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흘리개 어린 시절, 넉넉지 못한 집안 살림에도 불구하고 또래 친구들에게 어깨가 으쓱한 자랑거리가 있었다. 외항선원이신 아버지가 주신 디즈니 만화 캐릭터 신데렐라가 그려진 손목시계와 바나나였다. 당시에는 바다 건너 온 바나나는 흔하지 않은 고가식품이었다.

지난해 시행된 ‘음식점 원산지 표시제’ 덕분에 육류를 구입할 때나 밖에서 식사를 할 때마다 내가 먹고 있는 이 고기가 얼마나 멀리서 왔나를 찾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벨기에에서 온 닭고기, 칠레산 돼지고기 등등 ‘먼 거리에서 오느라 고생이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현재 우리나라에 투명한 휴대용 커피 잔을 유행시키고 갈수록 매장을 확장해 가고 있는 ‘스타벅스’는 남미 등에서 아동 착취에 의해 생산된 커피를 원료로 사용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불매운동에 시달렸던 적이 있다. 현재 스타벅스에서는 공정무역(Fair Trading)에 의해서 구입한 커피를 사용하고 있다.

올해 ‘발렌타인 데이’에는 ‘착한 초콜릿’이 화제였다.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의 대부분이 서아프리카에서 생산되는데 그 중 코트디부아르는 전 세계 카카오의 40%를 생산하는 최대 생산지이다.

그런데 이 나라의 카카오 농장들에는 약 30만 명의 어린이들이 일하고 있고, 9~16세의 어린이들이 상당수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 어린이들에게 학교는 먼 나라의 이야기이고 노예와 같은 대접으로 중노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카카오의 원가를 낮추기 위해 값싼 아동 노동을 선호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산된 카카오는 엄청난 중간마진이 붙어 우리 손에 초콜릿으로 들어오게 된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조금 더 가격을 지불하더라도 공정무역을 통해 생산된 초콜릿을 구입하자는 것이었다.

윤리적 소비자(Ethical Consumer), 공정무역, 우리에게는 아직 낯선 용어들이다. 윤리적 소비자 운동은 자원고갈, 환경파괴, 인권침해, 노동착취 등 인간, 동물, 환경에 위해를 가하는 모든 상품을 불매하고, 공정무역에 기반한 상품을 구매하자는 운동이다.

이 때 공정무역이란 중간상인에게 불합리한 이득이 돌아가지 않고 전통적인 생산자들에게 정당한 대가가 지불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으로 1950〜1960년대 유럽에서부터 시작된 운동이다.

전통적으로 소비는 ‘값 싸고 좋은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인식되어 왔는데, 이제는 물건이 생산되는 과정까지 고려하여 조금 더 비용을 지불하게 되더라도 ‘타인’과 ‘사회’, 나아가 ‘지구’에 도움이 되는 ‘착한’ 물건을 구입하자라는 것으로 이에 대한 혜택은 결국 소비자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우리 먹을거리에서 윤리적 소비, 착한 소비란 무엇일까? 사회의 발달로 인해 식품과 음식산업의 성장은 주목할 만하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도시가계 식료품 지출 중 외식에 사용되는 지출이 거의 절반에 이르고, 대형 슈퍼마켓과 마트에는 너무도 다양한 가공식품과 전 세계에서 온 식품들로 넘쳐 난다. 무엇을 먹어야 할까?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이 로컬 푸드(Local Food), 즉 지역에서 생산된 먹을거리를 우선 선택하자는 것이다.

지역 먹을거리는 생산에서 소비까지 이르는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먼 거리를 이동해 온 외국산 먹을거리에 비해 훨씬 안전하고 신선하다. 내 이웃이 생산한, 내 이웃이 먹는 먹을거리이므로 생산자와 소비자 간 신뢰와 유대감이 깊어지게 된다. 유통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비용을 감소시켜 주어 생산자인 농민에게 정당한 대가가 돌아가게 하며 지역경제 활성화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운송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도 감소시켜 환경에도 이로우며, 지역 토종 동식물 자원의 보존에도 도움이 된다.

이러한 많은 이점에도 불구하고 지역 먹을거리의 소비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수급의 불안정성, 구입의 불편함, 조금은 높은 가격 등등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하지만 마트에서 식품을 구입할 때도 음식점을 선택하거나 음식을 주문할 때도 한번만 더 생각해서 원산지를 확인하고 지역먹을거리를 선택하려는 노력을 나로부터 시작한다면 곧 로컬 푸드 운동, 지역 먹을거리 소비는 대중적인 운동으로 확산되어 그러한 문제들은 해소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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