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말이 있었다. 서울 토박이가 부산 지인에게 “부산에도 논이 있나?” 했다는 얘기.
그러나 부산에도 논이 있다. 그것도 아주 기름지고 광대한 면적의 논이 존재한다. 그리고 최고 수준의 친환경쌀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그곳은 명지. 낙동강하구 삼각주평야의 최남단. 삼각주 특유의 비옥한 토질로 인해 대파주산지로 이름이 높다.

부산친환경도래지쌀연구회는 2002년 명지지역 쌀재배 농가 39명이 모여 결성되었다. 연구회 이름을 도래지라고 지은 것은 철새도래지인 을숙도와 가까운 위치에 명지동이 있기 때문인데 연구회에서 생산되는 쌀의 브랜드도 ‘도래지쌀’이다. ‘도래지쌀’은 그 품질에 반한 고정고객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친환경 매뉴얼 충실히 이행, 연구회 전체가 친환경 인증 받아

도래지쌀연구회의 가장 큰 장점은 친환경재배관리와 고품질 상품관리다.
먼저 친환경재배관리 측면이다.
“소비자들의 ‘부산이라는 대도시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친환경과는 이미지가 맞지 않다’라는 선입견을 없애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합심해서 친환경 쌀을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평가는 소비자 몫이니까요” 연구회 주황용 회장은 누가 뭐라 해도 소비자 앞에 떳떳한 생산자가 되는 것이 대도시 쌀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연구회는 이를 위해 부산시농업기술센터의 기술지도로 엄격한 친환경 쌀 재배매뉴얼을 도입했다.
첫째, 화학비료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밀토양검정이다.
부산시농업기술센터에 의뢰해 정기적으로 정밀토양검정을 실시한다. 검정 결과 나온 시비처방서에 따라 각 논에 투입해야 할 비종과 시비량을 정한다. 화학비료의 투입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물론 토심 확보를 위한 기비는 퇴비 등 유기질비료로 충분히 투여한다. 또한 효과가 검증된 친환경 비료와 토양개량재를 사용해 토양 개선효과를 더욱 높였다.

연구회의 기술지도를 전담하고 있는 동부지소 최재구 지도사에 따르면 화학비료 절감방법으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자운영 및 쌀겨농법이라고 했다.
최지도사는 “자운영은 공기 중의 질소를 뿌리혹에 고정하는 녹비작물로 비료 절감 효과뿐 아니라 토질 개선, 침식 방지, 밀원 등 무궁무진한 가치를 지녔다”면서 “자운영 재배에 따른 질소와 유기질 비료 절감 효과는 ha당 연 130만원에 이를 것이라고 생각된다”고 했다.

자운영을 심은 논을 5월 초 정도에 갈아엎을 경우 자체로 비료가 되고 토양개량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 5월 말이나 6월 초 갈아엎을 경우 종자를 재파종하지 않아도 10월경 다시 싹이 돋아나기 때문에 따로 파종할 필요가 없는 것도 장점이다. 연구회는 부산시의 푸른들가꾸기 운동과 연계해 자운영농법을 시행하고 있다.

또한 쌀겨농법은 모내기한 직후 팰릿 쌀겨를 이용해 영양분을 공급하고 동시에 제초작업도 할 수 있게 하는 농법이다. 논을 갈기전에 300평당 100kg 살포하고 이양후 3일 이내에 300평당 100kg을 동력 살포기를 이용해 논 전면에 살포하면 쌀겨로 인해 미생물이 증식되고 비료효과를 오래 지속시키는 효과가 있다. 또한 쌀겨가 수막을 형성해 잡초를 억제시킴으로써 제초제를 쓸 필요가 없다. 토양 산성화도 막고 토착 미생물을 번식시켜 고품질 친환경 도래지쌀 생산에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다.

둘째, 제초제 투입의 최소화다.
친환경쌀생산의 최대 적은 제초제다. 연구회는 이를 위해 우렁이농법, 쌀겨농법, 종이멀칭 등과 같은 친환경 농법을 채택했다.
우렁이를 논에 방사해 우렁이로 인한 제초효과를 기대하는 우렁이농법은 기존 오리농법 등에 비해 제초효과가 상당히 높고 벼에 주는 피해도 없어 효과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렁이는 모내기한 후 7일 이내에 방사하고 우렁이가 적응이 끝날 때까지 논물을 7~10cm 정도로 유지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종이멀칭 이앙은 생분해성 멀칭종이를 논에 피복하는 동시에 모를 심는 방법으로 잡초 발생을 원천적으로 막아 제초제 사용이 필요 없는 기술이다. 멀칭종이는 2개월이 지난 후에 자연분해가 되므로 친환경적이며 잡초 방제율은 98%에 이른다.
셋째, 병해충종합관리(IMP)다.
올해 농림부 친환경지구조성사업단지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연구회원 농가 10ha이 벼 병해충종합관리사업 시범단지로 지정됐다.

병해충에 강한 품종을 도입하고 녹비작물 파종 및 감자와의 윤작 그리고 친환경광역살포기 등 모든 방법을 종합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특히 광역살포기는 방사의 범위가 100m 이내로 짧은 시간에 넓은 면적을 방제할 수 있어 인근 농가의 병해충의 유입도 상당부분 줄일 수 있어 올해 도입했다.
또한 발효퇴비사, 미생물배양장, 미생물배양액 저장창고 등도 갖춰 친환경 도래지쌀 생산을 위한 종합적 기반구축 사업을 진행중이다.

쌀 저온저장고 등 수확후 관리로 제2의 품질 탄생

연구회는 제2의 품질인 수확후 품질관리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도래지쌀연구회의 교육 등 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이창수 지도사는 “쌀의 식미기간은 12일 전후이기 때문에 밥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도정후 12일전에 먹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면서 “12일전에 도래지쌀을 맛있게 먹게 하려면 저온저장쌀 주문이 있을때 바로 도정해 판매하는 것이 최선이다”고 했다.

연구회는 이미 친환경농업지구조성사업의 자금과 자조금을 합쳐 명지동에 연구회 전용 출하저장센터를 건립하고 있다. 이미 건물은 완성된 상태이며 쌀 저온저장고 공사도 한창 진행중이다. 주황용 회장은 “올 12월이면 완료될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 재고분을 시범저장해 놓고 자체마케팅을 통해 판매할 계획”이라고 했다.

소포장을 선호하는 추세에 따라 연구회에서 생산하는 도래지쌀의 소포장 상품화도 추진하고 있다. “핵가족화와 독신 증가, 마트나 대형할인점에서 쌀을 구매하는 경향이 높아지기 때문에 적량을 구매해서 맛있게 먹겠다는 추세다”면서 “소비자 기호도에 발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소포장 상품화를 진행하게 됐다”고 했다. 현재 소포장 개발 사업은 90% 이상 진행된 상태이며 내년이면 상품이 출시될 것으로 보인다.
기능성 쌀 개발에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제는 쌀도 그 품종 특성에 따라 다이어트 쌀, 김밥용 쌀, 키 커는 쌀 등 기능성시대다. 차별화된 마케팅을 위한 준비인 셈이다.

법인설립 등 유통인프라 구축하고 연구회 자체 판로망 개척

“아직 저장출하센터가 완공되지 않아 회원들이 생산한 쌀은 대부분 도정공장에 출하를 했지만 내년부터는 연구회 쌀을 자체 수매해 직접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주황용 회장은 FTA 등으로 정부수매에만 의지할 수 없는 국내 쌀산업 상황을 고려할 때 연구회 등 농가단체가 직접 판로를 확보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연구회원중 17명이 출자를 해 지본금 10억원의 「영농법인 명지농협도래지쌀작목회」라는 법인도 설립했다. 연구회가 지금까지 생산에서부터 수확후 관리까지 상품기획 차원에서 쌀 품질을 관리하는 것도 모두 자체 판매망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명지는 한자로 땅을 울린다는 뜻이다. 지금처럼 차근차근 준비해 나간다면 친환경도래지쌀연구회가 부산땅을 아니 대한민국 땅을 쿵쿵 울릴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성장잠재 요인

1. 자체 마케팅 기반 마련
연구회 전용 출하저장센터가 모두 완료될 경우 이곳이 연구회의 물류기지로 역할을 하게 된다. 앞으로 이 센터에서 연구회원들의 벼를 전량 수매해 이웃 도정공장과 공동으로 판매, 마케팅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특히 저온저장고는 소비자와 직거래를 위한 필수 시설로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내년의 연구회 활동 모습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2. 자본금 10억의 법인 설립
개방화에 따른 영향으로 쌀의 정부수매 시대가 마감되고 직접 판매망을 확보해야 하는 시대로 돌입했다. 대형유통업체와의 거래에서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 법인이다. 다행히 연구회는 올해 자본금 10억의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했다. 개방 파고를 헤쳐 나갈 대형 선박이 건조된 것이다. 남은 것은 이 선박을 어떻게 잘 조정해서 파도를 헤쳐나가느냐다. 본격적으로 연구회의 역량이 시험대에 오를 시기가 다가온다. 그러나 시험에 통과하면 그때부터는 앞서나가게 된다.

3.기능성 쌀, 소포장 상품화 진행
쌀도 목표마케팅 시대가 열릴 것인가. 쌀이라고 다 같은 쌀이 아니다. 기능성 쌀이다. 특정 기능을 원하는 소비층에게 차별화된 마케팅으로 판매망을 확보할 수 있다. 될 수 있으면 적은 양을 자주 사 먹는 쌀 소비 트렌드에 발빠르게 적응해 나가는 모습이 희망적이다. 자체 마케팅이 이뤄질때를 대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기능성과 소포장, 이 두가지 사업을 유기적으로 연계해 마케팅을 펼칠 경우 연구회의 경쟁력은 배가 될 것이다.


◇성공포인트
1. 친환경사업단지 지정으로 든든한 지원체계
올해 친환경지구조성사업단지로 선정되어 친환경 재배를 위한 생산 및 수확후 관리 인프라 구축이 용이했다. 벼농사의 특성상 광대한 면적을 친환경적으로 관리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사업단지로 지정됨으로 해서 재정적 기술적 지원을 체계적으로 받고 있다. 설립된지 얼마되지 않은 연구회의 결속력도 커지는 효과를 보고 있다.

2. 고품질쌀 생산의 기본인 비옥한 토양
낙동강 하구 삼각주가 연구회의 활동무대다. 저투입 친환경농업을 위해서는 토양비옥도가 뒷받침되어 주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익이다.

3. 벼+감자의 윤작 연작방지와 토지이용률 증대
가공용 감자를 벼 후작으로 심어 연작도 방지하고 토지이용률을 높이는 2중의 이익을 보고 있다. 가공용감자는 가공업체와 계약재배하므로 가격불안정 요인을 없애 농가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4. 기술센터의 농촌체험 프로그램 적극 수용
기술센터에서 추진하는 다양한 소비자 농촌체험 프로그램을 적극 수용, 소비자들에게 도래지쌀을 체험적으로 알릴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이는 곧바로 아파트 단지 등 소비자와의 직거래로 이어지고 브랜드 홍보효과도 톡톡히 누리고 있다.


◇담당 지도사에게 듣는다 - 부산시농업기술센터 이창수 지도사

도래지쌀 마케팅 위한 유통인프라 지원에 올인

기술센터에서 이창수 지도사는 거의 막내다. 젊다는 얘기다. 기존의 관행에 구애받지 않고 창의적 아이디어를 많이 내 놓는다. 단순히 젊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농업을 이해하는 폭이 상당이 넓으면서도 깊이가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 농업문제를 생각하는 구조가 다른 것 같다.
이 지도사는 농업인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안정된 판로확보에 있다고 보고 이들을 위해 기술센터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다.

결론은 농업인이 자신있게 상품을 내 놓을 수 있도록 품질관리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이 지도사는 그 답을 유통인프라의 구축이라고 본다.

“쌀 저온저장고 설치와 소포장재 개발, 기능성 쌀 상품기획 등 맛 좋은 쌀을 제값 받으면서 판매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도사가 마케팅과 유통에 대한 상당한 지식과 경험이 있어야 하겠지요. 저는 앞으로도 이러한 분야에 대해 더욱 공부하고 교육을 통해 연구회 등 농업인에게 전파하도록 노력할 계획입니다” 이지도사는 쌀 저온저장고의 확보가 농가 개별 소형 RPC 도입 등 다른 지원사업보다 더 경제적이면서 효과가 크다고 보고 있다.

이지도사는 또한 쌀의 경우 정부수매 시절은 이제 지났다고 본다. 따라서 농가단위의 독자적 판매망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결국 고품질을 기반으로 차별화된 상품기획과 마케팅, 고객관리 체계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인데 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유통인프라라는 것이다.

이 지도사는 내년까지 연구회가 자체적으로 판매망을 확보하고 본격적인 마케팅에 돌입할 수 있도록 자신의 모든 역량과 노력을 쏟아 부을 예정이다.
센터에서 추진하고 있는 모내기 체험 행사, 홍보판촉 행사 등은 물론 관광과 연계한 체험 프로그램도 개발, 직거래를 위한 고객확보 작전도 세워놓고 있다. 나아가서는 전자상거래의 길을 열어줄 쇼핑몰 운영도 고려하고 있다.

“젊은 생각을 가졌고 온 몸을 던져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이 지도사가 잠깐 자리를 비운 틈에 직속 상사인 김정국 계장이 한 말이다. 정말 그렇게 보였다.
패기와 열정이 있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 친환경도래지쌀연구회원들에는 그가 행운아이기도 하겠다.
저작권자 © 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