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동네에서 소 잡는 날은 항상 바람이 많이 불고 몹시 추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렇게 추운 날에 소를 잡는 것은 농사일이 없어 한가할 뿐더러 위생적으로 더 안전한 낮은 기온 때문에 그렇지 않았나 싶다.

동네 마당에서 소를 잡는 전 과정을 지켜보기는 참으로 어려워, 마당 구석에 피워놓은 모닥불에 손을 쬐기도 하고, 집에 들어가 아랫목에서 몸을 잠시 녹이고 다시 또 마당으로 나와서 구경하기를 몇 번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늘은 막 싸락눈이 올 듯 흐리고 비수 같은 겨울바람이 옷 사이로 스치고 지나가서 마당 구석으로 낙엽이랑 종이쓰레기를 모으고 있는 한 겨울 오후, 저녁 굶은 시어머니 모양 까칠한 날씨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선한 눈을 가졌던 소의 배에서는 김이 무럭무럭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주위는 어느덧 캄캄해지고 백열전구 밑에서 고기를 나누는 모습, 그리고 그 그림자의 커다란 움직임들이 눈에 선하다.

해마다 겨울이 되고, 설 대목 직전에 동네에서는 소를 잡았다. 요즘은 대형마트나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서 명절을 보내지만 약 20여년 전만해도 시골 동네에서는 설 준비로 소 한 마리와 돼지 한두 마리를 잡아서 동네 집집마다 열댓 근씩 나누었다. 물론 그 당시에도 그런 도살은 불법이었겠지만.

동네 어르신이 시장에 가서 소를 사왔다. 그리 큰 소는 아니고 송아지를 면한 지 오래 되지 않은, 그리고 털색이 우시장에서 보던 보통 소만큼 붉지 않은 작은 소를 면소재지에서부터 끌고 와서 동네 입구 마당 구석의 전봇대에 매어두었다. 소는 그 날이 마지막인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누군가 두고 간 여물을 우물우물 씹으며 동네 마당으로 불어오는 추운 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있었다.

동네에서 한때는 힘깨나 썼던, 그리고 아직도 기골은 장대하나 이제 나이가 많아 동네 사람 모두가 모이는 동네 행사 때는 뒷전에서 막걸리만 드시고 껄껄 웃기만 하던 어른이 항상 소를 잡았다. 코뚜레에 묶은 줄을 힘껏 잡아당겨 소를 전봇대에 바짝 묶고, 옆에서 힘센 동네 장정 두 셋이서 소의 몸통을 잡은 후, 큰 망치로 단숨에 머리를 내려치면 그렇게 선한 눈을 가진 소가 앞다리를 풀쑥 굽히며 단숨에 쓰러져 다리를 버둥버둥 거렸다. 코에서는 피가 흐르고….

깨끗이 청소한 마당 중앙에 천막으로 사용되는 천을 깔고 머리부터 꼬리까지 구분하여 조각조각 만들면(정형) 언제 소가 있었느냔 듯이 소는 없어지고 열댓 근 되는 쇠고기 덩어리들만 남아 동네사람들이 사전에 약속한 대로 한 덩이씩 차지했다. 저울이 있었지만 쇠고기 덩이가 큰지 작은지 저울에 달아 보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원래 갖기로 한 부위인지 아닌지 확인만 하고는 모두 흐뭇한 표정으로 묵직한 쇠고기를 한 덩이씩 가지고 갔던 것으로 기억된다. 갈비는 어디 관청에서 근무한다는 동네 안쪽의 어른집이나 과수원 하는 할아버지가 가져가고, 꼬리는 또 누가 갖고 가고, 앞다리는 누가, 뒷다리는 누가 이렇게 나누다 보면 소 한 마리가 금방 없어졌다. 내장은 동네입구 식당 주인이 술을 내놓는 대신 장사 밑천으로 싸게 차지하고, 그 사이 정형 과정에서 나온 부스러기 고기는 연탄불에 구워 소 잡는 어른과 주위 장정들의 소주 안주가 되었다. 컴컴한 동네 마을회관 뒤 구석에서는 동네 청년들이 털을 사르느라 노린내가 온 동네를 진동시키고, 또 바람을 타고 황량하고 캄캄한 벌판을 넘어 이웃 마을까지 퍼지게 되어 우리 동네에서 소를 잡았다는 소문은 저절로 이웃 마을에까지 퍼지게 되었다. 그렇게 털을 모두 태운 껍데기는 깨끗이 씻은 후 푹 삶아 날된장과 함께 내 놓으면 보기에는 거뭇거뭇한 게 흉하게 보이지만, 겨울 내내 동네입구 식당에서 내놓는 막걸리 안주가 되어 비싼 값에 팔렸었다. 정말 소는 그 어느 부위하나 버릴 것이 없었다.

작년 한 해는 쇠고기 때문에 온 나라가 들끓던 한 해였다.
한때는 소의 내장과 뼈를 섞은 사료로 속성 사육하기도 했고 그래서 광우병이라는 희한한 불치의 병에 걸릴 수도 있다고 염려했던 수입 비육우. 그러나 어느덧 대형 할인점에서는 빨간색 줄무늬와 푸른색 바탕의 흰색 별들로 장식된 앞치마를 두른 아가씨가 스테이크 시식행사를 하면서 늘어선 사람들에게 쇠고기를 팔고 있다.

그러나 이런 매대 앞을 지날 때마다 한때 온 국민을 불안케하고 분노케 했던, 쇠똥으로 진탕이 된 도살공장에서 주저앉는 소를 지게차로 밀어붙이는 화면이 자꾸 떠올라 어릴적 동네에서의 소 잡는 날 모습을 회상해 본다.

최정숙(농촌진흥청 한식세계화연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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