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봄은 잔인했다. 조류인플루엔자(AI) 공포가 전국을 엄습하면서 한국 양계산업은 최대 위기에 처했다. 2008년 AI 발생은 기존 겨울철을 지나 봄철에 발생한 점, 특정 지역이 아닌 한반도 전역에 퍼졌다는 점에서 가히 ‘AI 핵폭탄’에 비유된다. 보수적인 관점에서도 직간접 피해액이 6천억원을 상회하니 농가의 실제 피해는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한국 양계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전북지역에 눈귀가 쏠렸다. 닭고기와 계란 생산액은 1970년 620억원에서 2000년 1조4천720억원으로 24배 늘었고, 이후에도 계속 성장해2007년 생산액은 11조5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비약적인 성장의 중심에 육계생산비중 35%를 차지하는 전북이 있다. 그만큼 AI 피해가 큰 전북이 향후 양계산업의 가늠자가 된다는 점에서 이목이 집중됐다.




◇ 사업계획 수정…소비촉진 홍보 집중
전라북도 양계 특화작목산학연협력단(단장 류경선 전북대 교수)은 AI 발생 직후 사업계획을 수정했다. 친환경 양계산물 인증, 브랜드화를 위한 사양관리, 가공기술 개발과 부가가치 향상 같은 사업의 축은 그대로 두고 진행하되 AI 발생에 따른 대책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닭고기의 안전성을 홍보하고 인체전염 위험성이 전혀 없다고 강변해도 닭고기와 계란 소비는 위축될 대로 위축된 상태. 그 피해를 고스란히 양계농가가 떠안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양계 협력단의 선택은 소비촉진을 위한 적극적인 홍보활동이었다.

“AI 발생으로 양계산업이 위기에 처하고 파산 농가들이 속속 나타나는 상황에서 경쟁력 강화니 부가가치 향상이니 하는 주장은 허무맹랑하다. 닭고기 소비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일이 시급했기 때문에 협력단은 모든 수단과 매체를 통해 AI의 인체감염 오해를 불식하고 닭고기의 안전성과 기능성을 홍보하는 데 주력했다.”

류경선 교수는 긴박했던 지난 4월과 5월, 6월의 상황을 설명했다. 김제에서 고병원성 AI가 발생한 직후 협력단은 운영협의회를 열어 대책을 논의하는 것을 시작으로 기술전문위원들은 농가를 방문해 병성감정을 벌이는 한편 언론매체를 통해 닭고기 섭취의 안전성을 적극 홍보하고 나섰다.

전북대 장형관 교수 등 수의분야 전문위원들은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에 여러 차례 출연해 △온도에 따른 AI 바이러스 감염력 상실 △AI 오염에 따른 계란의 안전성 실험 등 실제 실험장면을 통해 가금육과 계란의 안전성을 설명하기도 했다.

아울러 협력단은 5월과 6월에 △인수공통전염병(AI)의 오늘과 내일 △AI의 과학적 실체 △닭 사육환경과 사료영양이 AI에 미치는 영향 등 세미나를 잇달아 개최하고 △AI 마무리를 위한 방안과 닭고기 소비촉진운동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어 양계농가 회생책 마련에 진력했다.

◇ 현장농가 찾아 머리 맞대고 현안해결
전북 양계 산학연 협력단의 힘은 종합컨설팅이 가능한 전문위원 확보에서 나오는 듯하다. 이 분야 전문인력이 절대 부족한 현실에서도 전북 협력단은 가금학, 전염병학, 축산기계학, 식육학 등 특정분야 교수들뿐 아니라 사료유통, 환경관리, 사양관리 등 분야별로 내로라할만한 인사들이 포진했다.

게다가 이들 전문가들이 ‘떼’로 현장을 찾아가 즉석에서 종합토론을 벌이고 현안해결에 나서기 때문인지 농가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분야별로 따로 찾아갈 경우 번거로울 뿐 아니라 종합컨설팅이 이뤄질 수 없는 사정도 작용했다. 사양관리기술은 물론 정책현안까지 토론주제에 오르기 때문에 신뢰는 더 커진다.

“AI 피해 이전에 농축산물 가격문제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 물가는 오르고 농업생산비는 20%, 30% 이상 올랐다고 하는데 농축산물 가격은 제자리다. 오히려 떨어지기 일쑤다. 희망과 비전이 전혀 보이지 않고 정부도 손 놓고 있으니 1차 산업 전체가 근본부터 붕괴할 위기에 처했다.”(김광삼 OK농장 대표)

“경제 낙후지역인 전북에서의 AI 발생에 따른 피해는 단순한 피해액의 문제가 아니다. 지역경제의 근간까지 흔들 수 있는 문제다. 육계생산의 35%를 차지하는 전북의 양계농가에는 위생, 환경시설 지원이 절실하다. 지금도 많이 올랐지만 향후 사료가격 상승을 예상하면 이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류경선 전북대 교수)

“AI 문제가 이번 사태로 국가 재난처럼 인식되긴 했어도 정부나 국민들은 여전히 잠재한 문제에 대해서는 그 심각성을 모르는 듯하다. AI가 없다고 해도 사실 양계농가에겐 여러 질병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이를 해결하지 못해 피해가 2, 3년 누적되면 올해 AI 이상의 엄청난 피해를 당할 수 있다.”(김철수 전북대 교수)

“질병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농가에서 영양제 등 대체보조제를 정확한 근거 없이 사용하는 경향이 많다. 자칫 질병이 발생하면 그 해당농가뿐 아니라 이웃 농가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다. 농가와 수의학계가 질병문제 해결을 위해 신뢰를 갖고 함께 노력해야 하는 까닭이다.”(송희종 전북대 교수)

지난 6월 하순 정읍 양계농가에서 벌어진 즉석토론 광경. 이밖에도 여러 사람의 말이 이어졌다.

◇ ‘매실토종닭’과 ‘복분자계란’ 앞세워
협력단은 전북 양계산업을 지역특화산업으로 개발하기 위한 전략으로 매실토종닭과 복분자계란에 주목했다. 소비자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브랜드로 이들을 앞세운다는 전략이다.

매실토종닭은 일반 닭고기에 비해 조지방과 콜레스테롤 함량이 낮고 조단백질과 미네랄 함량이 높다. 닭고기 특유의 비린내가 없어 풍미까지 곁들인 담백한 맛을 낸다. 전국 토종닭 생산의 20% 비중을 차지하는 전북으로서는 놓칠 수 없는 대목이다.

게다가 음식물방부제, 식품첨가제 환경호르몬 등에 무방비로 노출된 현대인들에게 매실토종닭의 안전성과 기능성이 눈에 띌 수밖에 없다.

농가소득 증대도 뒤따르고 있다. 토종닭 농가들은 그간 생산가격 이하로 출하하면서 손실을 감내해온 게 현실. 매실토종닭과 복분자계란이라는 고품질 브랜드가 시장에서 호평을 받으며 농가경영수지도 호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협력단이 분석한 경제적 효과에 따르면 부존자원인 매실과 복분자를 활용할 경우 토종닭은 1마리당 600원, 산란계는 3천400원의 생산비 절감이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협력단이 2007년 6월부터 11월까지 전북대 동물사육장과 정읍 소재 OK목장에서 시행한 실증시험 결과로 전체적으로 각각 15억원, 19억원의 절감효과를 얻었다.

생산비 절감뿐 아니라 고품질 브랜드를 달고 판매됨에 따라 판매수익도 늘었다. 매실토종닭은 1킬로그램에 1천300원을 받아 전체 32억원의 잉여소득이 생겼고 복분자계란은 산란계 56만수를 기준으로 약 50억원의 수익증가 효과를 거뒀다.

류경선 교수는 “이들 브랜드는 백화점 등 판매시장이 제한돼 판로확보가 어려운 실정”이라며 “생산기술 지도와 함께 마케팅관리 분야에도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답을 찾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성과 & 과제

1. 현장 즉석토론의 힘…대안이 나온다
전북 양계 산학연 협력단의 힘은 현장종합토론에서 나온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다보면 현안이 튀어나오고 해결방안까지 도출하기 십상이다.
분야별로 따로 컨설팅을 할 경우 농가도 피곤할뿐더러 종합적인 컨설팅이 이뤄지기 어렵다. 그래서 양계 협력단 전문위원들은 무리를 지어 현장을 찾는 경우가 많다. 아울러 일방적 교육지도가 아닌 산학연 협의체계를 갖춤으로써 협력단 활동성과를 높이고 있다.

2. 닭과 매실·복분자의 만남…생뚱맞나·
매실을 먹인 토종닭 키우기, 복분자를 활용한 달걀 생산은 양계농가들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협력단의 기술지원이 일궈냈다는 점에서 본보기가 되기에 충분하다. 아이디어도 아이디어지만 매실을 이용한 닭 사양기술 정립에는 많은 수고가 들 수밖에 없다.
부존자원을 활용함으로써 생산비를 절감하는 것은 물론 항생제를 쓰지 않는 고품질 닭고기를 생산해 소비자를 끌고 있다. 이를 브랜드로 연계한 ‘매실토종닭’, ‘복분자계란’은 가히 압권이다.

3. 가금질병 관리는 끝나지 않는 숙제
가축질병문제는 가축사육이 있는 한 끝까지 풀어야 할 과제다.
양계산업을 아예 포기하고 닭고기와 달걀을 외국에서 수입하는 방안 외에는 없다고 자조 섞인 얘기도 있지만, 질병관리가 곧 경쟁력이기에 질병발생 억제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백신 체계화, 효과적 예방대책, 악성전염병 발생 시 방역·차단 등 구체적 노력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양계시설의 위생적인 환경이 가장 중요하다.
시설 현대화를 통해 질병예방을 꾀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도 필수적이다. 농가의 환경개선 노력은 기본과제다.


사령탑 인터뷰 - 류경선 전북대 교수

“양계농가 시설현대화가 시급하다”

전북 양계 특화작목산학연협력단장을 맡고 있는 류경선 전북대 교수와 만나기로 한 곳은 정읍 OK목장. 김광삼 목장대표를 만날 겸 현장으로 류 교수를 청했다. OK목장은 그렇지 않아도 양계 협력단이 ‘매실토종닭’에 공을 들이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김광삼 대표 인터뷰 도중에 류 교수가 도착했다. 그런데 한 무리가 농장에 들어섰다. 류 교수뿐 아니라 전북대 송희종, 김철수, 장형관, 황인호 교수 등 협력단 소속 전문위원들이 대거 출동한 것. 결국 류 교수 인터뷰는 현장 즉석토론으로 대체됐다.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으로 피해가 큰데.
= 양계 협력단 활동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업 주요대상지역인 정읍, 남원, 김제 등지의 AI 피해가 워낙 크다. 김제 용지 쪽은 거의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경제적으로 낙후한 전북지역의 AI 피해는 심각하다. 정부의 관련자금 지원만으로는 되돌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양계를 포기한 농가가 속출했다. 몇 달간 AI 확산방지, 병성감정 등 현장 활동에 주력하는 한편 극도로 위축한 닭고기 소비를 되살리기 위해 홍보활동을 벌였다.

그래도 예정한 활동은 추진해야 되지 않나.
= 물론이다. 시범농장을 정례적으로 방문해 현장 애로사항을 파악하고 해결하는 일뿐 아니라 친환경 양계산물 생산을 위한 항생제 대체제 적용 권고, 매실과 복분자 등을 이용한 고품질 브랜드 산물 생산기술 체계화, 개개 농가별 경영지도와 컨설팅은 계속 진행하고 있다. 협력단 전문위원들 보면, 몸이 둘이라도 모자랄 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여름철 ‘복 경기’를 맞이해 닭고기 소비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해결해야 할 기술이나 현안이 많지 않나.
= 가장 시급한 것은 시설 현대화다. 이번 AI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양계산업은 질병문제 해결이 관건이고 경쟁력이다. 가축질병은 국가차원에서 관리하는 게 최선의 방안이고 개별농가들은 위생환경시설을 갖춰야 한다. AI 같이 국가재난에 가까운 질병이 발생할 때마다 그 피해에 대해 일부 보전하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질병발생을 억제하고 양계산업의 근간을 지키려면 정부가 양계농가의 시설 현대화를 도와야 한다. 어찌 보면, 가래로 막을 것 호미로 막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사료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매실 등 부존자원을 이용한 사료 개발에 힘쓰는 까닭은 항생제를 없애는 동시에 사료비를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장탐방 - OK농장 김광삼 사장

“매실토종닭 전국 최고가 될 겁니다”

전북 정읍시 감곡면에 소재한 OK농장은 토종닭을 전문으로 사육하는 곳이다. 사육규모도 17만수에 달해 규모로 따지자면 전국을 통틀어서 손꼽히는 토종닭 사육농장이다.

이 농장주 김광삼 사장은 지난해 4월부터 전북대학교와 산학협력 관계를 맺고 정읍 토종닭 특화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동안 규모만 컸지 특별한 토종닭을 생산하지 못했던 것이 아쉬웠던 김 사장에게 전북대학교의 산학협력사업 제안은 ‘가뭄에 단비’를 만난 셈이 됐다.

당장 전북대학교와 손잡고 ‘매실토종닭’ 시범사육에 돌입했다. 매실의 발효과정을 거쳐 엑기스로 제조, 사료와 함께 급이 하면서 항생제 사용량부터 50% 이상 줄게 됐다. 닭에서 발생하는 갖가지 질병에 매번 항생제를 사용해 왔던 관행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출하된 닭은 맛부터 확실히 변화됐다. 매실토종닭을 맛본 소비자들들 사이에서 육질이 일반 닭과는 너무도 차이가 난다며 매실토종닭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매실토종닭의 뛰어난 맛이 입소문을 타면서 유통상인들도 몰렸다. 일반 닭보다 5~10% 웃돈을 줄 테니 제발 닭 좀 달라고 아우성이다.

김 사장은 올해 매실 120관(약 420kg)을 구매하고 엑기스 제조를 완료하고 ‘매실토종닭’ 사육규모도 늘렸다. 올해 초 AI(조류인플루엔자)로 인해 잠시 주춤했지만, 지난 7월 19일 ‘초복’을 기점으로 ‘매실토종닭’은 불티나게 판매됐다.

김 사장은 “매실토종닭은 상인들이 5% 가량 웃돈을 주고 사갈 정도로 품질과 맛을 인정받고 있어 모처럼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다”면서 “정읍시, 전북도청에서 매실토종닭 브랜드사업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만큼 내년에 전북대학교와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OK농장의 놀라운 변신은 주변 양계농가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현재 전북양계사업단에 참여하고 있는 농가수는 20농가이지만, 사업 참여를 희망하고 있는 농가수가 상당하다. 전북양계사업단이 양계농가들의 관심을 받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김 사장은 “질병이면 질병, 컨설팅이면 컨설팅 등 산학협력단을 통해 무지의 농가들이 새롭게 의욕을 다지는 계기가 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산학협력단의 인기 배경은 질병관리가 수월해졌다는데 있다. 한번 질병이 발생하면 수천마리가 떼죽음을 당하는 현실에서 질병관리는 그만큼 양계농가들이 극복해야 할 최우선 과제이다.

이런 문제점을 산학협력단이 해결해 줬다. 그동안 원인모를 갖가지 질병으로 인해 집단폐사 등 막대한 피해를 입어왔던 농가들의 ‘가슴앓이’가 사라진 것이다. 또 질병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게 돼 닭 폐사를 방지해서 좋고, 폐사가 줄어든 만큼 고스란히 농가소득이 향상되는 ‘일석이조’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됐다.

김 사장은 “마냥 닭만 키울 줄 알았던 양계농가들이 최첨단 사육법을 터득하고, 고품질의 닭고기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할 수 있게 돼 지역 양계산업이 덩달아 활기를 띄고 있다”면서 “산학협력단 예산이 확대된다면 브랜드사업은 물론 다양한 시범사육을 통해 고품질 닭고기 생산에 매진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