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전통향토음식을 조사하러 다니던 중 2003년 가을에는 전남 신안의 ‘하의도’ 현지에 가게 되었다. 전남 신안군에 속해있는 하의도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태어나신 고향으로 유명하여 한번쯤은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였다.

새벽 이른 시간에 목포항을 출발하여 고하도, 장산도 등을 거쳐 2시간여 만에 섬에 도착하였다. 하의도의 첫인상은 산, 들, 바다, 그리고 염전이 어우러진 평화롭고 여유로운 섬이라는 느낌이었다.

아침 8시쯤 신안군 농업기술센터 선생님과 함께 향토음식연구회 회장님 댁에 도착하여 ‘하의도 음식’을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하였다. 먼저 이 섬에서 잔칫날이나 상가에서 가마솥에 가득 끓여놓고 먹는 마을음식으로 갈파래국을 만들었다.

하의도는 갯벌에서 낙지, 꽃게가 많이 잡히고 청정해역인 바다에서는 싱싱한 해산물과 파래, 미역 등이 많이 생산되는 곳이다. 따라서 다른 지역에서 대소사에 흔히 먹는 설렁탕, 육개장 등이 아닌 갈파래를 주재료로 만든 국을 대소사에 이용한 것이다.

갈파래국은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여 돼지 뼈나 고기를 고아서 국물을 내고 여기에 된장, 갈파래를 넣어 끓인 후 고추, 마늘 등의 양념을 넣어 만든다. 갈파래국은 국물 맛이 시원하면서도 파래의 독특한 질감과 향을 느낄 수 있어서 기억에 남는 음식이었다.

두 번째로 하의도에는 홍어를 이용한 음식이 많다. 홍어는 가오리과에 속하는 마름모꼴의 물고기로 전남 신안 지역에서 많이 잡히고 특히, 흑산도에서 잡히는 홍어가 가장 유명하다.

홍어음식으로는 봄에 보리 싹이 날 때 먹는 홍어애보리싹국, 홍어찜(홍어어시육), 홍어회무침, 홍어삼합, 홍어채, 홍어건작 등 다양하다. 홍어애보리싹국은 신안 등의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으로, 된장을 푼 국물에 홍어내장(홍어애)과 어린 보리 싹을 넣어 끓인 국이다.

홍어를 처음 접하는 경우 홍어 특유의 냄새로 약간의 거부감이 있지만, 맛을 즐기는 사람들은 구수한 맛이 일품이라고 한다. 홍어찜과 홍어회 무침, 홍어삼합 등은 많이 알려져서 전국 어디에서나 맛볼 수가 있는 음식이 되었다.

 홍어찜의 일종으로 홍어어시육이 있다. 홍어를 가로 세로 4cm정도로 잘라서 볏짚을 깐 찜통위에 얹어 파, 마늘, 실고추를 뿌리고 다시 짚으로 덮은 다음 센 불로 15분 남짓 쪄서 한 덩이씩 초고추장에 찍어먹는 것이다. 이때 볏짚을 까는 것을 홍어살이 그릇바닥에 달라붙지 않도록 공간을 띄워주며 김이 고루고루 스며들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홍어채란 홍어를 토막 내어 어채(魚菜)와 같이 녹말가루를 묻혀 끓는 물에 데친 것으로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이고, 홍어건작이란 말린 홍어를 토막 쳐서 물에 불린 후 건져서 양념하여 찌는 음식이다.
하의도의 음식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인동초(忍冬草)를 이용한 전통주와 차이다. 인동초는 이름이 뜻하는 바와 같이 겨울을 이겨내는 강인한 풀로, ‘금은화’라고도 부른다. 해열작용과 해독작용이 있어 각종 종기와 발열질환 등에 사용되며 약효·약리적인 효능에 의해 주로 약재로 사용되어온 식물이라고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별칭으로 유명해지면서, 하의도 인근 지역에서는 최근에 인동초를 식품에 첨가하여 술과 차를 만들어 이용하고 있었다.

인동초동동주(인동초 청주, 막걸리)는 일반 동동주와 만드는 방법은 같지만, 발효단계에서 인동초 줄기 말린 것과 한약재(음양곽, 계피, 당귀, 감초 등)를 함께 끓여 식힌 물을 넣어 발효시킨 것이다. 색깔이 일반 동동주에 비하여 노르스름하면서 한약재의 맛이 느껴지는 술이다.

인동초차는 인동초 줄기 말린 것을 보리차처럼 물에 넣어 끓인 것이다. 이외에도 하의도에서는 낙지를 이용한 차가운 낙지연포탕*, 간재미회무침, 메밀당숙(메밀 미음), 바위옷우무 등 특색 있는 음식을 볼 수 있었다.

음식 조사가 끝난 후 가까이에 있는 김대중 대통령의 생가를 방문하였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담벼락에 자라고 있는 인동초를 보았다. 오늘은 하의도의 들과 바다, 염전, 대통령 생가, 인동초, 독특한 음식, 음식을 정성껏 만들어주신 회장님의 얼굴이 어우러져 기억나는 날이다. 

* 연포탕 : 전통음식에서의 연포탕은 두부·쇠고기탕을 의미하지만, 최근에는 낙지를 이용한 탕을 낙지연포탕이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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