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1월은 이런저런 이유로 나물을 많이 먹게 되는 시기이다.
우선 정월대보름에는 상원절식(上元節食) 중의 하나로 진채식(陣菜食)이라 하여 가을에 갈무리 해 둔 호박고지, 박고지, 말린 가지, 말린 버섯, 고사리, 고비, 도라지, 시래기, 고구마 순 등 최소 아홉 가지 나물을 기름에 볶아 먹었다.

대보름에 진채식을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 하였고, 진채식은 겨우내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과 무기질을 보충하여 원기를 북돋아 준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동국세시기』에서는 진채식에 대해 “박고지, 표고버섯, 콩의 싹을 말린 대두황권(大豆黃卷), 순무, 무 등을 저장해 두는데, 이것을 진채(陣菜, 묵나물)라 한다. 이것은 정월대보름에 나물로 먹는다. 또 외꼭지, 가지고지, 시래기 등도 모두 버리지 않고 말려 두었다가 삶아서 먹는다. 이것들을 먹으면 더위를 먹지 않는다. 『시경(詩經)』 위풍(衛風), 곡품(谷風)의 장에도 있는 것처럼 이 풍속은 추운 겨울(엄동)을 대비하여 채소를 저장하자는 취지의 것이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한편 정월대보름 전 ‘입춘(立春)’에는 입춘절식(立春節食)이라 하여 햇나물을 뜯어다 무쳐서 먹는 풍속이 있었다. 이 햇나물 무침을 먹는 풍속은 경기도 내 산이 많은 6개 마을, 즉 양평(陽平), 지평(砥平), 포천(抱川), 가평(加平), 삭녕(朔寧), 연천(連川) 등에서 움파, 산갓, 당귀 싹, 미나리 싹, 무 싹 등 다섯 가지의 햇나물을 눈 아래서 캐어 임금께 진상한 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이 진상된 햇나물들은 궁에서 겨자와 함께 무쳐 임금의 수라상에 올렸는데 이를 오신반(五辛盤)이라 하였다. 오신반은 시고 매운 생채를 의미하는 것으로 겨우내 김장김치와 묵나물에 질렸던 입맛을 돋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역시 『동국세시기』에 “경기도의 산골지방 6개의 고을에서 움파, 멧갓(山芥), 신감채(辛甘菜)를 궁중에 진상한다. 멧갓은 이른 봄눈이 녹을 때 산속에 자라는 갓나물이다. 더운 물에 데쳐 즙장(즙醬)에 무쳐서 먹으면 맛이 매우 맵고, 고기와 함께 먹으면 뒷맛이 좋다. 신감채는 움에서 기르는 당귀의 싹이다. 깨끗하기가 은비녀의 다리와 같다. 꿀을 묻혀 먹으면 맛이 매우 좋다. 생각건대 『척유』에 동보(東보)의 이악(李鄂)이 입춘에 무나 미나리의 새 순으로 채반을 만들어 손님 대접을 하였다는 말과 송나라 사람 안정군왕(安定郡王)이 입춘에 다섯 가지의 신채(辛菜)로써 채반을 만들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이들은 모두 예부터 전해오는 풍속이라”고 입춘절식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신분고하에 관계없이 나물은 김치와 함께 기본 찬으로 사용되었으며 전란이나 가뭄 등 각종 기근시에 중요한 구황식품으로 사용되어왔다.
우리 민족의 나물사랑은 ‘칩다 꺾어 고사리, 나립 꺾어 고사리, 어영 꾸부정 활나물, 한푼 두푼 돌나물, 매끈매끈 기름나물, 동동 말어 고비나물, 칭칭 감어 감돌레, 집어 뜯어 꽃다지, 쏙쏙 뽑아 나생이, 어영저영 말랭이, 이개저개 지치기, 진미백승 잣나물, 만병통치 삽추나물, 향기만구 시금치, 사시장춘 대나물’과 같은 나물타령이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조선후기 구황식품을 연구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야생식물의 수가 851종이라 하고, 농촌에서 평소 식용하고 있는 것은 304종이나 된다고 한다.
유사한 채식문화권을 이루고 있는 중국, 일본, 우리나라 중에서도 우리나라가 가장 많은 종류의 채소를 식용하고 있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육식위주의 식생활에서 야기된 생활습관 병이 문제가 되고 있는 요즘 우리나라의 독특한 채식 중심 식생활이 건강식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비빔밥 또한 밥에 각종 나물을 넣어 비벼먹는 것이니 우리나라 채식문화의 중심에 나물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갈수록 서구화되어 가는 식생활로 인하여 국내의 나물 섭취량은 점점 줄어가고 있고,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가장 싫어하는 음식으로 나물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일상적으로 섭취하고 있는 나물의 종류도 많이 줄어들고 있어 어떤 종류는 책자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도 있다.

다양한 나물의 종류와 조리법을 복원시키고 널리 알리는 연구가 조속히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전통을 되살리는 것과 함께 우리나라의 생물다양성을 유지하고 식물자원을 확보하는 점에서도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김양숙(농촌진흥청 한식세계화연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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