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날씨도 이곳과 비슷하다 하셨죠? 그렇다면 그곳도 여기처럼 초여름에 들어서고 있겠군요.
6월 둘째 날 이곳 영동은 바람이 몹시 불었습니다. 하루 종일 휭휭 소리를 내어가며 바람이 거칠게 불었습니다. 새들도 모두 자취를 감출 정도였죠. 바람이 불고 새들은 가고 비는 오고… 자연은 그렇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바람이 이렇듯 심하니 제 마음도 심란해졌습니다. 사실 이곳의 포도농가들은 요즘 하루하루 정신없이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포도나무 가지들을 유인철사에 붙들어 매야 하고 육손이와 넝쿨손을 잘라내야 하며 순지르기와 곁순 제거 작업도 거의 동시에 진행이 됩니다. 중간에 비료나 약도 한 번씩 주어야 하고요.

일거리가 산더미같이 쌓여 있지만 해지기 전에 일찌감치 일을 마무리했습니다. 아직까지 농부로서 내공이 들 쌓인 듯합니다. 아니면 천성이 게으른 탓도 있겠고요.
불어오는 바람을 마주하며 혼자 술상을 차렸습니다. 안주라 해봐야 고작 풋고추 몇 개, 상추와 쑥갓을 된장에 대충 버무린 게 다였지만 눈앞의 거친 풍광이 그 모든 산해진미를 대신하고도 남았습니다.

한잔 두잔 홀짝 홀짝 마셔가며 가족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남편을 대신하여 벌써 몇 년째 묵묵히 가정경제를 이끌고 있는, 이제 내일이면 마흔 번째 생일을 맞이할 아내의 삶을 생각해 보았으며, 시커먼 땅 속에서도 여전히 이 불효자를 걱정하고 계실 우리 아버지 어머니를 떠올려 보기도 했습니다. 철부지 아빠 아래서도 착하게 잘 크고 있는 딸과 아들을 생각해 보았으며, 일상에 최선을 다하며 진솔하고 소박하게 살고 있는 누님들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형님 생각은 좀 많이 나더군요. 고등학생이었던 형님 손을 잡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의 기억, 발목이 삔 채 형님 등에 업혀 회덕의 침술원까지 갔다 온 일, 대학시절 계엄령 위반으로 구속된 형님을 면회하러 어머니 손잡고 눈발 날리는 대전교도소에 갔지만 간발의 차이로 뵈지 못하고 되돌아왔던 일….
아마 저 초등학교 때 여름에 여기 영동의 심천으로도 형님하고 같이 놀러 왔던 적도 있었죠?

생각해보면 기쁘고 좋았던 기억도 많았지만 지금 생각해도 회한이 밀려오는 안타까운 일들도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다음에 이곳 시골로 한번 오시면 그때는 밤을 새워가며 지난날들을 추억할 기회가 있겠죠. 그때는 제가 담아 놓은 애엽주, 지황주, 포도주, 오디주 등등 있는 술을 다 대접하겠습니다.

가장 최근의 기억은 제가 1년 동안 옥천에 있을 때 미국 가시기 직전 겨울에 오셨던 때였죠. ‘쩡쩡’ 소리를 내며 얼음이 붙고 있던 대청호를 건너 오셔서는 아궁이 불을 때시느라 고생을 하기도 하셨죠. 그때 저는 며칠 뒤면 고국을 떠나실 형님을 그냥 놓아 보내드리기가 참 싫었습니다.

 스스로 상황을 주도하지 못하고 항상 주변 조건에 떠밀려 사시곤 했던 형님 특유의 허허한 성격이 안타깝고 못마땅하기도 했습니다. 형님은 그때 그러셨죠. “그래도 어떡하겠니? 여기 계속 있는 다고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미국으로 가신 지 벌써 3년의 세월이 흘렀네요. 올해는 뵐 수 있으면 좋으련만.

형님.
누군가는 이번 노대통령의 죽음으로 80년에서 시작된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고 하더군요. 그 시대는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움직여 당연히 이 세상은 진보하리라는 결기와 신념의 시대였죠. 나이 차는 열한 살이 나지만 형님하고 저는 그 질풍노도의 시대에 젊음을 함께 보낸 셈입니다.

세상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 지, 사람이 산다는 게 앞으로 어찌 될 지 사실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습니다. 다만 자기 삶의 공간에서 꾸준히 희망을 찾고 만드는 일만은 인간이기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일이겠죠.

저는 이곳에서 아직 완벽한 희망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거센 바람을 피하기에도 역부족입니다. 자연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고 제 몸을 우선 노동에 단련시키는 게 일단 급한 일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일하는 중간 중간 이런 생각이 떠오르곤 합니다. 이렇게 자연과 벗하며, 자연을 닮은 사람들과 아무런 틀이나 제약 없이 신나게 어울려 사는 것은 어쩌면 당장의 현실에서도 가능한 일이겠다 싶습니다. 그러다보면 어찌저찌하여 공동의 희망도 찾을 수 있을 거고 삶의 새로운 모색도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형님, 영동에는 산이며 강이며 좋은 곳이 아주 많습니다. 형님을 모시고 이곳 산천을 주유할 날이 곧 왔으면 좋겠군요.
항상 강건하시길 기원하며 이만 줄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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