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와 만나기로 한 정찬모(46세, 충북 진천군 상신리)씨댁은 충북 진천 톨게이트 인근에 위치한 안골이라는 작은 부락에 위치하고 있다.

정 씨의 부인인 홍반(26세, 베트남)씨를 성혼시킨 한익환 세계항공 대표는 정 씨가 마흔이 넘은 나이에 결혼했고 힘들게 자식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정 씨는 부인 홍반 씨와 결혼 후 예상보다 늦게 딸을 얻었는데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결혼직후 알게된 병때문에 2년동안 치료를 하다보니 아이가 늦었다는 것. 다행히 딸 은주(3세, 여자)를 낳았고 지금은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한 대표는 소개했다.

일본 사람이 운영하는 석재공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정 씨는 대리석을 절단하고 가공하는 등 90년대부터 이 업에 종사했고 지금은 이 분야에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한 대표는 오늘 정 씨가 일이 많아 공장에서 나올 수가 없기 때문에 점심시간 이후에 만나면 된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정 씨는 키가 작고 나이가 많아 베트남에서도 아가씨들에게 외면당한 바 있다”고 밝히고 “하지만 지금의 부인인 홍반 씨를 만나 결혼했고 딸도 낳았으니 앞으로 행복하게 살았으면 한다”고 말을 건넸다.

또 한 대표는 “정 씨의 부모가 십수 년 다리를 제대로 못쓰고 몸이 많이 아프기 때문에 부인 홍반 씨가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며 “여하튼 이제는 부모님을 잘 모시고 행복하게 살아주는 부인에게도 감사한다”고 덧붙였다.
정 씨의 집은 인근 옆집들과 달리 새롭게 만든 집이었다. 마루가 넓어 보이고 농촌 시골집이라는 생각보다는 현대화된 집처럼 느껴졌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부인 홍반 씨가 먼저 인사를 했고 딸처럼 보이는 은주가 기자를 보고 안방으로 줄행랑을 쳤다. 부인 홍반 씨 옆에 앉자있던 시어머니로 보이는 고순송(74세)씨도 간단하게 인사를 했다. 시어머니 고 씨도 손녀처럼 낯선 사람이 불쑥 들어온 것에 대해 매우 못마땅한지 목소리에 힘도 없었고 표정에서 싫은 기색이 역력했다.

고 씨는 “은주가 낯설어서 그러니 그냥 앉아요. 이리와. 내가 안아줄게”라고 손녀를 불렀다. 며칠 전부터 어지러움 증 때문에 고생한다는 고 씨는 몹시 쇠약해 보였다. 얘기 도중에도 고 씨는 손녀에게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하고 은주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는 등 손녀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느껴졌다.

기자가 “아버님이 보이지 않는데 어디 가셨습니까?”라고 질문하자 고 씨는 “지난해 8월에 돌아갔다. 몸이 아프고 좀처럼 걷지도 못했다. 4년 동안 치매도 있었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또 기자가 “왜 아들이 장가를 늦게 갔습니까? 이유가 있습니까?”라고 질문하자 고 씨는 “본인이 장가 안 간다고 고집을 피웠다. 안 간다고 하니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부인 홍반 씨는 한국생활 5년에 접어들었지만 한국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고 씨는 말했다.
고 씨는 “한글 공부방에 보냈는데 가지 않겠다고 해서 지금껏 말을 제대로 못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최근 홍반 씨의 친정어머니가 3개월 동안 정 씨의 집에 머물다가 베트남으로 귀국했다고 한다.

고 씨는 “지난해에도 3개월 동안 며느리를 보고 싶어 한국에 왔었다”며 “내년 1월에 다시 오실 예정이다. 사돈 어르신은 한국 음식을 매우 잘 먹고 있는 동안 매우 즐거워했다”고 밝혔다. 홍반 씨는 기자에게 “베트남에 가 본적이 있는지 궁금하다”며 “고향이 호치민이고 5남매 중 막내딸”이라고 설명했다.

또 홍반 씨는 “아기를 매우 좋아한다. 한글공부보다는 막상 아기를 낳아보니 너무 바쁘고 할일이 많아 한글공부방에 다니지 않았다”며 “한국 사람들은 너무 착하고 부지런하다”고 덧붙였다.

점심시간 이후 정 씨의 석재공장에 방문했다. 소문이 났는지 공장 직원들이 멀리서 인사를 했고 신문에 나오냐고 질문했다. 정 씨는 쑥스러운지 공장 입구 쪽으로 기자를 불러냈다.

정 씨가 일하는 석재공장은 일본 사람이 대표인 외국기업이다. 정 씨는 “대리석을 일본으로 공급하고 있으며 오랫동안 이 업에 종사하고 있다”며 “많은 돈을 받지는 못하지만 기술 때문에 여기저기서 오라는 석재공장이 많다”고 자랑했다.

기자가 정 씨에게 국제결혼을 하게 된 동기를 묻자 정 씨는 “동네 이장이 국제결혼을 원하는 사람들은 신청하라고 해서 베트남에 갔다”며 “한국 여자들은 너무 경제력을 따지고 성격이 까다롭다. 그래서 착한 베트남 아가씨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정 씨는 부인이 매우 착하고 부모에 대한 공경심이 대단하며 처음부터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했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정 씨는 신혼 때부터 부인 홍반 씨의 마음고생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정 씨는 “부인이 한국에 온지 3개월 만에 아버지가 치매가 왔고 그 때부터 부인의 고생이 시작됐다”며 “아버지를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부인이 항상 곁에 있었고 돌아가실 때 까지 아버지의 손과 발이었던 부인에게 감사하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정 씨는 “최근 농촌으로 시집온 베트남 여자들이 도망가 난리도 아니었다”며 “우리 부인처럼 착하고 부모를 잘 섬기는 여자는 없을 것이다. 주말에 부인과 봄나들이를 갈 생각”이라고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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