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9일 ‘농협개혁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농협 개혁의 전면에 나섰다.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 농협 자회사 ‘휴켐스’ 헐값 매각 관련 뇌물수수 등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의 비리가 터진데 대한 여론의 압박 때문이다.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이 “농민을 위한다는 농협이 돈 벌어서 정치나 한다”는 ‘가락시장 질책’에 힘을 얻어 강도 높은 농협개혁 방침을 천명한 것이다.

농림수산식품부는 ‘농협개혁위원회’ 활동을 통해 현재 입법예고 중인 농협법 개정안 가운데 경제사업 분야를 제외하고 지배구조 개선과 신용사업 등 전반에 걸쳐 개혁안을 마련할 계획을 밝혔다. 농협비리를 촉발시킨 원인이 잘못된 ‘지배구조’와 신용사업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농협개혁위원회는 김완배 서울대 교수와 농식품부 정학수 제1차관을 공동위원장으로, 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손재범 사무총장, 전국농민회 이창한 정책위원장, 농협연구소 정재돈 이사장 등 농민단체와 윤석원 중앙대교수, 농촌경제연구원 황의식 연구위원, 금융연구원 강종만 연구위원 등 학계, 농협중앙회 박재근 상무, 순천농협 강성채 조합장, 부산 대저농협 최계조 조합장 등 11명으로 구성됐다.


실효 있는 개혁안 나올까

여론과 대통령 질책에 힘입어 이번에 정부가 단행하는 강도 높은 ‘농협법 개정’ 시도가 어떤 실효성 있는 개혁을 가져올지 기대하는 바가 크다. 반면 여느 정권 때처럼 농업·농촌·농민을 위한 총체적인 개혁없이 ‘잔가지’만 쳐내는 시늉만 내다 말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런 전망도 나온다.

우선 농협개혁의 가장 큰 핵심인 경제사업 분야에 대한 검토를 안한다는 것이 문제다. 농식품부는 지난 9월에 입법예고한 농협법 개정안이 대체로 경제사업 분야 개혁을 대신할 수 있다는 시각 때문에 세워진 방침으로 보인다. 그러나 농협 개혁의 핵심은 신용사업을 통해 번 돈을 어떻게 경제사업에 투자해서 농민에게 혜택을 돌릴 것이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신용사업과 지배구조 개선은 궁극적인 개혁 목표와 다소 차이가 있다.

또한 찬반 의견이 팽팽하면 투표를 통해 개혁안을 조율한다는 방침이 자칫 실효있는 개혁안 마련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한 농업계 전문가는 “이들 위원들의 면면을 볼 때 몇몇을 빼곤 대부분 전문성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농협 조합장을 제외한 일부는 ‘친농협계’ 인사라는 인상이어서 농협에 유리한 결과를 도출해 내는데 한계를 보일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때문에 대통령의 질책에 따라 일면 상명하복의 어쩔 수 없는 농협개혁 추진이라는 분위기여서 이번 정권에서도 개혁이라는 ‘숲’ 보다는 농협비리의 ‘잔가지’만 쳐내는 ‘시늉’만 내다가 끝날 것이라는 자조 섞인 우려가 나온다. 농협개혁의 목소리만 컸을 뿐 실효성 있는 개혁을 해내지 못해 이번에도 개혁의 ‘칼바람’에 대한 농협의 ‘내성’만 키워줄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배어 있다.

회장 지배권 제한이 핵심될 듯

하지만 농협의 지배구조를 개혁함에 따라 농협중앙회장의 전횡을 막는다는 것에 거는 기대가 크다. 이번 개혁 논의에서 중앙회장의 대표이사 추천권을 없애는 등 인사권과 대부분의 집행권을 제한하는 방안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재 중앙회장은 중앙회 전무이사와 신용, 경제 등 사업 대표이사에 대한 추천권한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전국의 조합장으로 구성된 대의원회가 동의하는 형식으로 최종 임명된다. 중앙회장의 전횡을 견제하기 위한 방편인데, 부실조합에 대한 무이자자금지원 등 각종 혜택에 대한 집행권한을 가진 중앙회장의 뜻을 대의원회가 거부하기 힘들기 때문에 회장의 권한은 사실상 절대적이다.

이 때문에 지난 9월 입법예고된 농협법 개정안에 인사위원회를 두고 추천권을 행사하도록 하고 회장의 연임 가능 횟수도 1회로 제한했지만, 개정안에 대한 의견수렴 과정에서 국회의원과 농협의 반대로 이 내용이 삭제돼 법제처로 넘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농협개혁위원회가 이를 어떻게 처리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한편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은 지난 8일 “회장 기득권을 포함한 기존 개혁안을 백지 상태에서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감사위원회 독립성 확보도 관심

입법예고안과 달리 법제처 심사안에서 빠진 ‘감사위원회 독립기구화’ 문제도 주목된다.
현재 농협중앙회의 감사위원회는 6명의 감사위원으로 구성되는데, 감사위원은 회장과 사업전담대표, 전무이사를 제외한 이사들이 자신들 가운데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 임명된다. 위원 6명 가운데 적어도 3명은 조합장 출신 이사가, 나머지는 사외이사가 맡도록 비율이 정해져 있다. 그런데, 30명의 전체 이사들 가운데 10명의 사외이사가 중앙회장 추천으로 대의원회가 동의한 인사들로, 마음만 먹으면 중앙회장이 자신을 감시할 감사위원 가운데 절반을 자기 사람으로 채울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당초 개정안에 감사위원회의 독립성 보장 차원에서 감사위원을 인사추천위원회 추천을 거쳐 대의원회가 선출하도록 규정했으나, 이 또한 의견수렴 과정에서 삭제됐다.

농협, ‘금융지주회사’ 독립 추진

입법예고안은 신용사업 분야 개혁안 가운데 중앙회와 조합의 신용사업 출자한도를 현행 15%에서 일반 은행권과 동일한 수준인 30%로 상향 조정했다. 정부와 농협은 신용사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타 금융기관과의 형평성을 고려한 조치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중앙회 사업이 경제사업 지원보다 신용사업 위주로 이뤄지고 있는데다, 세종증권을 인수한데 이어 ‘외환은행 인수설’ ‘중소기업 인수설’ ‘로또복권 50억 출자’ 등 방만한 신용사업 운영 문제를 더욱 심화시킨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이번 개혁 논란 과정에서 농협이 ‘종합금융지주회사화’ 방안을 내놓아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농민조합원이 출자한 자금을 경제사업에 쓰는 대신 ‘금융자본화’ 하는데 투자하는 것은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오히려 일선 조합과 조합원의 경제사업 법인에 대한 출자한도를 높여 경제사업을 활성화 하고, 중앙회의 신용사업 수익의 일정 비율을 경제사업에 지원하는 것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이 또한 신용사업 개혁안을 내놔야 할 농협개혁위원회의 과제 가운데 하나로 지적된다.

개혁위, 경제사업 논의 안해

하지만 이번 농협개혁위원회의 논의에는 경제사업 분야 개혁이 빠져있다. 현재 법제처에 넘겨진 개정안 내용으로도 만족한다는 것이다.
경제사업을 잘하는 농협으로 부실농협을 통폐합해 ‘광역조합화’하는 것이 주된 내용인데, 조합간 경쟁체제를 도입해 조합원이 생산하는 농산물을 제 값에 잘 팔아주는 농협의 경제사업을 활성화하고, 이 농협에 조합원이 시·군 단위로 선택적으로 가입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 조합에 농산물을 출하키로 약정을 맺고 성실히 지키는 조합원(약정 조합원)에 대한 인센티브를 주는 근거도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해 현행 조합 난립을 시군단위로 확대시키고 과당경쟁 이라는 부작용을 낳는다는 지적과 함께 중앙회의 지역본부와 시군지부의 신용사업을 통합해 일선농협에 이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포괄적인 농협법에서 경제사업을 발전방안을 포함시킬 수 없지만 신용사업 개혁을 통한 간접적인 경제사업 지원방안이 도출시켜야 한다는 것이 농업계의 목소리다.

여론 따른 개혁안 도출 기대

많은 우려가 있지만 이번 기회에 요란한 개혁 구호에 걸맞는 개혁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여론이다.
정부가 생산자단체를 강제하면 안된다는 태생적인 문제도 있지만 그동안과는 달리 대통령의 농협에 대한 강력한 비판과 강도 높은 개혁을 주문하고 있고 여론도 힘을 실어주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또 지금같은 분위기에서는 농협이나 정치권도 이번 개혁 요구에 반하는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는 사실도 좋은 기회다.

농업계는 “농협개혁위원회를 구성하는 위원들의 면면을 볼 때 일부분 찬반 의견대립이 있을 것”이라면서 “위원들간 처한 입장과 이권을 버리고 농협이 농업인을 위한 조직으로 거듭나도록 뜻을 모아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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