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1년 중 가장 큰 보름달은 정월 대보름의 달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지구와 달간의 거리가 가장 가까울 때 보이는 보름달이 가장 큰 보름달로 그때그때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왠지 추석 보름달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은 풍성한 오곡백과 때문일 것이다.

필자에게 추석 보름달은 늙은 호박을 연상시킨다. 보름달과 같은 노란 빛깔 때문 또는 늙은 호박의 펑퍼짐한 생김새에서 풍기는 여유로움 때문인 것도 같다. 어쩌면 호박 꿀단지 생각이 간절해서 일 지도 모르겠다. 잘 익은 늙은 호박의 꼭지 부분에 뚜껑을 만든 후 속의 호박씨를 긁어낸 다음 꿀을 채워 찜통에 쪄 먹는 호박 꿀단지의 달콤함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서 일 것이다.

‘가을 보약’으로도 불리는 늙은 호박은 ‘꼭지부터 씨까지 버릴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실속 있고 몸에 유익한 식품이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호박은 맛이 달고, 위장을 편하게 하고, 산후 진통을 낫게 하며, 눈을 밝게 한다고 한다. ‘동지에 호박을 먹으면 중풍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도 전해져 오는 것으로 보아 우리 조상들도 호박을 건강식품으로 먹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예부터 붓기를 빼는 데에는 늙은 호박이 제일 좋다고 알려져 왔고, 여성들의  다이어트 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늙은 호박의 당분은 소화 흡수가 잘 되어 위장이 약한 사람에게 아주 좋고, 식이섬유가 많아 같은 양의 밥에 비해 열량은 4분의 1이나 적은 반면 만복감을 느낄 수 있어 당뇨병과 비만 예방에 좋다고 한다. 호박의 칼륨은 체내 이뇨작용을 촉진시켜 특히 산후 붓기를 제거하는 데 효과적이며, 또한 비타민 A, C, 그리고 B2의 함량이 높다.

특히 늙은 호박의 노란색을 내게 하는 베타카로틴은 우리 몸에 들어가면 비타민 A로 전환되는 물질인데 노화와 암, 심장병 등 각종 만성질환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항산화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국립암연구소의 뉴저지에서 오랫동안 흡연을 해 온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당근, 고구마와 함께 호박이 폐암 예방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당근, 고구마, 호박을 가장 적게 먹는 그룹이 가장 많이 먹는 그룹에 비해 폐암에 걸릴 위험이 두 배나 높은 것으로 보고하였다.

게다가 콜레스테롤 산화 예방기능도 있는데, 콜레스테롤의 산화는 동맥경화, 심장병, 뇌졸중 등의 원인이 된다. 천연 식품 속에 들어 있는 베타카로틴은 과잉 섭취에 의한 위험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박 반 컵 정도만 먹어도 베타카로틴의 하루 섭취 권장량인 6밀리그램을 충족시킬 수 있다.

핀란드에서 이루어진 연구에서 건강기능식품으로서의 베타카로틴 보충제의 섭취는 오히려 흡연자들의 폐암 유병률을 높이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호박에는 베타카로틴 외에도 루틴, 셀레늄, 비타민 E 등의 항산화물질도 들어 있는데, 이들이 시너지 효과를 내어 각각의 항산화기능을 더 좋아지게 한다.

민간에서는 식용 외에도 호박을 이용해 왔다. 종기에는 호박엿을 살짝 불에 녹여 종기 자리에 붙여 삭히기도 했고 호박씨를 회충, 촌충을 없애는 구충제로 쓰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인디언들도 호박을 화상과 외상 치료에 사용했다고 하는데, 호박을 으깨어 차갑게 한 뒤 화상 부위에 바르기도 하고 껍질 깐 호박씨를 호박꽃과 같이 으깨어 외상 치료에 활용했다고 한다. 또한 서양에서는 할로윈 데이(10월31일)에 늙은 호박의 속을 도려낸 뒤 도깨비 얼굴을 새기고 속에 양초를 넣은 잭-오-랜턴(Jack-O-Lantern)을 만들어 여기저기 걸어 놓기도 하니 호박의 쓰임새란 참으로 여럿이다. 

늙은 호박을 먹는 방법 역시 다양하다. 가장 흔하고 대중적인 음식이 잔칫상에 빠지지 않는 호박죽일 것이고, 범벅, 떡, 엿, 김치, 정과, 부침, 장아찌 등 전통음식뿐만 아니라 양갱, 케이크, 팬케이크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늙은 호박은 가을에 수확한 뒤 보관만 잘 하면 겨우내 두고두고 먹을 수 있어 먹을 것이 부족했던 옛날에는 겨울철 부족해지기 쉬운 비타민과 무기질의 좋은 급원이 되었다. 특히 호박단지와 호박범벅은 겨울철 아이들의 좋은 보양식이자 간식이었다.

호박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 한 토막! 호박은 보통 측간(화장실) 지붕이나 땅에서 자라는 천한 식품이기 때문에 제사상에는 올릴 수가 없다고 한다. 예전에는 호박은 대부분 인분(人糞)을 주어 길렀기 때문에 필자 역시 어린 시절에는 호박이 정말 싫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건강식품, 다이어트 식품으로 인기를 얻고 있으니 이 또한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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