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있어서
비빔밥은… ‘생각대로 하면 되고’

반찬 없으면 (나물에다 고추장 넣어) 비빔밥 하면 되고
고기 없으면 계란 넣으면 되고
고추장 없으면 된장 넣으면 되고
입맛 없으면 비빔밥 하면 되고
‘생각대로 하면 되고’ (휴대폰 광고 패러디)

비빔밥이 언제, 어떻게 개발됐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임금의 간식’이라는 얘기가 있다. 이는 조선시대 임금이 먹는 밥을 일컫는 수라에는 흰수라, 팥수라, 오골수라, 비빔 등 4가지가 있는데 비빔은 점심이나 종친이 입궐했을 때 먹는 가벼운 식사였다고 한다. 조선 선조가 임진왜란 때 몽진(임금이 난리를 피하여 안전한 곳으로 떠난다는 뜻)하면서 수라상 대신 비빔밥을 받았다는 주장도 있다.

비빔밥은 농사와 관련 있는 ‘들밥’과 제사와 관련한 ‘음복례’설이 있다. 모내기를 하거나 김매기, 벼베기 등 들판에서 농사일을 할 때는 점심이나 새참을 내간다. 들판이 넓어 점심과 새참을 먹기 위해 집으로 돌아오면 오가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음복이란 제사를 마치고 제상에 올린 술이나 음식을 나눠 먹는 신인공식(神人共食)을 말한다. 제사를 지낸 뒤 제상에 올린 밥과 나물을 큰 그릇에 넣고 비벼 제사에 참여한 후손들이 음복례 형식으로 나눠 먹은 데서 유래한 것이다.

또 동학군이 그릇이 충분하지 않아 그릇 하나에 이것저것 받아 비벼먹었다고 한 데서 유래한다. 마지막으로 섣달 그믐날 새해 새날을 맞이하기 위해 여러 가지 새로운 음식을 장만하면서 묵은해의 남은 음식을 없애기 위하여 묵은 나물과 묵은 밥을 비벼먹은 데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유래야 어떻든 비빔밥은 쌀밥과 채식 위주의 우리 식생활에 바탕을 둔 전형적인 한국인의 슬기가 담긴 뿌리 깊은 전통음식이다. 비빔밥은 화합문화를 상징하는 한국음식이다.

재료가 갖는 적, 황, 청, 흑, 백의 오방색(五方色)으로 안정되고, 모두 갖춘 특징적인 색을 띄면서 무질서한 소재들이 어우러져 균형 잡힌 형태를 내는 비빔밥은 우리 민족의 독창성을 나타내고 있다. 오방색의 의미를 좀 더 살펴보면, 청색은 우리 신체의 간장을 상징하며, 백색은 폐, 적색은 심장, 흑색은 신장, 황색은 비장을 상징하는 등 신체 장기 즉 건강과 관계가 있다.

또 조용헌의 ‘비빔밥과 오행’이라는 글에 의하면 비빔밥에는 한마디로 오행사상이 모두 함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선 우주를 구성하는 5대 요소인 오행 수·화·목·금·토를 보자. 비빔밥에 있는 ‘수’란 참기름이다. 색깔이 검정에 가까운데 검정은 수를 상징하는 색이다. ‘화’는 붉은 고추장이다. ‘목’은 시금치 등 녹색의 나물이 해당되며, ‘금’에 해당하는 것은 흰쌀밥이다. ‘토’는 노란 달걀이 해당된다. 비빔밥을 먹을 때 사용하는 숟가락과 젓가락도 음양을 내포한다. 숟가락은 홀수로 양으로 간주되며 젓가락은 음으로, 수저를 함께 사용하는 것은 음양의 조화를 의미한다(비빔밥을 먹을 때 숟가락과 젓가락이 모두 필요하다. 숟가락으로 비비다가 나물이 너무 많아서 한데 뭉치게 되면 젓가락으로 살살 펴가면서 비비면 된다). 그래서 비빔밥 한 그릇에 동양의 전통사상인 음양호행사상이 들어있는 것이다.

비빔밥의 유래에서 알 수 있듯이 임금 수라상에서부터 헛제사밥, 서민들의 들밥까지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한국인이면 누구나 먹었던 우리음식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비빔밥에 어떤 격식이 있는 것이 아니다. 격식이 없는 것이 비빔밥인 것이다. 찬밥이 있고 나물이나 김치나 함께 비빌 것이 있어서 비비면 비빔밥이다. 농부가 밭에서 보리밥에 묵은 고추장이나 된장을 넣어 비벼 먹어도 어엿한 비빔밥이다. 무엇이 빠져서는 안 되고 무엇이 꼭 들어가야 하고 하는 격식은 없다.

그러면서도 전주식이니 진주식이니 해주식이니 해서 우리 조상들은 이것을 지역별로 차별성 있는 향토음식으로 발달시켜 놓았다. 그래서 비빔밥은 전체적으로 화합하면서 한편으로는 지역성이 뚜렷한 한국인의 기질을 닮은 가장 한국적인 한국의 대표음식이 아닌가 한다.

오늘날 비빔밥은 시대의 변천에 적응하면서 발전을 거듭해 전국 어디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는 메뉴로 자리잡았다. 최근에는 곱돌솥에 밥을 해 나물과 쇠고기, 고추장 등을 넣고 비빈 ‘돌솥비빔밥’도 개발되었으며 지역에 따라 특산물을 재료로 한 비빔밥이 다수 선보이고 있다. 광주에서는 전복과 생선회를 넣고 초고추장을 넣어 야채와 함께 약간 볶아 내놓은 ‘전복비빔밥’이 있고 태안 등 서해안에는 새콤달콤한 소스로 즐기는 ‘함초비빔밥’이 있다.

또 한국 음식 중 지명 이름을 딴 음식으로 비빔밥만큼 많은 게 없다. 전주비빔밥, 평양비빔밥, 안동비빔밥(헛제사밥), 해주비빔밥, 진주비빔밥, 통영비빔밥, 함양육회비빔밥, 개성차례비빔밥, 함평육회비빔밥, 거제멍게젖갈비빔밥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지역마다, 계절에 따라 재료도 다르고 맛도 다르지만 비빔밥이 한국의 대중음식이었음을 잘 보여주는 데 부족함이 없는 ‘증거’다.

비빔밥을 담아내는 그릇도 다양하다. 보통 뚝배기에 담아내지만 곱돌솥이나 질그릇, 사기그릇, 놋그릇에 담아내기도 한다. 남원시 달오름마을의 흥부비빔밥은 바가지에 담아 먹는다.
이렇듯 비빔밥은 상황에 따라, 취향에 따라, 멋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를 줄 수 있는 우리 모두가 주인인 한국대표브랜드이다.

최정숙(농촌진흥청 전통한식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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