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 결혼식으로 대구에 다녀왔다. 남편과 아이들은 집에 두고 혼자 결혼식만 참석하고 곧바로 수원 집으로 돌아올 생각으로 대구에 있는 시댁과 친정에는 따로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어머님이 버스터미널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남편으로부터 소식을 들으신 게다. 어머님은 당신 아들이 좋아하는 가죽나물 무침과 부각을 해오셨다.

손수 음식을 장만해 일부러 전해주러 오셨다 금방 되돌아가시는 어머님 뒷모습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아들을 끔찍이 위하는 당신의 한없는 사랑이란….

결혼생활 14년간 남편은 해마다 봄이면 가죽나물과 가죽장떡에 대해 이야기하며 옛 시절을 추억했다. 내 기억으로도 어릴 적 나무 새순이 파릇이 올라올 때쯤 밥상에 가죽장떡이 푸짐하게 오르곤 했다.

지금도 밀가루에 된장이나 고추장을 풀고 연한 가죽나물 잎과 송송 다진 고추를 넣어 부친 가죽장떡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시곤 한다. 입안에 퍼지는 된장, 고추장 맛이며 달큼하면서 쌉싸래한 가죽나물 맛이 어울러 그야말로 자꾸만 손이 가는 음식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고추장과 된장을 적당히 넣고 들기름을 쳐서 무친 나물은 가히 일품이다.
또 살짝 데쳐 밀가루를 푼 물에 적셔 커다랗게 부친 가죽전, 고추장에 적셔 말린 가죽, 고추장 독안에 푹 담가두었다 꺼내 참기름과 통깨를 솔솔 뿌려낸 가죽장아찌 등 가죽나물은 봄내 밥상의 주인공이었다. 손님이 오면 가죽나물을 뜯어 찹쌀풀에 고춧가루와 소금을 넣어 부각을 만들어 안주로 내놓기도 했다.

가죽나물은 참죽나무의 새순을 이른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가죽나무, 가중나무라 부르지만 대개 참죽나무라 부른다. 스님(중)이 나물로 먹는다고 해 간혹 참중나무가 되기도 한다.
참죽나무는 고려말엽 중국에서 들어온 귀화식물이다. 주로 한반도 중부 이남과 해안에 분포해 자란다. 서해 백령도부터 동해 설악산 입구까지 단목으로 자생한다.

나무는 20미터까지 크는데 줄기는 곧고 가지 수가 적은 것이 특징이다. 6월에 종 모양의 흰 꽃이 피고 9월, 10월에 다갈색 열매를 맺는다.

가죽나물은 새순을 이용하다보니 봄철음식으로 제격이다. 최근에는 무공해 식품으로 각광받으면서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무기질, 탄수화물, 비타민 등 영양분도 골고루 들어있다.

여느 나물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저장하면서 먹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봄에 나는 새순 중에 가장 맛있는 것이 옻나무 순이고 그 다음이 가죽나무 순이라고 할 만큼 그 맛은 정평이 났다.

가죽을 이용한 음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가죽을 데친 뒤 무친 것을 가죽나물이라고 해 예전에는 연엽체, 춘엽체라 부르며 봄철 으뜸음식으로 손꼽혔다.

가죽의 연한 새순을 따서 날로 생무침도 하고 가죽전이나 가죽쌈, 가죽자반, 가죽부각을 만들기도 한다. 장아찌로 담아 밑반찬으로 먹거나 건체로 먹기도 했는데 특히 절에서 스님들이 즐겨먹는 고급식품으로 알려졌다.

수확시기에 따라 용도를 달리하기도 한다. 5월 10일경까지는 가죽의 첫 순을 날것으로 된장에 찍어 먹거나 돼지고기 구워먹을 때 곁들이면 좋다. 5월 중순이후 둘째 순은 된장이나 고추장으로 버무린 뒤 장아찌를 담그고 5월 하순이후 셋째 순부터는 주로 튀김이나 김장용으로 쓴다. 장아찌나 김장은 사계절 내내 가죽순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음식이다.

가죽장떡이라는 ‘뜻밖의 선물’에 어릴 적 아련한 추억에 흠뻑 빠졌다. 말로는 가죽나물을 예찬하면서도 정작 음식을 해먹을 겨를이 없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한 듯하다. 게으른 탓이다. 부모님의 내리사랑은 부지런함에서 비롯하는 것일 텐데…. 내년 봄에는 어른들이 우리 세대에게 정성을 쏟듯, 가죽장떡을 직접 만들어 아이들과 도란도란 옛이야기를 나누며 고향의 참맛을 음미해볼 생각이다.

최정숙 박사 (농촌진흥청 농산물가공이용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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