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멈춰 있던 경운기 엔진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한다. 얼었던 땅이 녹으면서 이곳 영동 포도 농가들의 일손이 바빠진 것이다. 농기계와 농기구들이 아무 이상이 없는지도 살펴봐야 하고 시설을 보완할 부분이 있다면 지금이 해야 할 때이다. 비닐, 박스 등 농자재를 신청하는 일도 중요하고, 지난 가을에 미루어 두었던 나무에 거름을 내는 일도 서둘러 해야 할 일이다.

여러 가지 일들 중에서 포도농가의 농부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을 꼽으라면 당연 전정이다. 작년에 열매를 맺었던 묵은 가지를 잘라내고 새로운 결실을 잉태시키는 과정을 통해 한 해 포도농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수 년, 수십 년 동안 해온 일임에도 전정을 하는 농부들의 일손 하나하나에는 섬세함과 정성이 담겨 있다. 그리고 정확하고 빠르다. 필요한 눈만 남기고 잘려진 가지를 훑어 내리는 그들의 모습에선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장인의 기운이 느껴진다. 대충대충이 없다. 품종의 특성과 연수를 고려해서, 그리고 어떻게 이 나무를 키워 나가야 할지 치밀하게 생각한 대로 그들은 주저 없이 일을 처리해 나간다.

하지만 농부들의 머릿속은 복잡하다. 봄이 왔고, 겉으로는 시동을 걸고 활기찬 일상이 시작된 것 같지만 농부들의 속마음은 어둡다. 농사를 통해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서 갈수록 회의가 들고 전망이 암울하기 때문이다.

꾸려나가야 할 살림살이, 아이들의 학비, 이래저래 목적으로 빌린 영농자금에 대한 걱정들, 껑충 뛰어오른 농자재가격 등이 그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FTA(자유무역협정) 등 대외개방이 가속화되면서 농업을 흥정의 희생물로 만들어가는 논리가 횡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대의 농부들은 외롭고 쓸쓸하다. 이들의 처지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외로우며, 짓고 나서 한숨만 남으니 쓸쓸할 뿐이다. 온 가족이 함께 나서서 농사거리를 만들어 나가는 소농의 처지에서 농사를 지어 빚을 지지 않고 입에 풀칠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있는 마을의 영식 형님의 경우도 그렇다. 그는 50대 초반의 나이로 다섯 가족의 생활을 책임져야 할 가장이다. 생활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지 나서서 할 정도로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하고, 오지랖이 넓다보니 한겨울에도 가만히 집안에 머무는 경우가 거의 없다. 농장의 일거리가 없으면 부지런히 품이라도 파는 사람이다. 그런 그도 작년부터 후계자 자금 등 대출받은 돈들이 원리금 상환에 들어서면서 요즘 들어 고민이 많은 눈치다.
“형님, 왜 농사지으세요?”

“첫째, 먹고 살려고. 둘째, 부모님이 물려준 땅, 놀리면 되겠어.”
명확하다. 하지만 먹고 살려고 농사짓는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 빚에 허덕이면서 농사로 생활을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농사도 업이고 보면, 농부들 대부분은 먹고 사는 문제를 농사를 통해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농부들은 역시 외롭고 쓸쓸할 뿐이다.

노자는 “만물은 모두 낮은 곳으로 모여 들어 그곳에서 살아간다. 이와 같이 낮은 곳에 있는 것은 만물을 낳는 근원이다”라고 말했다. 곡식을 일구어 내는 농부의 삶은 만물을 이롭게 하는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다. 농부의 거친 손이 없다면 세상 만물은 생의 영양을 상실한다. 자연과의 직접적인 조화로 이루어지는 농부의 삶은 그래서 세상의 근본이다.

그들의 삶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저리의 융자 지원 등’으로 현혹 당해야 하는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농가의 소수 정예화를 통해 기업농을 육성한다고? 어쭙잖은 시장논리와 경쟁논리로 수많은 사회낙오자를 양산하겠다는 것과 대체 무엇이 다르겠는가!

더 이상의 사탕발림은 필요 없다. 농부가 힘든 삶을 근근이 살아내는 것은 ‘부모가 물려준 땅을 놀릴 수 없다’는 자연과 조상에 대한 예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정책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 농부의 그 마음을 본받아야 한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켜라. 그것만이 이 시대 농부를 외롭고 쓸쓸하게 만들지 않을 길이다.


김철-1968년 대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다. 기업 홍보팀에서 일하다 자연과의 공생과 노동을 통한 삶의 균형을 찾고자 2007년 충북 영동에서 귀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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