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2월 초입에 접어드니 창가로 들어오는 햇빛은 봄을 느끼게 할 만큼 화사하고 따뜻하다. 춥고 긴 겨울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것 같지만 마음은 벌써 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인가 보다. 그도 그럴 것이 양력 2월 4일이면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이고, 2월 9일은 일 년 중 가장 큰 달이 뜬다는 대보름인 까닭이다.

우리 조상들은 1년을 주기로 계절에 따라 반복되는 각 세시풍속일이면 평소의 일손을 쉬고 그 계절에 생산되는 신선한 재료를 이용한 특별한 음식인 세시음식을 만들어 먹어왔다.

특히 농경문화를 기본으로 한 세시풍속은 각종 농작물의 성장 및 기후의 변화에 맞추어 해마다 되풀이되는 일상생활에 활력을 주고 휴식을 주는 의미가 있었다.

중원(7월 보름)과 하원(10월 보름)에 비교되는 명칭으로 상원이라고도 하며, 밝은 대보름 달빛이 어둠과 질병, 재액을 밀어내는 것을 상징하고 달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농사를 짓던 우리 선조들이 풍년을 기원하던 중요한 명절이다.

이 날은 마을의 태평과 풍년을 점치는 ‘달집태우기’와 대보름날 밤에 남녀노소가 거리에서 다리를 밟는‘답교(踏橋)’와 경북 안동지방의 ‘놋다리밟기’ 등의 신농행사가 있다.
이런 행사들이 이제는 책에서나 볼 수 있는 상상의 놀이들로 바뀌어 버려서 왠지 모를 아쉬움이 있다.

정월 대보름은 과거에는 설날이나 추석에 버금가는 큰 명절 중 하나이었으나 최근에는 점차 퇴색해가고 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다양한 대보름 음식 재료들이 상품화 되어 명절음식을 손쉽게 준비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주부들에게 번거로운 일 중에 하나인 마른 나물 준비는 세트화. 데친 나물, 볶은 나물 형태로 바쁜 소비자들이 원하는 대로 이용할 수가 있다.

주부의 정성이 적게 들어가긴 하지만 이와 같은 형태로 대보름 음식의 명맥을 이어가는 것도 다행이라 여기며, 사회환경 변화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농촌진흥청이 21종류의 고문헌을 조사한 결과 정월대보름의 음식으로는 17종류가 기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 복쌈, 오곡밥, 약식, 묵은 나물, 귀밝이술, 원소병이 보편적인 음식으로 나타나 있으며 그 외에도 전유어, 편육, 시루떡, 강정, 식혜, 수정과, 김구이, 두부부침 등이 있다.

오곡밥은 대보름날의 전통적인 절식(節食)으로 지방에 따라 약간 다른 점도 있다. 일반적으로 쌀 · 차조 · 차수수 · 팥 · 콩 등 5가지 곡식으로 밥을 지은 것으로 정월 열나흘에 장수하기를 기원하면서 먹는 음식이며, 이웃과 나누어 먹으면 더욱 좋다고 하였다. 또한 정월대보름날에는 하루 9끼를 먹어야 좋다고 하는 풍습도 있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음력 정월 대보름의 절식은 약반(藥飯:약밥)이라고 하며 오곡밥이 대보름날의 절식이라는 말은 없다. 따라서 약밥이 대보름의 절식이었으나 시대가 지나고 생활양식이 달라지면서 약밥보다는 풍습적인 오곡밥으로 바뀐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복쌈은 쌈을 먹으면 부(富)를 쌈 싸듯이 모을 수 있다는 풍습에서 나온 것으로 오곡밥을 취나물에 싸거나 김에 싸서 먹는다.

귀밝이술은 대보름날 아침에 가족이 모여 웃어른이 찬 술을 한 잔씩 따라주며 마시게 하는데, 이렇게 하면 귀가 밝아지고 연중 내내 즐거운 소식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묵은 나물은 호박고지·시래기?고구마순 등 다양한 마른 나물을 볶아서 먹는 것으로 묵은 나물을 먹으면 그 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과학적으로는 나물을 기름에 볶아먹음으로써 겨울동안 섭취하지 못한 비타민과 지방을 보충하여 준다는 데 의의가 있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마른 나물을 물에 불려서 쌀가루나 들깨물을 넣고 국물이 조금 있게 끓이기도 한다.

부럼은 대보름날 아침에 눈 뜨는 즉시 호두·잣·밤·땅콩 등의 견과를 껍질째 깨물면서 “1년 열두 달 무사태평하고 부스럼 나지 맙시사”라고 축원을 한다. 부럼을 깨물면 부스럼이 나지 않고 이가 단단해 진다고 한다.
최근에는 ‘밥상머리 교육’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고들 한다. 과거의 밥상은 바른 식사예절, 음식에 담긴 정성과 음식이야기를 나누는 생활 속의 자연스러운 교육장이었다.

어릴 적 밥상머리에서 듣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대보름날 밝은 달 아래에서 대보름 음식을 먹으며 이 날의 의의와 음식에 담긴 이야기를 나눈다면, 더욱 뜻깊은 명절 ‘정월 대보름’이 될 것이다.

김행란(농촌진흥청 전통한식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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