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옥수수를 심었던 밭에 올해는 지황을 심었다. 지황은 강장과 빈혈 등에 좋다고 해서 한약재의 주요한 원료로 쓰이는 작물이다. 종근을 인근 금산에서 구했는데 마르거나 상하기 전에 빨리 심을 필요가 있었다. 별 내키지 않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얻어야 했다.
시골살이를 처음 시작할 때, 내 품을 팔지도 않고 다른 사람의 품도 사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이유는 첫째, 시골에서까지 사람이, 사고 팔리는 거래의 대상이 될 필요가 있겠느냐는 의문이 있었고 둘째, 가장 중요한 노동력에서 자급을 이루지 못하면서 자립의 삶을 걷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작년에 딱 한번 남의 품을 얻은 일이 있었다. 장마를 앞두고 포도 비가림용 비닐을 쳐야 하는데 도저히 혼자서는 어림도 없었다. 그때는 마을 사람들도 다들 바빠서 동네에서 품앗이로 해결할 수도 없었다. 할 수 없이 읍내 용역사무실에서 아저씨들 두 분을 모셔다가 같이 일을 했는데 결과는 씁쓸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이분들 눈에는 신출내기 초보 농사꾼이 참 만만해 보였을 것이다. 일은 대충대충, 품삯은 술값에 목욕비까지 보태 받아갔다. 화가 많이 났지만 도리가 없었다. 나는 그들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외지에서 와서 겪어야 할 의례적인 일로 생각했으며 이 모두가 자업자득이라고 위안을 삼았다.
그러고 나서 이번에 지황을 심으면서 두 번째로 품을 얻게 됐다. 동네 형님을 통해 아랫마을에 사시는 부부를 소개받았다. 남편은 50대 초반, 아내는 그보다 열 살쯤은 젊어보였다.
두 사람 다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지황 심는 일은 처음이었는데도 오랫동안의 농사일에서 다져온 공력이 있었기에 쉽게 일을 풀어 나갔다. 그러기가 쉽지 않은데 그들은 이 일을 정말 자기 일처럼 생각하는 듯 했다. 부부가 워낙 성실하게 일을 해준 덕택에 지황 식재는 하루 만에 모두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그들 부부는 항상 일을 같이 한다고 했다. 3천여 평의 포도밭도 둘이 같이 한 골씩 타나가며 짓고, 인근 산에 나무 심으러 가는 품일도 부부는 항상 짝이 되어 일을 나간다. 이번 지황 심는 일도 그랬다. 두 사람이 마주보며 양쪽에서 같이 일을 해나갔다. 남편이 손이 좀 느려진다 싶으면 그 공백을 아내가 메워가며 꾸준히 앞으로 나아갔다. 일을 하는 틈틈이 나오는 대화도 자연스럽다. 이웃들과의 관계, 올해 농사에 대한 계획, 자녀들의 진로문제 등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부부는 지황을 심으면서 ‘이눔들 잘 자라라’고 한마디씩 덕담을 보태기도 했다. 그러면서 “사실 사람이 할 일이라는 게 그렇게 많지가 않아요. 애네(작물)들은 자기들 스스로가 커지려는 욕심이 있기 때문에 사람은 단지 걔네가 잘 자라게 도와주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인근 고등학교에 다니는 큰 아이에게 학원을 다닐지 여부를 스스로 결정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이해되는 대목이었다. 우리나라의 상위계층은, 그들이 보기에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이렇게 자연에서 스스로 터득한 지혜와 슬기를 갖춘 훌륭한 분들이 많다는 걸 알아둘 필요가 있다.
시골에서 부부가 함께 일하는 모습이야 흔하디흔한 일상사이지만 이들처럼 품 팔러 나갈 때를 비롯해서 이러저러한 일에 줄곧 같이 나가는 것은 드문 경우이다. 더구나 남편과 아내 사이에 격의 없이 편하게 대화가 이어지며 다정한 모습을 연출하는 것은 더 드물다.
대부분의 도시 사람들은 부부가 아침에 헤어져 직장을 마치고 저녁때나 다시 만나게 된다. 둘 중 한사람이 야근이나 술이라도 한잔 하게 돼서 밤늦게 들어가면 하루 종일 대화 한번 못하고 잠자리에 드는 것도 다반사다. 그렇게 일상적인 대화가 부족하다 보니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폭도 갈수록 줄어들고, 사소한 문제에도 티격태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이들 부부의 사는 모습이 처방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주말에 호미 한 자루 씩 들고 텃밭농사라도 지으면 어떨까. 서로 마주보며 일을 하고,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눈다면 산다는 게 가끔씩은 즐거울 때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농사는 역시, 매력적인 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