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총각 결혼사례를 취재하기로 한 시간은 늦은 오후 6시.
오늘 방문하기로 한 김영섭(39세, 충북 청원군 강외면 정중리)씨 댁은 충북 청주시와 인접한 청원군 강외면으로 시골 농촌의 모습은 아니었다.

세계항공 한익환 대표와 도착한 김씨의 집은 번듯한 양옥집이었다. 한익환씨와 본인이 국제결혼 성공사례를 취재하던 평소와 달리 오늘 오후 6시에 김씨 집에 방문하기로 한 것은 부인이 인근 공장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었다고 한 대표는 전했다.

한 대표는 “부인 부미옥씨가 인근 공장에 나가 일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최근까지 전혀 들은바 없고 모르고 있다”고 밝히고 “대부분 국제 결혼한 남편들이 한국말도 못하고 지리도 익숙하지 않은 부인들에게 나들이도 잘 시키지 않고 특히 돈을 벌어오라고 강요하지 않는데 의외(?)”라며 설명했다.

남편 김씨가 한익환 대표와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 씨는 30대 중반되는 마스크에 잘생긴 얼굴이었다.
한 대표가 “부인 왔습니까?. 집에 왔어요?”라고 질문하자 남편 김 씨는 “예. 지금 있어요. 공장에서 막 왔습니다. 어서 들어오세요”라고 말을 건넸다.

계단을 밟고 양옥집 2층으로 올라가 막 문을 열자 김 씨의 아들인지 방바닥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아들 이름은 김태완(3세). 아들 태완이는 자동차를 매우 좋아한다고 김씨는 설명했다.
김 씨의 어머니와 아버지도 함께 살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거동이 어렵다고 김씨는 설명했다.

어머니는 “어서 오세요. 방바닥이 차가워서 이쪽으로 오세요”라고 자리를 권했다. 부인 부미옥씨는 주방에서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김 씨는 “한국 이름은 부미옥이라고 결정해 호적에 올려놓았다”며 “베트남 이름은 펴밈옥이었다”고 설명했다.

부인 부미옥씨는 인근 어묵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까지 얼마나 받는지도 모른다는 부미옥씨는 “60~70만원정도 생각하고 있다”며 “어묵을 만들고 소일로 삼는 것이 매우 재미있고 즐겁다”고 설명했다.
부미옥씨는 고향이 베트남 안짱시이며 형제는 10남매라고 했다.

또 부미옥씨는 베트남의 전형적인 순수 농업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남편 김씨는 1남 3녀의 장남이다.
아버님께 아들이 형제 중 몇째인지 질문하자 어머님이 귀를 먹었다며 외아들이라고 대신 말을 건넸다.

질문을 알아들었는지 아버님은 “나이가 올해 86세고 손자가 생겨 매우 기쁘다”며 “우리 아들이 이쁜 며느리와 결혼하고 손자를 낳아 너무 즐겁다”고 설명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며느리를 끔찍하게 생각한다”며 “그러나 며느리 때문에 많은 고생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또 어머니는 “무조건 시부모가 며느리에게 말 안하고 사는 것이 최고다. 나도 요즘 그렇게 행동한다”며 “며느리와 나때문에 마음 고생한 아들도 고생했고 이제는 마음이 후련 하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지난 2003년 7월 지금의 부인 부미옥씨를 만나 결혼했다.

결혼이 매우 늦은 이유를 김 씨는 “어머니가 걷지도 못하고 수십년 간 방안에서만 계셨고 아버님도 소리를 듣지 못해 누가 본인과 결혼을 했겠냐”고 반문하며 “부인이 너무 고생 많이 했고 특히 말도 안 통하는데 가족들과 싸웠으니....”라고 그동안의 사연을 설명했다.

김 씨는 계란 유통업에 종사한다. 예전에는 계란을 판매하는 곳에서 종업원으로 몇 년간 일을 했고 3년 전부터 청원군에 소재한 3~4개 지역(면)을 맡아 계란을 공급하고 있는 총판 대표다.

한 대표는 “외국 며느리를 찾게 된 동기는 남편 김 씨의 주변 환경이 너무 열악해 국제 결혼하도록 권고”했다며 “이제는 아들도 낳고 부인이 점차 적응하고 있어 결혼시킨 당사자로서 매우 고맙다”고 강조했다.
부인 부미옥씨는 “베트남보다 한국이 좋다”며 “한국에서 행복하게 살게요”라고 전했다.

남편 김 씨는 “하루 8시간이상 일해도 몇 푼 밖에 못 버는 것에 대해 안타깝다”며 “본인의 수입은 알아서 사용할 수 있도록 가족들이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김씨는 “일년에 처갓집에 50~100여만원을 보내주고 있다”며 “부인이 부모님께 늘 효도하고 있어 마음을 대신해 작은 돈이지만 계속 보내줄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김 씨는 부인 부미옥씨가 어묵 공장에 나가 일하는 것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김 씨가 부인이 공장에 나가든 무엇을 하든 관여하지 않는다는 말은 결혼생활에서 얻은 값진 교훈을 알려주는 대목이었다.

김 씨는 “예전에 부인이 매우 고집을 피우고 말도 안 듣고 어머니와 실랑이를 했었다”며 “하지만 모두가 본인이 잘못한 것 이고 특히 두 사람 사이에서 제가 교통정리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고 강조했다.
세계항공 한익환 대표도 김 씨의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았고 특히 부인 부미옥씨의 결혼 생활 적응과정이 매우 어려웠던 것만은 사실이었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베트남 여자들이 매우 고집이 세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아닌 것으로 안다”고 밝히고 “다른 사람들처럼 분명 언어 소통이 문제이고 문제점은 바로 문화 차이”라고 설명했다.

김 씨는 농촌 총각 국제결혼과 관련, “국내에서 결혼 못해 국제결혼을 하기 위해 외국까지 나가는 농촌총각들에게 정부에서 무엇인가를 해줘야 한다”고 밝히고 “사실 농촌에 여성들이 시집와 살기도 어렵기 때문에 주위 여건은 매우 열악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또 김 씨는 “국제 결혼한 남자들이 본인 스스로 자세를 낮추고 특히 부인에 대한 배려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분명 가족들의 사랑과 관심이 있을 때 부인들은 하루가 다르게 적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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