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성인은 거의 10명 중 3명꼴로 비만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 경제적 발달로 인해 사시사철 먹을거리가 풍부해졌고 식생활이 패스트푸드와 같은 서구적 형태로 많이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쌀 소비량도 많이 줄어 2008년에는 1인당 연간 75.8kg의 쌀을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에 쌀을 채 두 끼도 먹지 않는 셈이다. 요즘은 건강을 위해 먹을거리의 올바른 선택과 건전한 식습관 형성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는 물론이고 일제강점기, 그리고 불과 50∼60년 전, 1960년대 경제성장기 이전까지는 이맘때가 되면 상류층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 어느 가정이나 끼니를 걱정해야 했었다.

지난 가을에 수확한 양식은 다 떨어지고 겨울에 심은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은 음력 4월경인 이 시기는 일명 ‘춘궁기’ 또는 ‘보릿고개’라 불렸었다. 이때는 끼니로 먹을 곡식이 턱없이 부족하여 밀을 빻은 뒤 체 치고 남은 찌꺼기로 만든 밀기울 죽이나 부족한 쌀의 양을 늘려 먹기 위하여 쑥, 냉이와 같은 나물을 잔뜩 넣어 끓인 죽 또는 밥, 보릿겨를 빻아 부풀려 찐 개떡, 밥알이 거의 보이지 않는 쌀죽, 보리죽 등으로 연명하거나 심지어 술도가에서 얻어온 술지게미를 먹으며 보리가 여물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이마저 여의치 않으면 아이들은 산으로 들로 진달래 꽃잎을 따서 배고픔을 달래야 했고 어른들은 나무껍질이나 뿌리를 삶아 먹었다 한다. 초근목피(草根木皮)는 이 때 생긴 말이다.

춘궁기 때 우리 민족을 배고픔에서 구제해 주었던 대표적인 나무가 소나무이다. 요즘은 잘 찾아보기 힘드나 ‘한국은 소나무의 나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어디서든 소나무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우리 민족은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태어나 소나무로 만든 관에 묻혔다고 하니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나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봄에 소나무에 물이 오를 때쯤이면 허기진 사람들은 소나무의 속껍질을 벗겨내어 양식으로 먹었다. 이 소나무 속껍질을 송기(松肌) 또는 송피(松皮), 경상도 사투리로는 송구라고도 하는데, 그 성미가 따스하고 단 맛이 난다고 한다.

한방에 의하면 송기는 피를 멈추게 하고 설사를 그치게 하며 살을 썩지 않게 하는 성질이 있다. 오래된 설사, 이질에 잘 듣고 어혈이나 동상에 붙이면 효험이 있다고 한다.

조선 현종 1년(1660년) 농학자 신속이 흉년에 대처하는 법을 정리하여 편찬한 『신간구황촬요(新刊救荒撮要)』에 송기와 솔잎의 영양 효과와 먹는 법에 대해 설명해 놓고 있는데, 솔이 내장을 편안하게 하고 배가 고프지 않게 할 뿐 아니라 수명을 연장시키고 위장을 튼튼하게 한다고 나와 있다고 한다.

춘궁기에는 송기를 그냥 먹을 수는 없어서 잘게 찢어 물에 우려 떫은맛을 제거한 다음 잿물에 삶아 낸 후 망치로 두드리고 다시 맑은 물에 2∼3일 담가 물을 자주 갈아주며 빨간 잿물이 빠지도록 우려낸다. 여기에 쌀, 수수, 조, 메밀 등의 곡식 가루와 섞어 송기떡이나 송기죽을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이 송기를 많이 먹게 되면 다량의 섬유질 때문에 변을 보기가 힘들어 느릅나무 껍질을 우려낸 즙과 같이 먹거나 피마자기름을 발라서 먹기도 했다고 한다. 뭐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은 이 송기를 많이 먹게 되면 변을 보기가 힘들다는 것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요즘의 송기떡은 소나무의 생리활성이 알려지면서 별미 떡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물론 필자도 이렇게 힘든 춘궁기는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대이다. 먹을 것이 넘쳐나 음식물 쓰레기가 문제가 되는 현대에 송기떡을 먹으며 옛 우리 조상들의 아픔을 한 번 쯤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김양숙(농촌진흥청 한식세계화연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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