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의 힘’은 요란하지 않다. 저 웅심 깊은 곳에서 은근히 뻗쳐오르는 힘이 세상을 놀라게 한다. ‘강원도의 힘’은 인위적이지 않다. 자연을 닮았다. 그저 우두커니 서서 온몸 저리게 지그시 힘주는 것만으로 기력을 발산한다. 그래서 ‘강원도의 힘’은 산을 닮았다. 아니, 강원도의 힘은 산이다.
◇ 강원도 산채산업 발전가능성 커
강원도 산채 특화작목산학연협력단(단장 한상섭 강원대 교수)이 산에서 ‘강원도의 힘’을 캐내기 시작했다. 산지 비중이 80%가 넘는 강원도로서는 산나물이 이제 블루오션을 헤쳐 나갈 동력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동안 국내시장을 혼란에 빠트린 중국산 더덕은 이미 소비자의 신뢰를 잃었다. 건강기능성 먹을거리를 찾아 나선 소비자들에게 중국산이 성에 찰리 만무하다. 대신 청정 강원지역의 산나물이 소비자 눈길을 끌고 있다. 고려인삼이 그렇듯, 같은 나물이라도 우리 것의 기능성과 안전성은 중국산에 비견할 바 되지 않는다.
특히 산채시장 안팎의 흐름도 강원도 산채산업 발전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나가노, 도토리, 센다이 지방에서 고사리, 도라지, 두릅 등을 재배해왔으나 최근 재배면적이 급감하고 있다. 대개 자연산인 중국산 산채도 국내 수입량이 급격히 줄고 있다. 청정 고품질의 국내산 산채가 내수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것과 맞물렸다.
청정 강원에서 나는 더덕, 도라지, 두릅, 미나리, 취나물 등속은 말 그대로 없어서 팔지 못할 정도다. 소비자의 ‘웰빙 욕구’가 먹을거리 탐색에서 정점을 이루면서 강원지역의 산나물은 연이어 상종가를 치고 있다.
이 틈새를 산채 산학연 협력단이 놓치지 않았다. 산림과 환경을 중심에 두고 생태보전에 힘을 기울여온 강원도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산림 훼손을 극히 제한한 덕에 강원도의 관광산업, 전통문화체험이 발전하듯 요즘에는 산채산업이 새로운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 “산이 인간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
“산채는 산이 인간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 중 하나다. 산은 그 자체로 인간에게 안식과 휴양공간을 제공하고 최고의 먹을거리를 선사한다. 웰빙과 산채가 어울릴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산채 협력단을 이끌고 있는 한상섭 교수의 산과 산채에 대한 예찬은 끊임이 없다. 한 교수의 산채 예찬은 강원지역이 고산지가 많고 기온이 낮은 데다 밤낮 온도차가 크기 때문에 고품질의 기능성 산채재배 최적지라는 데서 출발한다.
2006년 기준으로 전국 2만6천여 산채농가가 7천500헥타르를 재배하고 있는데 강원지역 재배면적이 2천230헥타르로 약 20%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생산량은 자연산을 합해 연간 20만톤, 6천억원 정도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산채는 농업시장 개방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경쟁력 있는 강원도 대표 특화작목으로 주목받고 있다. 강원지역 청정 산채는 소비자들에게 ‘먹으면 약’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내수가 급증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강원도 산채재배면적은 최근 몇 년간 해마다 15%씩 늘고 있다. 농업생산액 비중으로 봐도 산채는 쌀, 무·배추, 한우, 감자 다음으로 높다.
이러한 지역여건에 대한 중앙정부의 지원과 지방자치단체의 조력도 산채산업 발전의 토대를 형성하고 있다. 양구군 ‘산채클러스터’는 중앙정부가 추진하는 신활력사업에 선정돼 2007년까지 약 180억원이 투자됐으며 11개 시군에 걸친 강원도의 ‘백두대간 산채클러스터’ 사업에 따라 2005년부터 3년간 120억원이 지원됐다.
◇ 지역·품목별 집중지도로 ‘모델’ 육성
강원 산채 협력단의 전략 1단계는 지역별, 품목별 집중 컨설팅을 통해 산채농가의 성공모델을 육성하고 이를 본보기로 강원전역에 확대·보급한다는 것. 양구, 철원, 고성, 태백, 횡성 등지 선도농가를 대상으로 집중컨설팅을 벌여 그 효과를 이웃농가들이 직접 확인케 한다는 전략이다.
철원 산지에서 두릅 81헥타르를 재배하는 김호남 농가의 성장은 눈부시다. 산채 협력단은 김 씨 농장에 두릅재배기술 현장지도를 12회 실시함으로써 뿌리썩음병을 해결하고 두릅싹에 봉지를 씌우는 기술을 적용해 품질향상, 재배기간단축 등의 효과를 얻었다. 김 씨 단독으로 추진하는 ‘두릅축제’ 지원에도 힘썼다.
양구 최관수 농가의 곰취 재배 성공스토리도 진행형이다. 협력단은 최 씨 농장에도 2년간 12회 이상 집중 컨설팅을 벌였다. 기존 곰취 재배기술은 물론 새로운 ‘한대리곰취(넘취)’ 종묘분양·재배기술 지도, 강원대 식품공학과와의 협동연구로 곰취국수와 곰취차 개발지원, 백화점이나 대형유통체인 납품계약 등 유통컨설팅, ‘양구 대암 곰취’ 같은 브랜드 개발 지원 등으로 최 씨는 5천여 평 곰취재배로 연간 2억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한상섭 교수는 “대개 산채농가들이 경험과 관행에 의존하다보니 새로운 품종이나 기술을 수용하는 데 인색한 경우가 많다, 선진농가를 중심으로 성공모델을 만들면 나머지 농가들은 ‘된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고 협력단의 컨설팅을 받아들이곤 한다”며 모델농가 육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성공모델 확산을 통해 지역별 주요산채 재배단지를 조성하고 부가가치를 높이는게 가공산업 기반조성, 청정 기능성 산채 수출 등을 추진해 궁극적으로 산채클러스터를 육성한다는 산채 협력단의 2단계 전략이다.
산채클러스터 육성 목표도 착착 진행하고 있다. 실제로 양구 곰취재배농가는 당초 5농가에서 양구군 전역의 170여 농가로 확대하면서 클러스터의 면모를 갖췄고 횡성 삽교의 ‘산채마을 법인체’ 설립, 태백 ‘고산나물 재배단지’ 육성 등도 지역별 산채클러스터가 가시권에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한 교수는 “이제 ‘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여론”이라며 산채 재배유형의 변화를 꾀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산채생산량 중 85%가 밭이나 하우스시설에서 재배되고 15%가 산지에서 나는데 맛과 향, 기능성 등에서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다. 한 교수는 강원도 산채산업이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산지재배 비율이 50% 수준에 육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령탑 인터뷰 - 한상섭 강원대 교수
산 높고 계곡 깊은 강원지역엔 말 그대로 산간오지가 많다. 특히 산채를 재배하는 곳은 기후특성상 첩첩산중에 있기 십상이다. 도청소재지 춘천에서 산채재배지를 찾아갈 때 ‘서울서 부산 갈 시간’으로도 부족한 경우가 적잖다. 강원도 산채 산학연 협력단의 고충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산채 협력단을 이끌고 있는 한상섭 강원대 교수는 강원 전역을 종횡무진하고 있다. 북쪽 철원, 인제, 양구는 물론 남쪽 내륙의 정선, 영월, 태백 등지까지. 한 교수는 사명감과 보람을 강조했다. 이 둘이 없으면 협력단 활동하기 쉽지 않다는 말도 곁들였다.
산나물을 찾는 소비자가 꽤 늘었다.
= 국민소득이 오르고 웰빙 붐이 일면서 산채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중국산 더덕 등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우리 청정 산채를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청정한 강원도에서 나는 산채는 ‘먹으면 약이 된다’는 인식도 확산하고 있다. 수요가 늘면서 공급물량이 절대부족하다. 그만큼 산채가격이 오르면서 강원지역 산채재배도 늘고 있다. 적어도 5년, 10년까지는 공급부족현상으로 산채가격이 견조한 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
특성상 현장방문이 쉽지 않을 텐데.
= 컨설팅사업은 효과가 크다. 지역특성상 기술, 유통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전문가의 현장방문이 농업인에게 보탬이 될 수밖에 없다. 산채는 사실 산간오지 아니면 재배가 어렵기 때문에 더 그렇다. 사명감, 보람이 없으면 현장지도에 부지런할 수 없다. 컨설팅 이후 소득이 많이 늘었다는 농가, 작물선택과 유통정보 덕에 성공했다는 농업인들의 ‘덕담’에서 보람을 찾는다.
산채 예찬이랄까, 좋은 점이 뭔가.
산채는 산이,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숲과 나무, 산이 휴양공간이 되고 안식처가 되기도 하지만 몸에 좋고 맛있는 먹을거리를 제공한다. 농가에도 소득원이 되니 꽤 좋은 선물이다. 문제는 사시사철 먹을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산채가공에 힘을 쏟을 생각이다. 저온저장, 장아찌 같은 식품 개발 등을 통해 제철이 지나서도 소비자들이 맛볼 수 있게 할 생각이다. 부가가치를 높이는 일이기도 하다. 현재 노지, 하우스재배가 85%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제는 ‘산으로 가는 산채’가 필요하다. ‘다시 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여론도 있고 농가도 산지재배를 선호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지역에 따라서도 산채의 맛과 향이 다르고 산 높이에 따라서도 기능성이 다르다. 그렇잖아도 농촌진흥청 지원으로 ‘산지 산채농법’ 실용화 연구를 올해부터 수행하고 있다. 재배기술과 적정품종 개발 등을 통해 강원도 산채산업의 발전을 꾀할 것이다.
현장탐방-곰취 성공신화 최관수 ‘양구산채월드’ 대표
“성공이요? 아직 도전이 끝나지 않았는데…”
곰취 5천여 평 재배로 연간 2억원 내외의 소득을 올리고 있는 강원도 양구군 동면 팔랑리의 최관수(58세) ‘양구산채월드’ 대표. 대암산 자락 시설하우스에서 만난 최 대표는 이른바 ‘성공신화’는 뒷전이고 앞으로 도전할 사업에 대해 설명하는 데 여념이 없다.
양구군 곰취재배 선구자인 최 대표는 소비자들이 취나물을 사시사철 먹을 수 있게 하고 농가 입장에서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가공산업에 손을 댔다. 산채가공에도 선구자로 나선 셈이다.
선구자는 달라도 뭔가 다르다. 현재 157개 곰취재배농가로 구성한 ‘양구 대암 산채 작목반’이 ‘양구산채월드’로 변화를 모색하면서 가공과 수출까지 타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 ‘도전’은 공동출자로 이뤄지지 않고 법인대표를 맡고 있는 최 대표의 단독투자로 시작됐다. 저온저장고, 급랭시설, 진공포장기, 건조기, 염장가공시설 등 1억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웰빙 바람을 타고 소비가 늘고 있기는 하지만 산채는 대개 봄철에 나고 소비하기 때문에 향후 급격한 수요증가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최 대표의 예측이다. 결국 연중 소비할 수 있도록 산채를 생산하거나 산채가공식품을 개발해야 안정적은 수요처를 확보할 수 있다는 말이다.
최 대표는 산채 육묘사업에도 뛰어든다. 양구지역이 산채클러스터로 도약하고 곰취 등 산채가 양구군 대표작물로 자리잡았지만 종묘장 없이 다른 지역에서 공급받고 있는 현실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토로했다.
최 대표는 육묘사업과 관련해 강원도 산채 특화작목산학연협력단의 도움을 전제로 했다. 산채 육묘기술과 전체 강원지역 종묘수요정보 등 산채 협력단의 컨설팅을 받아야 사업의 성공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산채 협력단 한상섭 교수도 최 대표의 ‘도전’에 기꺼이 힘을 보탤 것이라고 화답했다.
산채 장아찌 등 가공식품의 대미수출도 노리고 있는 최 대표에게 도전할 것은 접어두고 성공스토리를 요구하자 그때서야 그간 우여곡절을 꺼냈다.
일반적인 복합영농을 해오던 최 대표는 1992년 양구에서 처음으로 곰취재배를 시도했다. 횡성 한 농업인으로부터 종묘를 분양받아 다섯 농가가 시도했는데 재배기술도 없고 어렵게 수확해도 팔 데가 없어 고생했다. 결국 세 집은 재배를 접었고, 5년이 지나 가까스로 가락시장에 출하할 수 있었다. 경제적 손실에 곰취재배를 괜히 시도했다는 자책도 컸다고 한다.
이제는 팔랑리 50여 농가를 포함해 양구지역 157농가가 작목반에 참여하는 대규모 법인으로 성장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양구 산채클러스터가 중앙정부 신활력사업으로 선정돼 120억원의 투자지원이 이어졌다.
“무엇보다 직거래 판매가 50% 수준이나 된다는 게 자랑스럽다. 공급물량이 부족해서 그렇지 직거래 비중을 70%까지 올릴 수 있다.”
최 대표는 이와 함께 ‘생산자가 시장가격을 결정하는 시스템’에 자긍심을 가진다고 강조했다. 세계적으로 맥도날드와 신라면만 공급자가 가격을 제시하는 것으로 안다며 뿌듯해했다. 앞으로의 사업계획을 들을 때보다 이 말을 들었을 때 최 대표의 성공스토리는 끝나지 않았다,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성과 & 과제
1. 집중 컨설팅으로 성공모델 개발
강원도 산채 특화작목산학연협력단의 전략은 지역별 포스트(기둥)를 정해 집중 컨설팅을 실시함으로써 성공모형을 만들어내는 것에서 시작한다.
현장밀착형 컨설팅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품종과 기술 도입을 꺼리는 이웃농가들도 성공 케이스를 확인하고 ‘된다’는 확신 속에 이른바 ‘열린 생각’을 할 것이라는 협력단의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선구자, 선도농가를 집중 지도함으로써 기술보급과 확대라는 다음 단계 목표까지 달성할 수 있다.
2. 과유불급, 필요한 것을 지원한다
산채 협력단장인 한상섭 교수는 곤드레 재배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다른 산채의 경우 공급물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생산농가에 이점이 많은데 굳이 곤드레 재배에 연연해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다.
실제 곤드레는 수요보다 생산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느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물선택에 있어 향후 전망까지 고려한 컨설팅을 하는 까닭이다. 아울러 두릅재배에서 애로사항인 뿌리썩음병 해결 성과처럼 농가에 꼭 필요한 것부터 지원하는 협력단의 노력이 호응을 얻고 있다.
3. 산채산업 ‘블루오션’으로 자리매김
소득수준 향상과 건강에 대한 관심, 먹을거리 안전성에 대한 소비자의 높은 의식수준을 감안할 때 산채산업의 발전가능성은 크다는 평가다. 실제로 국내 산채시장은 2006년 6천억원 수준에서 해마다 큰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강원도에 대한 ‘청정 이미지’는 웰빙 붐과 보조를 맞추며 산채산업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 연중 산채를 맛볼 수 있도록 가공산업 활성에 매진할 필요가 있다. 이에 맞는 중앙정부의 지원도 끌어내야 하지만 무엇보다 강원도와 각 시군의 협력, 협력단과 산채농가의 적극적인 참여가 산채산업을 ‘블루오션’으로 안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백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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