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식습관 변화로 육류소비가 증가하는 반면 자유무역협정(FTA) 등 육류시장 개방에 따라 양돈산업을 비롯한 축산업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특히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확대,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 추진은 양돈산업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 최근에는 국제 곡물가격과 사료가격 폭등으로 양돈농가의 파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나라 양돈 사료는 97% 이상이 외국에 의존하고 있다. 최근 사료가격 급등에 따라 양돈농가 부담이 커지고 있고 앞으로도 당분간 사료비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차원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류영수 경기도 양돈 특화작목산학연협력단장(건국대 교수)은 최근 국내외 여건이 악화함에 따라 한국 양돈산업이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 사료곡물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2011년까지 옥수수를 바이오에너지, 에탄올 생산에 집중 활용할 계획이어서 앞으로 1, 2년간 사료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류 교수는 “사료곡물 품귀와 가격 폭등으로 실제 미국 양돈경영체도 상당히 어려워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생산비 상승으로 한 마리에 5달러 정도 손해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 경기 양돈산업 흥망에 이목 집중
이런 상황에서 경기도 양돈 산학연협력단의 활동이 관심을 끌고 있다. 대한민국 양돈산업의 흥망을 경기지역 양돈산업에서 점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경기도는 2007년 전국 돼지 사육두수의 20% 정도를 점유하고 있으며 상시두수 5천두 이상 기업농가가 2.4%를 차지하고 있다. 전국 290여 돈육브랜드 중 60여 개가 수도권에 집중되는 등 풍부한 양돈소비 인프라를 형성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경기지역이 양돈 인프라 면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되지만 무엇보다 경기 양돈 협력단의 종합적인 양돈산업 선진화 노력과 성공 소식이 전국 양돈농가의 이목을 끌고 있다.

위기 극복을 위한 양돈정책 마련과 시행은 정부의 몫이지만, 실질적인 기술 경쟁력은 민간이나 현장농가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경기도 양돈 협력단의 고민이 시작됐다.

류 교수는 “소비자들은 사양관리와 품질, 생산단계의 식품위생요소중점관리기준(HACCP) 도입여부, 브랜드 등 돈육의 안전성은 물론 위생과 품질까지 꼼꼼히 살피고 구매한다”며 “이런 면에서 국내 양돈산업은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고 운을 뗐다.

류 교수의 이른바 ‘양돈산업의 과제’는 만성소모성질병으로 인해 농가피해가 심각하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낙후한 질병관리기술에 따라 양돈생산성이 유럽이나 북미지역에 견줘 60% 수준에 그친다는 설명이다.
만성소모성질병이나 미세질병으로 인해 젖을 떼기 전 새끼돼지 폐사율을 견주면 생산성 차이는 확연해진다.

류 교수에 따르면 양돈 선진국의 경우 폐사율이 3% 수준인 데 반해 우리나라는 20∼50%에 이르고 있다. 연간 2회 스물 대여섯 마리를 낳았을 경우 이유단계까지 생존하는 돼지는 미국 21마리, 유럽 22마리 수준인데 우리나라는 평균 14마리 수준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게다가 최근에는 이유 이후 20주까지 폐사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과제가 대두했다. 값비싼 사료를 먹고 폐사하는 경우 농가의 생산비용 가중, 환경적인 부담이 커지는 탓이다.

◇ 생산부터 소비까지 ‘선진화’ 노력
경기 양돈 협력단은 ‘친환경 안전 돈육 생산과 농가수익 극대화 창출’을 목표로 지난해부터 사업을 벌이고 있다. 생산체계, 질병관리, 유통 합리화는 양돈선진화를 위한 3대 과제로 꼽힌다.

생산체계 부문에서는 친환경 돈육 생산을 위한 기술보급에 중점을 두고 농가현장을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이로써 생리적 다변화기, 고급육 만들기, 번식돈 관리 등 단계별 교육을 통해 불필요한 사료 손실을 줄이고 돈육등급 향상 효과까지 얻었다.

실제로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에서 22년간 양돈에 종사해온 김영수(44세) 씨는 “협력단 컨설팅을 받기 전에는 폐사율이 40 내지 50% 정도나 돼 여러 번 포기할까도 생각했는데 지금은 19마리 이상 살리고 있다”며 “돈육품질도 ‘아이포크’에 납품할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협력단은 만성소모성질병 예방과 방제 네트워크 구성을 위해 회원농가와 도축장간 피드백 사업도 전개했다. 농가별 질병양상 확인과 신속한 처방 등 일련의 과정은 산업체와 학계가 공동으로 정밀진단을 시행함으로써 가능했다는 평이다.

도축장에서 도축 도체에 대한 검사를 매월 실시해 질병의 발생양상을 분석하고 혈정검사를 실시한 뒤 그 결과를 농가별로 통보하는 피드백 시스템은 백신과 약제 비용을 10% 이상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비용뿐 아니라 약제사용 감소와 질병 감소로 안전한 축산물 생산이 가능해졌다는 게 협력단의 자랑이다.

돈육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협력단은 유통, 가공 과정에도 힘을 쏟았다. 콜드체인 시스템 적용을 위한 모니터링 실시가 그 예다. 가공공장, 유통매장, 운송용 차량에 각각 온도측정용 카드를 부착하고 살모넬라균, 대장균, 리스테리아 같은 유해세균 검사를 2회 실시해 결과를 통보함으로써 안전성 확보에 만전을 기한 것.

특히 이 사업은 협력단 ‘정성’에 경기도가 지원으로 화답함으로써 이뤄졌다. 첨단 모니터링 시스템 적용은 위생과 안전성 면에서 소비자 신뢰를 확보케 함으로써 큰 효과를 발휘했다. 지난해 9월부터 경기도내 70개 학교에 돈육을 공급하는 우수축산물 학교급식지원사업으로 선정된 것이다.

경기 양돈 협력단 전문위원들은 ‘아이포크’ 브랜드 포장용기와 포장지 개발, 사료에 항생제를 넣지 않고 질병관리에 ‘봉침’을 활용하는 무항생제 프리미엄급 돈육 생산 등을 목표로 활동에 전념하고 있어 올해 안에 가시적인 결과가 도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령탑 인터뷰 - 류영수 건국대 교수

양돈위기 넘어 발전모델 제시할 터

2012년 제22차 세계수의사대회 한국개최 유치를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 다녀온 류영수 건국대 교수. 2005년부터 경기도 양돈 특화작목산학연협력단을 이끌고 있는 류 교수는 국내 양돈뿐 아니라 전 세계 양돈산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 부시 행정부와 남미 국가 등이 옥수수 같은 사료곡물을 에너지 생산에 사용하는 정책을 펴면서 곡물과 사료 가격이 폭등하고 축산농가의 경영부담이 가중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에서 10여년 연구하는 등 이른바 수의학계의 국제통으로 알려진 류 교수는 미국 양돈농가들도 최근 돼지 생산비가 시장가격을 웃돌면서 손해를 보고 있다고 전했다. 하물며 수입사료에 의존하고 있는 국내 양돈농가들이야…. 류 교수는 기술경쟁력 확보와 함께 정부, 지방자치단체의 관심과 지원이 뒷받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돈산업 국내외 여건이 좋지 않은데.
= 우리나라 양돈 사료는 97% 이상 외국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이 옥수수 같은 사료곡물을 바이오에너지, 에탄올 생산에 사용하면서 실제 미국 양돈도 상당히 어렵다. 1마리에 5불 손해 본다는 소식이다. 부시 행정부가 2011년까지 에탄올 생산에 집중한다는 계획이어서 앞으로 1, 2년간 사료가격이 이슈가 될 것이다. 정부도, 지자체도 사료문제에 신경 써야 한다.

만성소모성질병 해결에 큰 성과 있다는데.
= 자돈 폐사율이 3% 정도 돼야 정상이다. 우리는 평균 40%, 많게는 50%까지 폐사한다. 이제는 이유단계까지는 의미가 없고 젖을 뗀 후 20주까지의 폐사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비싼 사료를 먹고 죽는다면 비용이나 환경적인 부담이 너무 크다. 이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 최근 협력단은 관련 백신 국산화로 평균 40% 폐사율을 7%까지 줄이는 획기적인 성과를 거뒀다. 문제는 백신이 부족한 점이다. 지원이 시급한 대목이다.

양돈 협력단의 앞으로 계획과 포부는?
= 사료비 문제, 질병 문제 해결에 그치지 않고 이제 먹는 문제까지 해결할 것이다. 생산부터 소비까지 전 단계에 손을 대고 있다는 얘기다. 해섭(HACCP) 기준을 농가부터 적용해 도축, 가공, 유통, 소비단계까지 위생안전, 품질유지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아이포크’ 가공공장 설립과 탑차 내부온도까지 체크하는 첨단 모니터링 시스템으로 완벽한 관리가 실현되고 있다. 위기의 양돈산업을 살려내는 데 집중하고 더 나아가 농가수익 발전모델을 창출하도록 노력하겠다.

류 교수는 몇 가지 아쉬움을 토로했다.
만성소모성질병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답(백신)이 있는데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백신보급이 바로 생산성 향상에 직결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이 독점하던 백신이 국내에서 개발됐는데 수의과학검역원의 인증이 늦어지는 현실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정부 양돈정책이 중규모 이상, 대규모 업체에 편중된 점도 지적했다. 중소농가의 정책소외는 형평성 문제뿐 아니라 국가 전체적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낙후한 농가의 질병문제를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에 비유했다. 이런 면에서 정부와 지자체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꼭 필요하다는 지론이다.

산학연협력단 사업에 대한 고충도 털어놨다. 협력단에 참여하는 대학교수들이 학내 승진이나 인센티브 측면에서 불이익을 받는다는 점이다. 류 교수는 “사회가 내게 도움을 줬고 이를 다시 사회에 환원한다는 생각”이라면서도 “대학당국이 논문, 특히 SCI급 논문 발표를 인정하고 농가 등 현장 활동은 외면하기 때문에 산학협력이 활성화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명감이 없다면 협력단 활동이 쉽지 않다는 역설이다.


현장탐방 - 소규모지만 당당한 선진양돈농가 김영수 대표


“양돈 포기 생각…협력단이 일으켜 세워”


“양돈 사업단 교수님들이 오기 전에는 새끼돼지 열 마리 중에 네댓 마리가 폐사하곤 했다. 지금은 연간 스물 대여섯 마리 중 열아홉까지는 살리고 있다.”
용인 원삼에서 22년간 양돈에 종사해온 김영수(44세) 대표는 양돈 산학연협력단의 컨설팅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면서 자신의 무력했던 과거를 털어놨다.

군 제대 후 곧바로 양돈에 뛰어들었는데 근래 4, 5년 전까지도 “돈사 절반이 비어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는 것. 기술이 낙후하다보니 죽어나가는 돼지는 많고, 갖은 방법을 다 써봤지만 통로에는 폐사한 새끼돼지가 즐비해 양돈을 포기할까 여러 번 고심했다고 토로했다.

김 대표는 “협력단 전문위원들이 정말 ‘내 농장’이라고 할 정도로 관심과 정성을 쏟고 기술적으로도 지속적인 도움을 줬다”며 “덕분에 이제는 사람 생각대로가 아닌, 돼지 눈높이에 맞춰 일을 하고 있다”고 미소를 띠었다.
김 대표의 ‘장족의 발전’은 다른 지역 양돈농가들의 출하두수나 폐사율에 견주면 확연해진다. “이웃들 사정을 들으면 자신의 변화를 절실히 느낀다”며 1주일에 45마리, 월간 180마리를 ‘아이포크’에 납품한다고 말했다. 어미돼지 100마리 규모의 다른 농가와 비교해도 꽤 많은 출하두수라는 설명이다.

돈육 품질도 프리미엄급 ‘아이포크’ 납품으로 증명된다. 아이포크 브랜드를 단 돈육은 일반 돈육과 비교해 칼로리와 콜레스테롤은 낮고 두뇌발달에 좋은 DHA성분을 높인 게 특징. 소비자의 주요 구매기준인 된 안전성 면에서도, 항생제나 일반 사료첨가제를 사용하지 않는 데다 질병관리에 ‘봉침’을 이용하기 때문에 청정돼지, 건강돼지로 정평이 났다. 상대가격이 높은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김 대표는 “지난 봄철 환절기 때 일교차가 극심하고 황사바람도 심했는데 아주 잘 자라고 있다”며 사양관리에 자신감을 내비치면서 최근 사료가격 폭등에 따른 경영압박을 토로했다. 자신은 선진기술로 무장해 위기를 넘기고는 있지만 지난해부터 이어진 이웃 양돈농가들의 줄도산 소식에 마음이 편치 않다. ‘뭇매에 장사 없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다.

“사료 값이 올라 생산단가가 1킬로그램에 3천600원 정도하는데 더 오르고 있어 걱정이다. 1억, 2억 빚진 농가 많고 부도농가도 많다. 지난해 돈가가 2천원까지 폭락하면서 돼지가 부족해지고 5월 수요가 많아서 근래까지는 5천원까지 올라 괜찮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김 대표는 여름철 수요가 줄면서 돈가가 하락하면 다시 생산비 밑으로 시세가 형성되지나 않을까 걱정했다. 생산성을 높이고 품질경쟁력을 갖춰 수익성을 유지해야 하는 까닭이다.

김 대표 농장에 컨설팅을 나온 김춘수 KCS사료연구소장도 대안찾기에 부심하는 눈치다. 2005년부터 양돈 협력단 전문기술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 소장은 현장밀착 컨설팅으로 농가들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고 있다.
김 소장은 “중소규모 농가가 없으면 우리농업도 없다고 본다. 이들의 경쟁력 향상이 양돈산업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며 대규모 양돈업체 중심의 정책지원을 우회 비판했다.

김 소장은 “이곳도 처음에는 ‘엉망’이었지만 이제는 현대시설의 어느 대규모농가보다도 기술력에서 앞서고 생산성이나 수익률도 낫다”고 평하는 한편 “이런 농가가 살아나야 양돈산업이 살고 한국농업이 살아날 것”이라며 중소규모 농가에 대한 정책적 지원과 배려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성과 & 과제

1. 최대 난적, 만성소모성질병 없애라

축산의 최대 적은 질병. 특히 양돈 사양관리는 사실상 질병과의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출하까지의 전 단계에 걸쳐 새끼돼지 폐사율이 30, 40%에 육박하는 한국양돈산업의 현실은 질병관리의 중요성을 부각한다. 양돈 협력단은 핵심을 짚어내고 집중 컨설팅에 임했다. 폐사율을 한 자리 숫자까지 끌어내리는 성과를 올리며 농가의 생산성 향상에 기여했다. 이제는 백신과 질병관리기술의 신속한 보급·확대로 만성소모성질병을 발붙이지 못하게 하고 미세질병까지 해결하겠다는 다부진 각오다.

2. 소비자는 모든 단계 위생안전 요구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가 국내 최대이슈가 된 것은 정부가 ‘광우병’ 발병문제에 눈감았다는 사실 보다는 국민의 먹을거리 안전성에 대해 둔감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먹을거리 안전성은 건강과 생명에 직결되는 문제다.

협력단의 전 단계 HACCP 적용은 소비자 신뢰를 얻고 브랜드가치를 높이는 매개라고 할 수 있다. 생산단계는 물론 도축위생, 가공까지 위해요소를 중점관리하고 심지어 돼지운송 탑차의 내부온도까지 세밀히 체크하는 시스템은 구매력을 당기는 대목이다.

3. 지역 자생력, 중소농 자생력이 관건

지역농업이 살아야 한국농업이 산다, 중소농가가 있어야 한국농업이 있다는 주장에 귀 기울여야 한다. 정부는 시장개방을 전제한 경쟁력을 강조하면서 농정의 방향을 ‘선택과 집중’으로 몰아갔다.
그러나 지역농업, 중소농가가 무너지면 선택에 따른 집중투자는 헛일이 되고 오히려 지원농가의 빚으로 남는다.

양돈의 현실은 더 편향적이다. 정부의 큰 규모 지원에도, 중소기업에 견줄만한 양돈농가들 도산이 잇따랐다. 반면 기술력을 축적한 소규모농가의 기염은 눈부시다. 여기에 정책적 지원,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더해지도록 협력단과 당국이 보조를 맞추는 게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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