에서도 동지를 ‘작은설’이라 하여 설 다음으로 가는 명절로 대접했다 하고 <동국세시기>에서도 동지를 ‘아세(亞歲)’라고 해 ‘다음 해가 되는 날’로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떡국과 마찬가지로 ‘동지팥죽’을 먹어야 한 살을 더 먹는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드는 의문이 동지에 팥죽을 먹는 까닭이다. 예부터 팥의 붉은 색은 귀신을 쫓는 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역귀뿐만 아니라 집안의 모든 잡귀를 물리치는 데에 이용되어 왔다. 붉은 색은 태양 즉 ‘양(陽)’을 상징하는 것으로 밤이 가장 긴 동지에 팥죽을 쑤어 먹어 음(陰)의 속성을 가지는 귀신을 물리치고자 했음을 유추해 볼 수도 있다.

동지팥죽에 대한 재미있는 유래 몇 가지를 살펴보면, 우선 요즘 한창 인기를 얻고 있는 선덕여왕과 관계된 일화가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선덕여왕의 미모에 반한 지귀라고 하는 자가 선덕여왕이 황룡사에 예불을 드리러 가는 도중에 뛰어들어 그 연모의 맘을 고백하였고, 이를 가엽게 여긴 선덕여왕은 예불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였다. 하지만 기다림을 참지 못한 지귀는 심화가 끓어올라 죽고 말았다. 지귀는 죽은 후 악귀가 되어 신라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방화와 같은 나쁜 짓을 하여 사람들에게 해를 입혔다. 이를 달래기 위해 해마다 동짓날이면 팥죽을 쑤어 집집마나 대문과 길에 뿌려 귀신을 물리쳤다고 한다.

또 다른 것으로 중국의 <형초세시기>에 의하면 공공씨라고 하는 사람의 재주 없는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 역질 귀신이 되었는데, 그 아들이 살아생전에 팥을 두려워하여 팥죽을 쑤어 역질 귀신을 물리쳤다는 이야기가 있다.

예전에는 동지 팥죽은 다 만들게 되면 우선 사당에 먼저 올려 조상이 맛보게 한 다음 각 방과 장독, 부엌, 마루, 우물, 헛간, 대문, 뒷간 등에 한 그릇씩 놓아 집을 지켜주는 신에게 올리고 사람이 자주 드나드는 대문이나 문 근처 벽에 솔가지로 흩뿌리는 절차를 지내고 나서야 집안 식구들에게 먹게 하였다고 한다.

또한 동지팥죽은 반드시 이웃과 나누어 먹었는데, 먼저 어른이 계신 집에 한 그릇을 보내면 받은 집에서는 다시 그 그릇에 채워 돌려보내며 이웃 간의 정을 돈독히 했다고 한다.

팥죽의 주재료인 팥은 단백질, 비타민 B1이 풍부하며 특히 곡류에 부족하기 쉬운 라이신, 트립토판이 많이 들어 있는 등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의 질이 높은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비타민 B1은 탄수화물 대사를 돕는 영양소로 신체에 활력을 주고 몸을 따뜻하게 하며 지방의 체내 축적을 막는 작용을 한다. 팥에 풍부한 사포닌은 이뇨, 소염 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심장병, 신장질환으로 몸이 붓거나 간경화로 복수가 찬 사람에게 좋다고 한다. 또한 팥의 식이섬유는 변비를 완화시키고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추어 주고 팥의 붉은 색을 나타내는 안토시아닌은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항산화성분으로 알려져 있다.

동지팥죽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찹쌀로 단자를 만들어 새알만한 크기로 빚는 새알심이다. 동지팥죽에 새알심은 자기 나이 수대로 먹어야 다음해를 건강히 지내고 비로소 한 살을 더 먹게 된다고 한다. 이 새알심의 맛을 좋게 하게 하기 위하여 꿀에 재기도 하였고, 땅콩이나 아주 작은 동전을 넣어 그것을 씹는 아이에겐 따로 선물을 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올해 동지는 12월22일이다. 이번 주말에 식구들끼리 둘러 앉아 찹쌀로 새알심을 같이 만들며 올 한해를 마무리하는 소회를 나누어 봄도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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