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음식은 최고급 식재료를 사용하여 모양과 색이 아름답고 격식은 높았어도 맛은 별로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음식이 맛있느냐 없느냐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주관적인 미각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이렇다 저렇다 단정하는 것도 무리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격식을 차린 싱거운 궁중음식보다는 반상(班常) 음식이 더 맛있었다고 한다.

특히 민간의 대가(大家)에서 정말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고 하며 이러한 음식들을 소개한 ‘음식디미방’이나 ‘수운잡방’ 등 조리서가 많이 발간되었다.
전통적으로 미꾸라지국 즉 추어탕을 끓이는 데는 2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고추장과 된장을 풀어 장국을 끓이다가 산 미꾸라지와 두부모를 통으로 넣고 끓이는 방법이다.
생강·풋고추를 넣고, 국물을 밀가루즙으로 홀홀하게 만든다. 두부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국물과 함께 담아내는데, 두부 단면에 미꾸라지가 아롱져 있어 별미롭다.

또 다른 방법은 미꾸라지를 으깨어 끓이는 방법이다. 미꾸라지를 맹물에 넣고 폭 고아서 도드미(구멍이 굵은 체)에 건져 나무주걱으로 살살 밀면 껍질과 뼈는 체에 걸리고 살이 다 빠진다. 이것을 다시 삶은 국물에 넣고 간장이나 된장, 고추장으로 간을 맞춘다.

국물로 쇠고기국이나 닭국물을 쓰고 숙주·고비·파·배추·갓을 건더기로 넣어 푸짐하게 끓이는 것이다. 먹을 때 고춧가루나 후춧가루, 산초가루를 넣어 먹으면 더욱 맛이 좋다.

우리나라 대표 추어탕으로 남원추어탕과 청도추어탕을 들 수 있다.
남원의 추어탕은 비린내가 없고 담백한 맛과 함께 구수하게 씹히는 시래기가 일품이다. 전통 남원추어탕은 그냥 미꾸라지가 아닌 우리나라 토종 미꾸라지를 사용해 만든다.

미꾸라지를 삶아내고 곱게 갈은 후 바람에 잘 말린 무청 시래기를 푹 삶아 들깨가루로 육수를 만들고 햇된장을 풀어 5시간을 가마솥에서 끓여 우려낸다. 오랫동안 숙성된 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고춧가루와 마늘 다진 것, 대파 등의 양념을 넣어 끓이면 완성되는데 먹는 사람의 기호에 따라 부추, 산초, 후추 등을 곁들인다.

청도식 추어탕은 비린내가 없고 구수하고 진하면서 시원한 맛이 특징이다. 특히 청도식 추어탕은 가을에 먹어야 별미이다. 그래서 청도 추어탕은 미꾸라지 추(鰍)가 아니라 가을 추(秋)를 쓰기도 한다.

가을에 잡은 미꾸라지와 민물고기(미꾸라지가 충분하지 않을 경우), 배추를 넣어 끓이는데 속이 꽉 찬 포기김치용 배추가 아니고 작달만하고 잎이 얇은 옆으로 퍼진 배추를 넣어 국물을 시원하게 만든다. 1년 이상 숙성된 간장으로 간을 하며 고춧가루를 넣지 않아 맵지 않고 국물이 시원하다. 기호에 따라 고춧가루를 넣은 양념장을 넣어서 먹기도 한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예전에 서울식 추어탕도 인기가 있었다. 서울에서는 추탕이라고 불렀다.
양과 곱창을 고아 만든 육수에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고 고춧가루를 풀어 얼큰하게 끓여낸 서울식 추탕. 서울 추탕은 맵지도 않고 구수하고 산초 가루를 뿌리면 향긋한 맛이 군침을 돌게 하는 경상도식 또는 남도식 추어탕에 밀려 거의 사라졌다. 다만 중구 다동에 있는 추탕전문점 ‘용금옥’ 등 몇 개 남아 있을 뿐이다.

추어탕, 특히 경상도식 추어탕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초피. 초피는 경상도에서는 제피, 전라도에서는 젠피, 북한에서는 조피, 그리고 지피, 남추, 진초 등으로 불린다.

추어탕에 초피(또는 산초)가루를 곁들이는데 이 초피가 미꾸라지 척수에 축적되어 있는 수은(중금속의 일종)을 회수하여 체외로 배설시키는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초피는 음식의 맛을 나게 하고, 채소의 풋 냄새와 민물고기의 비린내, 육류의 누린내 등 잡냄새를 없애고, 입맛을 개운하게 하여 소화 작용을 돕고, 각종 질병을 예방, 치료하는 약효가 있어 한방에서는 민간약으로 많이 사용했다.

추어탕은 가장 서민적인 음식이며 남녀노소 모두 즐겨 먹는 영양식이다. 젊은 사람에게는 강정 음식으로, 여성에게는 미용식으로, 어르신에게는 보양식으로 어린이들에게는 뼈를 튼튼하게 하고 머리를 총명하게 하는 건강식으로 인기가 높은 음식이다.
분명 추어탕은 우리민족, 특히 서민의 걸작이다.

최정숙(농촌진흥청 한식세계화연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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