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도 아닌 것이 귤도 아닌 것이, 이게 뭘까? 90년대 중후반 한라봉을 처음 대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다. 그런데 먹어보니 당도가 장난이 아니다. 즙이 풍부하고 새콤 달콤 우리나라에도 이런 귤이 있었나라고 할 만큼 맛이 있었다. 가격도 비싸고 물량도 적어 귀한 선물용으로 팔리던 시절이 있었다. 2002년도에는 최고 10만원을 호가할 정도로 한라봉의 전성기였다.



위기의 한라봉

그러나 지난해 조기출하로 인한 당도하락으로 소비자들의 호감이 급속도로 한라봉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한라봉 10kg 한상자에 2만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조생감귤의 상품이 4만원 대인 것을 감안한다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올해의 경우도 낙관할 수 없다. 지난해 12월 가온하우스에서 출하되는 한라봉이 kg당 5,000원~7,000원 수준. 출하초기인 점을 감안한다면 결코 좋은 가격이라고 할 수 없다.

한라봉을 직접 재배하는 한 농가는 앞으로 성출하기에 접어드는 내년 2~3월이면 가격은 더 떨어져 1kg에 2,000원 선까지 내려갈 것이라는 예측까지 하고 있다. 한라봉의 위기다.
한라봉이 이처럼 가격이 하락한데에는 조기출하의 영향도 크지만 최근 3년만에 면적이 급격히 늘어나 생산량이 많았다는 것도 주요 원인이다.

2002년 621ha였던 제주지역 한라봉 재배면적이 2006년 1,104ha로 두배 가까이 늘어났다. 여기에다 최근 경남 거제, 전남 고흥과 나주 등지에서 한라봉이 출시되면서 절대적이었던 제주 한라봉의 위치까지 흔들릴 지경이 되었다.

위기탈출의 대안, 한라봉연구회의 기술 정복기

제주특별자치도에서 한라봉 재배기술이 가장 뛰어나다는 농업인들이 모인 한라봉연구회(회장 양진홍)도 한라봉 위기 탈출을 위한 비상상태에 돌입했다.
양진홍 회장은 “그동안 호황을 누려왔던 한라봉이 드디어 위기를 맞았다”면서 “그동안 한라봉이란 이름만으로도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안일하게 한라봉 생산에 임한 결과”라고 했다.

양진홍 회장은 “특히 지난해 품질높이는데 보다는 빨리 출하해 남보다 높은 가격을 받고 싶은 조바심에 일부 농가가 조기출하 하는 통에 그동안 애써 쌓아 올렸던 한라봉에 대한 신뢰가 한꺼번에 무너졌다”면서 “이번 사태로 한라봉 생산에 있어서 기술과 노력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양진홍 회장에 따르면 한라봉은 ‘어른에게 문안인사 하 듯 세밀한 관심을 기울일 자신이 없는 사람은 한라봉 농사를 짓지 말라’는 말이 있다면서 과수농사중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한라봉이라고 했다. 또한 제주지역의 한라봉은 거의 100%가 시설가온재배를 하기 때문에 일반 노지감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생산비가 많이 든다는 점도 지적했다.

웬만한 기술능력이나 각오없이는 재배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 바로 한라봉이라는 것이다.
양진홍 회장은 “지금이야말로 한라봉 재배기술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기술수준향상에 전력해야 할 때”라고 했다.

한라봉은 16℃ 이상이어야 재배가 가능하고 수확까지의 기간이 300일로 대단히 길다. 한겨울에 수확하는 것을 감안한다면 난방비와 인건비 등 그만큼 생산비가 많이 든다는 얘기다.
한라봉은 또한 전지전정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해마다 수세에 따라 전지전정을 달리해야 한다.

지난해 과다착과로 수세가 약해진 나무는 이듬해 봄순이 짧게 나오고 많이 발생한다. 새가지가 가늘고 잎도 작게 된다. 착화는 많으나 대부분 생리낙과해 버리고 새가지 발생도 적어 격년결과 현상을 일으키기 쉽게 된다.
따라서 한라봉의 전지전정은 바둑의 고수가 몇 십수 몇 백수를 내다 보듯 몇 년에 걸친 나무의 관리 계획이 서 있어야 가능하다.

한라봉은 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 과수다. 보통 물이 많으면 당도가 떨어진다고 하지만 한라봉은 고당도를 유지한다.
과즙내 당도와 관수의 시기를 보면 7월~10월까지의 관수는 당도를 높이는 작용을 하는 반면 10월 상순부터는 서서히 관수량을 줄여주는 것이 당도를 높이는 방법이다. 이 기간을 뺀다면 한라봉에 있어서 건조는 산도를 높이는 원인이므로 금물이다.

그래서 수분확보가 어려운 노지에서는 아예 재배할 생각을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라봉은 성숙기에 접어들면 나무가 흡수하는 양분을 거의 ‘수탈’하는 수준으로 열매가 빼앗아 간다. 따라서 성숙기의 양분관리는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하다. 15일 일찍 수확하면 맛이 없고 15일 늦게 따면 맛은 좋지만 다음해 결과되지 않는다.

따라서 수확기를 정확히 판단하고 그 전에 양분관리를 철저히 하면서 적정시기에 수확해야 품질좋은 과일을 얻으면서도 다음해 결과에 큰 영향을 주지 않게 된다.
지난해 조기출하 한 한라봉의 맛이 없었던 것도 다 이 때문이다.

한라봉 재배경력이 14년인 양진홍 회장은 “한라봉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2~3년은 진짜 열심히 배우지만 4년째 접어들면서 좀 안다는 자만감으로 수체관리에 게을러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러나 “5~년이 지나면 다시 돌아와 물어보게 되는게 한라봉 농사”라고 했다.

초기에는 양진홍 회장도 현재 제주한라봉연합회장을 하고 있는 고성종 전회장과 함께 농업기술센터의 문이 닳도록 들락거렸다.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다.

현재 원예실증과 이중석 과장이 당시 한라봉 재배에 대한 일본의 서적을 번역하고 이를 토대로 한라봉 재배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양진홍 회장과 고성종 전회장은 이중석 과장과 거의 살다시피 할 정도로 기술습득에 열정적이었다.

한라봉의 본고장인 일본도 자주 다녀왔다. 하나라도 더 보고 배우기 위해 일각의 시간도 아꼈다. 이렇게 익힌 기술이 이제는 한라봉연구회원들에게 자문을 해 줄 정도가 되었다.

그렇다고 기술습득에 대한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일본 한라봉 주산지를 다녀 오곤 한다.
이제는 일본 농가들이 경계하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어깨너머 나무의 모양이라도 보고 온다. 나무를 보면 올해는 어떻게 나무를 관리했는지 감이 오기 때문이다. 양진홍 회장은 아직까지도 기술습득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연구회, 행정기관, 출하처 3자가 참여하는 품질관리마케팅협의회

재배다음으로 연구회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수확후 품질관리다.
지난해 한라봉 가격이 폭락에 이어 올해도 좋은 출발을 보여주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는 것은 수확후 선별 등 품질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연구회의 고성종 전회장이 회장을 맡고 있는 제주도한라봉연합회는 한동안 최고의 과일로 각광 받던 한라봉이 최근 생산면적 급증과 맛없는 한라봉의 무분별한 출하 등으로 가격이 폭락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크기 200g 이상, 당도 12°Bx 이상, 산도 1.1% 미만의 기준을 퉁과한 한라봉을 우선 출하하는 체계를 확립했다.

또한 소비자들의 가장 큰 불만은 산도가 높다는 것으로 수확 후 일정기간 저장한 후 출하하는 등의 기준을 마련했다.

연구회도 이 기준에 맞춰 250명의 회원이 생산하는 한라봉에 대해 엄격하게 적용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연구회와 행정기관, 출하처 등 3자가 참여하는 품질관리 및 마케팅 협의체를 구성할 계획이다.

행정기관에서는 품질관리감독을 담당하고 출하처는 마케팅을, 연구회는 고품질의 한라봉을 생산하는 체제다. 앞으로 이 협의체가 연구회의 고유 브랜드를 개발하고 재배 표준화와 유통시스템 개선 등의 활동도 겸할 예정이다.
현재 연구회원들의 한라봉은 주로 농협공판장 등 도매시장으로 출하된다. 그러나 수집상과의 마찰도 적지 않아 점차적으로 할인마트나 물류시장, 통신판매를 통한 직거래 등 판매처를 다변화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연구회는 법인설립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 남제주군과 서귀포시로 나눠져 있을 때 남제주군의 한라봉 회원들만으로 법인 설립준비를 마친 상태였는데 두 시군이 통합되면서 서귀포시의 한라봉 농가까지 아우러는 작업을 다시 시작하고 있다.

“한미 FTA 협상에서 감귤이 예외품목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국내적으로는 신뢰를 잃을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고 대외적으로는 개방품목에 포함되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기술 차별화를 통한 고품질 재배와 유통 인프라 구축이 최선입니다” 양진홍 회장과 한라봉연구회는 지금 한라봉 위기상황의 정중앙에 서 있다.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느냐 아니면 주저앉느냐의 기로에 서 있는 한라봉연구회다.


성공 Point


재배 어렵지만 가격 높은 한라봉
최근 가격하락세가 뚜렷하지만 과거 10년 동안 가장 돈되는 품목이 한라봉이었다. 그래서 일부 한라봉 재배농가가 무사안일 했던 것이 지금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연구회원들은 기술의 중요성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양진홍 회장의 지휘아래 차근차근 기술을 축적해 왔다. 위기지만 기회일 수 있는 이유다.

차별화된 기술력
한라봉에 있어서 기술력은 곧 품질이다. 어려운 기술인만큼 더 악착같이 배웠다. 연구회원들은 아직까지도 한라봉 재배기술에 목 마르다. 이처럼 연구하는 자세가 연구회의 경쟁력을 낳았고 그것이 소비자의 신뢰로 이어졌다.

든든한 조력자 남부농업기술센터
일본은 농림수산성과수시험장이 한라봉 기술의 메카이고 구마모토현이 주산지다. 한국은 남부농업기술센터가 기술의 메카이고 서귀포시가 주산지다. 궁합이 맞는다. 연구회는 남부기술센터를 통해 기술을 익히고 센터는 연구회를 통해 기술개발을 한다. 이러한 공합으로 인해 한국에서의 한라봉 재배가 성공할 수 있었다.


담당 지도관에게 듣는다 - 남부농업기술센터 양 재 현 담당

지금이 바로 기술 및 마케팅 지원 강화할 때

지난 90년대 중반 제주에서 본격적으로 한라봉을 도입해 재배가 시작되던 때 센터의 이중석 과장과 한라봉 재배기술 보급을 위해 뛰었던 양재현 담당은 요즈음 시름이 깊다. 한라봉의 가격하락세가 쉽게 멈출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정예의 한라봉 재배농업인이 모인 한라봉연구회지만 국내외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이 만만치가 않다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양재현 담당은 “어려운 시기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면서 “그 기본은 바로 차별화된 기술로 최고의 품질을 생산해 내는 것”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 진행해 오고 있는 연구회 교육과 선진지 견학 등을 더욱 강화하고 연구회원들이 기술향상에 필요한 지원을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그와 동시 판매망 확보와 마케팅에 대한 지원도 강화할 계획인데 제주 감귤축제 등 각종 행사를 통한 홍보판촉과 연구회 브랜드 개발 지원 등에 더욱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아울러 센터내에 설치된 감귤판매전시관을 통한 대소비자 홍보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센터에 조성되어 있는 농업생태원에 견학 온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라봉 및 감귤의 좋은 점과 재배과정, 그리고 감귤을 이용한 각종 가공품을 적극적으로 알려 소비자 신뢰를 쌓아갈 예정이다.

현재 양재현 담당은 센터내에 조성된 농업생태원과 감귤판매전시관을 관리하면서 관람객에겐 가이드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 농업생태관은 약 3만평의 부지에 제주농업체험관, 감귤나무 산책길, 감귤따기 체험농장, 감귤품종전시장, 녹차원, 제다교육장, 잔디썰매장, 미로원 등을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를 제공하면서 제주의 농업을 이해할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

시민, 관광객 특히 어린이 등에게는 이미 제주지역의 관광명소로 유명해져 있다. 덕분에 바빠진 것은 양재현 담당과 같은 계에서 근무하는 이봉실 지도사지만 시민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마냥 행복하다고 한다.
양재현 담당은 ‘위기 뒤에 반드시 기회가 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믿는다고 했다. 당당하고 자신감에 차 있다. 위기극복 전략이 이미 서 있다는 표정이다.
저작권자 © 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