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 포도주산지인 경북에서 포도 특화작목산학연협력단(단장 유영산 대구가톨릭대 교수)의 입지는 확고하다. 칠레,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타결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 포도산업이 의외로 선전하고 있다는 사실도 산학연협력단의 입지를 굳히는 데 한몫했다.

특히 전국 포도생산량의 44%를 차지하고 있는 경북지역을 중심으로 포도산업이 시장개방 확대라는 악재를 넘어 견조한 성장세를 보이며 미국, 동남아 등 해외시장 공략을 통해 수출확대를 꾀하고 있다는 점은 한국 포도산업이 안정적 궤도에 올랐다는 섣부른(?) 예상까지 가능케 하고 있다.

물론 한국 포도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수출확대를 위한 외국인 선호품종 개발과 고품질 생산, 가공·저장·포장·유통 등 모든 단계의 최적시스템을 갖추는 일도 중요하다. 이들 과제는 경북 포도 산학연 협력단의 몫이다.




◇ 1차는 품질경쟁력, ‘친환경’에 집중

경북 포도 산학연 협력단의 현장컨설팅과 영농교육 활동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포도 협력단은 2006년에만 김천, 경산, 상주, 영주, 영천 등 14곳 16개 작목반을 대상으로 현장 공동컨설팅을 실시했다. 컨설팅 참여 농업인이 500명을 넘어섰다. 게다가 수시로 이뤄지는 개별컨설팅은 50회를 웃돈다. 영농교육도 같은 해에 7곳에서 575명을 대상으로 추진됐다.

포도 협력단은 ‘포도에 관한 궁금증 풀이’, ‘중국포도재배기술’ 등 교재를 발간하고 협력단 활동과 각지의 포도 관련 소식을 전하는 소식지를 수시로 발행했다. ‘포도는 가족 건강을 지켜줍니다’와 ‘가정에서 포도주 담그는 방법’이란 홍보 팸플릿은 생산농가는 물론 소비자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포도 협력단은 이밖에도 ‘포도 포장디자인 개선과 유통전략’ 심포지엄, ‘거봉포도의 생장조절제 이용기술 보급’ 현지워크숍, 영천포도의 미국 수출과 경산포도의 대만수출 컨설팅 지원 등 왕성한 활동력을 보였다. 유영산 교수를 비롯한 협력단 기술전문위원들의 분투 덕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경북 포도 협력단이 대대적인 현장 활동을 벌이면서 1차로 집중한 것은 품질경쟁력. 시장개방 확대에 대응해 포도 재배농가를 정예화하고 고품질 친환경 포도를 생산함으로써 농가소득을 높일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유영산 교수는 “최근 소비자들의 과실 선호도는 가격이 비싸더라도 식품으로 안전성이 높은 친환경 농산물에 관심이 높은데, 친환경 포도 생산과 유통체계가 미흡하다보니 농가에서도 친환경 재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형편”이라며 친환경재배 컨설팅에 집중한 배경을 설명했다.

이에 따라 협력단은 포도의 우박피해와 동해 방지대책, 열과 방지, 거봉포도의 수세 및 신초 관리, 생력형 포도수형과 전정, 새로운 접목기술 보급 등에 힘쓰는 한편 저농약 방제체계 개발, 친환경 종합생산체계 기술보급, 친환경 농자재 이용 연구 등을 통해 적잖은 성과를 얻었다.

◇ ‘와인클러스터’, ‘포도산업특구’ 주목

이처럼 포도 협력단의 활동은 현장의 애로사항을 해결하는 데 집중됐다. 친환경 재배기술 보급으로 품질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현장의 목소리’는 저장과 가공기술, 유통마케팅 강화 요구로 이어졌다. 포도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일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와인 제조기술, 가정에서의 포도주 제조법, 포도세척 시설을 활용한 저장기술, 포도즙 품질향상을 위한 가공기술 등에 대한 관심과 자문이 늘어났다. 협력단이 한국형 와인 개발에 적극 나선 까닭이다.

사실 포도는 다양한 가공품이 가능한데도 우리나라 포도가공이용률은 2%에 그치고 있는 형편이다. 게다가 국내에서의 와인 소비는 급증하는데 이렇다 할 국내 와인이 없다보니 시장은 거의 외국산이 점령해가고 있다.
포도 협력단은 먼저 소비자 선호도 조사에 나섰다. 대구, 경북지역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포도주 선호도를 조사하는 한편 식품가공분야 기술전문위원을 맡고 있는 경북대 최종욱 교수를 중심으로 와인개발에 나섰다.

협력단은 결국 영천시농업기술센터, 한국와인주식회사 등과 손잡고 ‘벵꼬레’를 개발, 상품화하는 데 성공했다. 레드와인과 아이스와인을 들고 시장에 뛰어든 ‘벵꼬레’는 우선 국내 소비자 취향에 맞는 포도주를 생산, 판매함으로써 수입대체효과를 얻는다는 전략이다. 아울러 비상품과나 하위 30%의 포도를 가공용으로 전환함으로써 출하용 생과의 품질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북포도의 와인시장 진입은 향후 영천의 와인클러스터 조성으로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농림부 지역농업클러스터 육성사업으로 선정된 ‘영천와인클러스터’는 45억원의 사업비를 확보한 상태. 영천시는 지역의 포도농업을 기반으로 와인산업을 육성한다는 계획에 따라 농가형 와이너리(winery, 와인양조장)를 조성하고 와인 담그기와 시음 체험을 관광자원화하는 등 아시아의 와인벨리로 자리잡겠다는 당찬 목표를 세웠다.

농촌진흥청의 2008년도 지역특화작목육성촉진사업으로 선정된 ‘영천와인학교운영’도 와인클러스터사업과 같이 한쪽 날개를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영천시는 10억원의 사업비로 와인학교 청사를 신축하는 한편 농업인과 도시인을 대상으로 한 와인교육과정 운영, 와인양조 전문인력 육성, 와인소비문화 확대를 위한 마니아 양성 등에 힘쓰고 있다.

영천과 함께 경북 포도산업의 쌍벽을 이루고 있는 김천도 ‘포도산업특구’ 지정으로 경북 포도의 명품화를 선도하고 있다. 생산시설과 생산기반 현대화, 한국형 포도주 개발, 공동브랜드 등 포도 협력단의 핵심추진전략에 있어 김천포도산업특구의 성공여부는 중요할 수밖에 없다.

유영산 교수는 “경북지역 포도산업의 발전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고 산, 학, 관, 연의 협력네트워크도 그만큼 활발하다”며 “전국 제일의 경북포도, 아시아 와인밸리 등을 모토로 2013년까지 1만5천여 정예농가 양성, 5천억원의 고부가가치산업 육성의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사령탑 인터뷰 - 유영산 대구가톨릭대 교수

“경북포도 부가가치 높이기 최선”

경북 포도 특화작목산학연협력단장을 맡은 유영산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협력단 기술전문위원들과 포도작목반 농업인들의 공로를 먼저 꺼냈다. 포도산업이 시장개방 충격을 딛고 안정적인 궤도에 올랐다는 평가를 내놓으면서다.

권기덕 경북대 교수의 포장디자인 개발, 같은 학교 최종욱 교수의 한국형 와인 개발 사례와 함께 윤광서 영천시농업기술센터 과수원예과장의 헌신적인 현장활동 등을 소개했다. 포도 협력단은 이들 전문위원들의 노력이 합해져 성과를 내고 있다는 설명이다.

유 교수는 무엇보다 경북지역 포도재배농가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최근 몇 년간 포도가 유례없이 좋은 시세를 보이는 것은 모두 농업인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평했다.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이후 국내 포도산업이 잠시 주춤했지만 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데는 포도재배농가의 기술경쟁력, 품질경쟁력 강화가 주효했다고 덧붙였다.

칠레와의 FTA 여파가 클 것으로 예상했는데.
=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전부터 포도농가들의 위기의식은 상당했다. 칠레포도의 가격경쟁력이 우리를 압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농업인들은 세계최고의 기술력을 갖췄다. FTA 체결이후 재배면적이 300헥타르 정도 줄긴 했으나 전국적으로 포도의 품질이 상당히 높아졌다. 시설포도도 칠레산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게 사실이지만 농업인들이 슬기롭게 극복해왔다.

영천지역은 전국최대 포도주산지로 알고 있다.
= 영천 포도재배면적은 2천210헥타르로 충북 영동보다 80헥타르 정도 적다. 생산량으로는 전국의 11% 비중을 차지해 가장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영천지역은 포도품종 다변화에 성공했다. 캠벨이 52%, MBA가 25%, 나머지는 거봉 등이다. 영천포도는 해마다 3회 히트를 친다는 얘기가 있다. 7월 하순에 가온포도 물량이 떨어질 때 무가온포도를 출하하고, 8월 중하순에 김천이나 영동 포도가 끝날 즈음 당도 높은 캠벨이 생산되고, 9월 하순이후에는 MBA가 시장에서 히트를 친다는 말이다. 적기 출하시스템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와인클러스터나 포도산업특구가 주목받고 있다.
= 와인클러스터사업은 영천시에서, 포도산업특구는 김천시에서 추진되고 있다. 이들 지역은 전통적으로 포도산업의 메카라는 점에서 향후 새로운 발전모델 형성 가능성도 가장 높다. 김천은 고품질 포도생산과 품질개량, 친환경재배 등으로 적잖은 성과를 내고 있다. 영천 와인클러스터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전폭적인 지원이 이어지고 있다. 포도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인다는 측면에서 기대가 크다.



현장탐방- 박태안 원제포도작목반 대표




“억수로 바쁘죠. 앞서가려다 보니까…”

경북 영천시 금호읍 원제리 마을입구 정자에서 만난 박태안(48세) 원제포도작목반 대표는 구슬땀을 수건으로 닦으며 최근 농자재 가격인상에 대한 걱정을 토로했다. 일손이 부족해도 부부가 밤낮으로 일하다보니 인건비 인상 영향은 적은데 포장재, 비료 가격폭등으로 생산비가 크게 늘어나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고 덧붙였다.

박태안 대표는 지난해까지 작목반 총무를 맡아 일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바쁘기는 마찬가지라고 한다. 원래 포도농사가 손이 많이 가는 농사이기에 바쁜 것도 있지만, 박 대표는 “남들보다 앞서가려고 하다 보니 바쁘다”고 이유를 댔다. 각 품종의 단점을 보완하고 개선하기 위한 재배기술 개발에 새로운 국산품종 시범재배까지 일일이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원제포도작목반엔 35농가가 참여하고 있다. 이들 농가의 전체 포도재배면적은 42헥타르 정도. 평균 1헥타르가 넘는 셈이다. 작목반의 특징 중 하나는 90% 이상이 MBA 품종을 재배한다는 점이다. 캠벨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 현실에서 원제작목반은 일찌감치 MBA라는 틈새시장을 파고든 것이다.

원제작목반에는 특히 젊은 농업인이 많다. 10여 명이 이른바 ‘청년회원’이다. 소득이 괜찮다보니 젊을 때부터 아예 포도농사에 뛰어들었거나 다른 일을 하다가 농사로 전향한 청년회원들이다. 이들은 평균 2헥타르가 넘는다고 한다. 소득은 1억원 이상. 젊은 측에 드는 박 대표도 지난해 우박피해로 소득이 줄긴 했으나 7천500평 농사로 1억2천500만원의 소득을 올렸고 총무를 맡고 있는 정동규(45세) 씨도 5천500평 농사로 9천만원의 소득을 올렸다.

원제작목반은 경북 포도 특화작목산학연협력단의 현장컨설팅에서 많은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 품종별로 당도나 열과 등 취약점이 있으면 이를 극복할 기술컨설팅은 기본이고, 포장상자 디자인을 개발해주거나 포도가공산업의 길을 제시하는 등 협력단 전문위원들은 말 그대로 동반자가 되고 있다.

‘영천와인클러스터’와 관련해서도 전문위원의 헌신을 고마워했다. 협력단 기술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윤광서 영천농업기술센터 과수원예과장은 원제작목반 포도의 미국 수출길을 여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최근 와인클러스터에 연계한 와이너리(와인양조장) 조성에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영천은 농림수산식품부의 지역클러스터 사업대상지로 선정되고 농촌진흥청의 특화작목육성촉진 사업대상에 선정돼 각각 45억원, 10억원의 예산을 확보한 상태. 작목반을 중심으로 한 와이너리 15곳을 조성하고 도시민들이 체험할 수 있는 관광벨트를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원제작목반에 참여하고 있는 여성농업인 2명이 이미 와인학교 교육을 마치고 ‘원제 와이너리’를 준비중이다.


성과 & 과제


1. 종합정보의 유용성…현장과 시장을 넘나든다

경북 포도 산학연 협력단의 활동이 현장에서 성과를 내는 까닭 중 하나는 정보의 취합과 활용이라고 할 수 있다. 포도 협력단은 사업초기부터 현장애로사항을 파악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재배기술, 친환경재배, 저장과 가공, 유통과 소비로 대분류한 뒤 부문별로 주요관심과 애로사항을 파악하고 세부사항별 대안을 만들어갔다. 현장과 시장을 넘나들며 재빠르게 정보를 얻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돋보인다. 협력단의 포장디자인 개발, 한국형 와인 개발 등은 발군이다. 물론 협력단 기술전문위원들의 적극적인 현장컨설팅이 전제된다.

2. 끊임없는 진화…고품질 달성, 가공산업에 도전

경북 포도산업은 진화하고 있다. 칠레 포도와 와인의 국내시장 진입으로 위기에 처한 포도산업의 돌파구는 품질경쟁력, 친환경재배기술일 수밖에 없다. 고품질, 안전 농산물을 선호하는 소비트랜드에 맞게 협력단의 집중활동이 이뤄진 것도 당연한 일. 진화는 진화를 재생산한다. 포도 협력단이 와인이나 포도즙 같은 고부가가치 가공산업에 미리 눈을 돌린 것도 진화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내외환경 변화를 읽어내고 진화를 준비한다. 영천와인클러스터는 충북 영동지역과 더불어 향후 한국을 넘어 아시아의 ‘와인 밸리’로 성장할 수 있다.

3. 지자체와 어깨동무…협력관계 더 확고히 해야

포도 협력단은 산, 학, 관, 연의 네트워크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왔다. 농촌진흥청, 경북도농업기술원 등과 업무협의회를 수차례 진행하면서 ‘전국 제일의 포도로 명품화’하는 목표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2013년 1만5천여 정예농가, 5천억원의 핵심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경북 포도의 지역특화전략은 주산지 지방자치단체와의 공고한 협력관계 형성이 관건이다. 김제 포도특구나 영천 와인클러스터의 성공을 위해 협력단은 ‘윤활유’가 돼야 한다. 이들 지자체의 포도산업 육성정책이 성공할 때 경북포도는 한국을 대표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원제작목반도 와인클러스터에 거는 기대가 크다. 포도시세가 괜찮고 당분간 안정적인 가격을 형성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생과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서다.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포도가공산업이 작목반의 미래를 담보할 것이라는 예상도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박 대표는 “원제포도는 국내 어느 시장에 내놔도 최고라고 자부한다. 그러나 선두라는 생각에 안주하면 미래는 없기 때문에 우리 작목반은 남보다 앞서려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며 와인 등 가공산업에서도 성공하겠다는 각오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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