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은 설과 추석 등 전통명절을 정하고 해마다 그날을 지켜 즐기는 풍습이 있었다.
1월에 설날, 정초 십이지일, 사람날, 여름날, 대보름, 귀신날이 있고 2월에 중화절, 머슴날, 초하루, 좀생이날, 장 담그는 날, 한식, 3월에 삼짇날, 4월 초파일, 5월 단오, 6월 유두와 삼복, 7월 칠석과 백중, 8월 추석, 9월 중양절, 10월 말날, 시제, 고사, 당제가 있고 11월 동지, 12월에는 납일과 섣달그믐이 있다.

이러한 매월 특징적인 명절은 농사 절기와 깊은 관계가 있어 각 농사 주기에 맞게 이루어져 왔다.
오늘날 시대가 변함에 따라서 새로운 기념일이 생기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농산물 데이’다.
전통명절이 농업활동 즉 생산과 관련이 있다면 오늘날의 ‘농산물데이’는 농산물 소비와 관련이 있다. 한마디로 우리 농산물의 소비 촉진을 위해 만든 날이다.

1월 배의 날이 있다. 1월 2일, 배처럼 맑고 깨끗한 새해를 맞자는 의미로 농촌진흥청이 제안했다. 2월 인삼 데이. 2월 3일은 숫자 2, 3과 발음이 비슷한 인삼의 판촉을 위해 이렇게 정한 것이다.
3월 삼겹살 데이는 3월 3일이다. 숫자 3이 겹치는 날이다. 백숙 먹는 날인 4월 9일은 다소 계산이 복잡하다. 농촌진흥청이 새해가 밝은 지 99일째 되는 4월 9일을 백세(百歲)에서 한 살을 뺀 99세(백수)와 연관 지어 백색 고기인 닭고기를 먹자고 제안하였다.

오리 데이(5월 2일), 오이 데이(5월 2일), 6월 육포 데이(6월 4일), 육육 데이(6월 6일, 고기(肉)주고 받으면서 먹는 날), 7월 엿 데이(7월 7일, 항상 붙어서 행복하게 살자는 의미로 엿을 먹는 날)도 있다.

쌀 데이는 8월 18일이다. 볍씨 파종에서 수확까지 여든여덟 번 손이 간다는 의미와 쌀 미(米)자 속에 들어 있는 열 십(十)자와 여덟 팔(八)자를 합쳐 날짜를 만든 것이다. 9월 9일은 구구 데이, 닭고기 먹는 날이다.

10월 24일 사과 데이는 서로 사과를 주고받는 날, 농업인의 날인 11월 11일은 가래떡 데이다. 상업적 특수를 노려 업체들이 11월 11일을 빼빼로 데이라고 이름붙이면서 농업인의 날의 의미가 퇴색하자 정부가 가래떡 데이를 주창하며 적극 홍보에 나섰다.

이러한 ‘농산물 데이’가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기념일이 되기 위해서는 농산물과 어울리는 놀이를 개발해야 할 것이다. 전통명절을 보면 음식과 놀이가 어우러진 세시풍속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세시풍속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유광수 등이 지은 ‘전통문화의 세계’(MJ미디어)라는 책이 이를 잘 다루고 있다. 세시풍속의 특징을 우리 ‘농산물 데이’에 잘 접목하면 성공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으로 본다.

첫째, 세시풍속에 나타난 기원의 종교성이다. 사람들은 일월성신을 비롯하여 풍우, 산신, 하천신과 용왕신, 서낭신·노신·별신, 목신, 조령 등을 모신다. 그리하여 사람의 길흉화복을 점치고, 연사의 풍흉을 점친다. 특히 조상을 숭배한다. 중요한 명절에는 조상숭배의 행사가 꼭 있다. 설, 한식, 단오, 추석, 시제 때에 조상에게 보답하는 제의를 거행한다.

이처럼 ‘농산물데이’에도 감사하는 대상이 있어야 할 것이다.
둘째, 세시풍속에 나타난 유희의 연행성이다. 가무 등의 예능이 발달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풍작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하늘에 제사하면서 아울러 국중대회를 개최한다. 여기에는 이야기와 노래와 춤, 그리고 놀이가 있다. 또한 마을의 큰 행사인 당제에서 으레 풍물이 중요한 구실을 하는데 여기에서 소박하게 예술이 상징하는 것이다.

‘농산물데이’에도 농산물과 어울리는 문화행사 또는 이벤트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농산물을 테마로 하는 노래 경연대회나 콘서트 등이 있을 수 있다.
셋째, 세시풍속에 나타난 노동의 생산성이다. 농경생활은 협동을 통하여 가능하다. 대소 단위의 두레·계를 유지하며 공동구입·공동판매를 하는 것이다.

‘농산물 데이’에도 협동의 메시지가 담겨 있어야 할 것이다. 1사1촌 운동, 공동구매 등이 좋은 예가 된다.
이러한 ‘농산물 데이’가 한 단계 발전하여 다달이 정례화되면 긴장된 현대생활에서 휴식하는, 이완을 순환하는 계기가 될 것이며 이것이 바로 웰빙 문화이다. 명절을 맞아 긴장을 풀고 시절식으로 건강을 다지고 놀이로 흥을 돋우던 우리 조상들처럼 말이다.

최정숙(농촌진흥청 전통한식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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