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칼럼 연재를 시작하며--
[3인 3색, 먹을거리 이야기]코너는 농촌진흥청에서 농산물가공 연구에 매진해 온 3인의 여성전문가가 식품과 영양학적 측면, 전통음식과 농촌문화, 식품산업 동향과 외국사례 등 다양한 부문과 분야에 걸쳐 흥미롭고 유익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비롯했다. 농촌진흥청 연구개발과 김행란 박사, 농촌자원개발연구소 농산물가공이용과 최정숙 박사와 김양숙 박사가 각각 다른 색깔로 맛깔스런 이야기를 펼칠 것으로 기대한다.(편집자의 말)

강릉지역 단오는 남녀노소가 기다리는 큰 명절로 자리잡고 있다. 이날만큼은 농사와 가사를 접어두고 다양한 놀이와 명절음식을 즐겼다. 최근에는 명절문화의 하나인 ‘강릉단오제’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축제로 손꼽히고 있으며 국제적으로도 유네스코가 선정하는 ‘인류구전과 무형유산 걸작’으로 인정받았다.

농경사회인 우리나라는 절기에 따라 명절을 정하고 그 시기에 많이 나는 산물을 이용해 시식(時食)을 만들어 먹고 놀이를 즐겼다. 요즈음은 파종하고 모낸 후 약간의 휴식이 준비되는 시점으로 단오절이 있다. 단오는 수릿날(水瀨日), 천중절(天中節), 중오절(重五節), 단양(端陽)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예로부터 3월3일, 5월5일, 6월6일, 7월7일, 9월9일 등 월일이 겹치는 날은 양기(陽氣)기 가득한 길일로 쳐왔는데 그 중에서도 음력 5월5일은 양기가 가장 센 날이라고 해서 으뜸명절로 꼽혔다.

단오는 장마가 시작되는 양력 6월에 해당하므로 습기가 많아 나쁜 병이 창궐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여러 액(厄)을 피하기 위한 풍속이 지역마다 다양했다. 음식을 장만해 창포가 무성한 연못가나 물가에 나가 물놀이를 하며 액땜을 하고, 잡귀가 침범하지 못하도록 탈놀이를 했다고 전해진다.

단오의 절식(節食)으로는 수리취떡, 쑥떡, 증편, 제호탕, 앵두화채, 준치국 준치만두, 붕어찜 등이 있다. 이들 음식에는 자연과의 조화로움, 몸과 마음의 건강을 동시에 생각한 선조의 액땜 지혜가 담겨있다.

수리취떡은 수리취 잎을 넣어 만든 떡으로, 모양이 수레바퀴와 같다고 해 차륜병(車輪餠)이라고도 한다. 수리취는 국화과에 속하는 다년생 풀로 뒷면에 부드러운 흰털이 나 있다. 이 잎을 데쳐서 멥쌀가루에 섞어 동그란 모양의 절편으로 만든 떡이 수리취떡이다.

일명 ‘술떡’으로 알려진 증편 역시 날씨가 슬슬 더워지기 시작하는 단오에 먹는 떡이다. 막걸리를 발효해 만든 증편은 상온에 이틀을 둬도 굳거나 쉬지 않는다. 증편을 찔 때 맨드라미나 석이버섯, 대추, 흑임자, 잣 등을 올리면 한결 먹음직스럽다.

제호탕은 여름철에 갈증을 풀어주고 위를 튼튼하게 하며 장 기능을 조절해 설사를 그치게 하는 등의 효과가 있는 전통건강음료. 『동의보감』을 보면 ‘오매육(烏梅肉), 백단향(白檀香), 사인(砂仁), 초과(草果) 등을 물을 붓고 졸인 것으로 꿀을 넣고 다시 달여 찬물에 타서 마신다. 단오에 내의원에서 만들어 임금께 진상했으며, 여름철 보양음료로 귀하게 여겼다’고 기록돼 있다. 또한 제호탕은 임금이 70세 이상의 원로들로 구성된 기로소에 내리는 건강음료의 일종으로, 백자 항아리에 정갈하게 담겨 하사했다고 한다.

단오의 제철 과실로 앵두, 오디, 산딸기가 있는데 이들은 예전에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친근한 것들이었다. 특히 집안의 소박한 정원에는 대개 앵두나무 한두 그루가 있고 빨갛게 익은 앵두는 아이들에게 최고의 간식거리였다. 앵두는 위를 보호하고 피를 맑게 하는 효능이 있어 단오 무렵 더위로 허덕일 때 입맛을 돋구는 데 쓰인다. 앵두로 화채나 편을 만들어 먹었는데, 앵두편은 앵두를 살짝 찐 뒤 굵은 체에 걸러 살만 발라낸 다음 설탕을 넣고 졸이다가 녹말을 첨가해 굳히면 된다.

단오 즈음에 많이 잡히는 생선인 준치를 이용해 국과 만두를 만들어 먹었는데, 단오가 지나면 준치 맛이 덜하다고 전해진다. 준치는 가시 때문에 인기가 없는 생선이지만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맛있는 생선이다. 영양학적으로도 단백질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칼슘과 인, 철분, 비타민 등을 함유하고 있어 초여름 보양식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준치국은 생선을 싫어하는 아이들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어 단오에 꼭 준치국을 먹였다고 한다.

애석하게도 이러한 단오음식과 같은 절기음식이 점차 사라지는 실정이다. 지난 2000년 농촌자원개발연구소가 도시, 농촌 주부 31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단오에는 8종의 세시음식이 이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리취떡, 준치국, 앵두화채, 도미찜, 쑥떡, 주악, 증편, 수단 등이다. 쑥떡은 16% 정도가 해먹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나머지 음식은 1∼5% 수준에 그쳤다.

우리 조상이 물려준 명절과 절기음식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자연에 순응하는 삶의 방식에서 생겨난 산물이다. 과거에 비해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사회에서 우리는 과연 건강한 식생활을 하고 있는지, 높은 삶의 질을 살고 있는지 반문해본다. 올해 단오 즈음에는 절기음식 한 가지라도 만들어보고 조상의 지혜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김행란 박사(농촌진흥청 연구개발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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