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뜨면 일하고(日出而作)
해가 지면 쉬고(日入而息)
우물 파서 마시고(鑿井而飮)
밭을 갈아 먹으니(耕田而食)
임금의 힘이 어찌 나에게 미치리(帝力于我何有哉)
논밭에 나가 힘써 노동하여 그것으로 먹고 살 수 있으니 임금도 필요치 않다는 뜻 정도로 해석이 됩니다. 농부가 다른 것 일체 신경 안 쓰고 이렇게만 살 수 있다면 사실 그보다 편한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까 항상 문제가 되는 거겠죠.
어찌됐든 한 여름 농부들의 일과는 끊임없는 노동의 연속입니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밥 먹고 바로 곯아떨어지는 생활이 연일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새벽에 일어나면 우선 블루베리 밭과 지황·고추밭을 돌며 김매기에 바쁘고, 잠시 쉬었다가 해가 질 때까지는 줄곧 포도밭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나름 열심히 한다고는 하는데 제가 보아도 부족한 것투성이입니다. 알 솎기는 지난주에야 겨우 끝마칠 수 있었고 그 사이 포도나무마다 곁순은 또 삐죽삐죽 잔뜩 솟아올랐으니 이제 고 녀석들을 처리해줄 때입니다. 포도는 익어 가는데 봉지는 어느 세월에 씌울지 그것도 큰 걱정입니다. 장마철이 되며 시시각각 풀밭으로 변하고 있는 텃밭과 지황밭도 진작 저의 김매는 속도를 추월하여 풀들의 기세가 등등하기만 합니다.
귀농하기 전에 읽었던 책 중에 스코트 니어링, 헬렌 니어링 부부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라는 책이 있습니다.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선택했던 그 부부는 이 책에서 이런 말을 했었죠. ‘하루에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을 생계노동에 4시간, 독서 등 지적활동에 4시간, 이웃들과의 친교 4시간으로 나누어 살면 훌륭한 전원생활을 구가할 수 있다.’ 혹여 이 말에 혹해 귀농을 결심하시는 분이 있다면 생각을 재고해 보심이 좋을 듯합니다. 밥 먹는 시간 빼놓고 몽땅 농사일에 쏟아도 우리 같은 초보농사꾼으로서는 가랑이가 찢어질 정도라는 거, 그것만은 확실히 알고 내려오시기를 권유 드립니다.
농사일은 단순노동의 연속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며칠을 계속해 똑같은 일을 반복하다보면 사실 지겨울 때도 많습니다. 그러다보면 갖가지 상념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첫사랑에 배신당했던 기억에 군대있을 적 못된 고참한테 당한 생각까지 엉켜 붙다 보면 일하다가 기어이 문제를 일으키곤 합니다. 낫에 손을 베이기도 하고, 어설픈 가위질로 포도송이를 송두리 잘려 내기도 하고…. 그러다가 ‘아차, 내가 이러면 안 되지’하며 정신을 차리곤 합니다.
여름아비라는 말은 다석 류영모 선생이 만든 말입니다. 다석 류영모는 함석헌 선생의 스승으로서 우리나라에서 영적인 스승이라고 부를만한 몇 안 되는 인물 중의 한 분이시죠. 그분은 농부를 여름아비라 하고 농장을 여름질터라고 우리말로 부르며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름질터에 여름아비가 이마에 땀 흘리는 모습보다 거룩한 사람의 모습은 없다. 몸으로 일하는 것은 몸으로 올리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 사람이 올바르게 살려면 농사지은 것으로 먹고살아야 한다. 사람이 농사를 멀리하는 것 자체가 부도덕이며 권력과 금력으로 호강하겠다는 것은 제가 땀 흘릴 것을 남에게 대신 흘리게 해서 호강하자는 것이니 그 죄악은 여간한 것이 아니다.”
일감이 잔뜩 밀려 있는 한 여름 농장 속에서 이 시대 여름아비들의 거룩한 모습을 다시금 바라봅니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져야 비로소 쉬게 되는’ 그이들의 어깨가 좀 더 가벼워지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