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5년 전쯤의 일이다. 일본에서 2년 정도 생활을 하게 되었다. 길지 않은 일본 생활동안 머릿속에 인상적으로 남아있는 광고가 있는데, 가을이 시작될 쯤 방송되는 ‘꽁치구이와 맥주’ 광고이다.

가을시즌에 맥주를 광고하는 내용으로, 가을을 대표하는 생선인 꽁치를 부채질 해가며 숯불에 굽고 이를 안주로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광고의 배경은 일본적인 풍경으로 전통가옥, 일본풍의 부채, 전통복장 등이 등장하여 일본의 가을식문화를 상상해 볼만한 내용이었다.

이 뿐 아니라 맥주 광고는 계절에 따라 달라서 봄에는 벚꽃놀이를 하면서 일본의 모찌(벚나무 잎으로 싼 것이나 벚꽃 색을 내는)와 맥주를 먹는 장면, 여름에는 불꽃놀이를 하면서 문어구이빵(타코야키)을 먹는 장면, 겨울에는 뜨끈 우동과 함께 맥주를 먹는 장면이 등장한다.

맥주가 일본의 전통술은 아니지만 일본의 문화와 전통음식을 접목하여 일본 음식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고 일본음식을 간접적으로 홍보해 주는 효과를 내는 것 같다.

더위가 한풀 꺾여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더위에 시달리던 몸이 회복되면서 우리 몸의 세포가 다시 생기를 얻고 소화액의 분비가 촉진되어 장기의 기능이 최대한도로 발휘되면서 식욕이 생기는 계절이기도 하다.

이러한 가을에 우리의 전통음식을 일본처럼 광고와 연계한다면 어떤 음식이 적절할까?
가을에 먹는 음식은 매우 다양하지만 추천할만한 음식을 한 가지만 선정하라고 하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을에 계절음식으로 먹는 대표적인 음식은 무엇일까? 추석 즈음에 먹는 대표적인 가을음식으로 송편, 토란탕, 국화를 이용한 국화주나 국화전, 버섯을 이용한 음식 등이 있다.

향긋한 표고, 송이, 느타리 등 버섯은 볶아도 먹고 전골이나 전 등으로 다양하게 이용한다. 또한 고구마, 호박, 콩, 밤 등이 여무는 계절이므로, 이러한 것들을 이용하여 별미 밥을 지어먹고 떡을 만들어 먹었다.
특히, 콩으로는 밥 이외에 청국장, 순두부, 콩비지, 두부 등 구수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생선은 가을철에 산란기 직전으로 기름지고 맛있으며 단백질이 풍부한 시기이다. 선선한 바람이 불면 사람들이 전어를 많이 찾는데, 전어는 가을이 되어야 살이 오르고 맛이 최고로 좋아진다. ‘전어구이’는 집나간 며느리가 전어 굽는 냄새를 맡고 다시 돌아온다고 할 만큼 고소하며 뼈째 먹는 전어회 또한 일품이다.

가을 생선으로는 삼치, 꽁치, 갈치, 가자미, 도미, 대구 등이 제 맛을 내는데 특히 등 푸른 생선은 값도 싸고 지방이 풍부해 소금구이로 많이 이용한다. 또한 조개나 대하(큰새우) 등 어패류를 이용한 구이, 탕, 찜을 해먹는 것도 가을의 정취로 자리하고 있다.

가을에는 도토리, 메밀, 녹두 등의 알곡을 거두는 시기로, 이들의 전분을 이용하여 묵을 만들어 먹는다. 진한 갈색의 도토리묵, 점박이가 박힌 메밀묵, 정갈한 흰색의 녹두(청포)묵은 다른 나라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음식 중 하나이다.

얼마 전 벨기에의 유명한 스타 식당의 요리사(Chef)인 상훈드장브르가 한식세계화연구소를 방문하여 같이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묵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이 분은 맛을 연구하는 벨기에의 대학 교수진과 함께 다양한 질감의 메뉴를 개발하여 제공하는데 묵의 질감이 매우 독특하다고 하였다.

또한 가을에는 도라지, 더덕, 연근, 우엉, 무, 토란 등 뿌리채소로 장아찌 등의 밑반찬을 만들고, 잎채소에 풀을 발라 부각 등을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가을 음식문화의 정취라 할 수 있고 광고와 연계를 한다면, 밤이나 고구마를 넣어 만든 별미 밥, 순두부국, 버섯전골, 묵(도토리묵, 메밀묵, 녹두묵), 조개탕(또는 조개구이), 전어구이(또는 전어회) 등은 어떨까?

여기에는 반드시 한국적인 배경이 녹아있어야 한다. 장소, 조리기구, 식사도구, 먹는 분위기 등 세심한 고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음식문화는 단순히 식품으로서의 의미 뿐 아니라 내외국인에게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심어주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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