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김제시 용지면 효정리 내효마을, 결혼 14년차 주부이자 농민으로 마을 부녀회장을 맡고 있는 마쯔나가 가쯔꼬(44세, 일본)씨 가족의 보금자리다. 도로안내를 능숙하게 해줬다.

개 짖는 소리에 마당 반대편 비닐하우스에서 작업 중이던 가쯔꼬씨가 장갑을 낀 채 헐레벌떡 반갑게 뛰어나온다.
훤히 보이는 농기계 창고에는 트랙터, 이앙기 등이 가쯔꼬씨 농사의 규모를 말해 준다. 차도 두 대다.
가쯔꼬씨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서는데 인기척이 들린다. 가쯔꼬씨의 시어머니다.

올해 일흔일곱인 시어머니는 사십 년 전 서른일곱 새파란 시절에 불의의 사고를 당해 방 안에서만 생활한다. 그래서 강아지가 그렇게 요란하게 짖어도 못 나왔던 것이다. 남편 안정순씨(44)와 병든 노모, 그리고 2남(13, 9) 1녀(11) 이렇게 여섯 식구가 그녀의 가족이다.

마을 부녀회장 중책 맡은그녀…부녀회 활성화에 일등공신
“부녀회장 하신 지는 얼마나 됐어요?” “한 것도 없는데 쑥스럽네요. 올해 4년쨉니다.”
효정리 내효마을에는 모두 40여 가구가 산다. 가쯔꼬씨가 마을 부녀회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된 데에는 용지면 연합부녀회장과 이장의 추천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쯔꼬씨는 어떤 역할을 합니까?”

주로 하는 일은 소금, 비누, 생활용품 등을 공동구매해서 배달한다.
그전에 부녀회장은 마을회관에서 마이크로 방송해 찾아가라고 했지만 가쯔꼬씨는 자신이 직접 배달한다. 부녀회장으로 특별히 하는 게 없는 거 같아 주민서비스 차원에서 시작한 일이다.

“주민들이 무척 좋아하세요. 하루 일이 끝나고 노곤할 때는 마을회관까지 나오는 것도 귀찮아지잖아요.”
그리고 2~3개월 간격으로 개최되는 용지면 연합 부녀회의에도 참석한다. 회의가 끝나면 전달사항을 컴퓨터로 정리해서 집집마다 각자 우편함에 넣어준다.

요즘은 이장님이 일일이 방송을 해주기 때문에 한결 수월하다.
“면민의 날이나 김제 지평선 축제 등 큰 행사가 생기면 이장 사모님과 마을에서 봉사하는 몇몇 사람들이 있어요. 그분들과 논의해서 일을 처리합니다. 부녀회가 매우 활성화되어 있는 편이죠.”

노인정에서 여행을 갈 때도 부녀회에서 음식 준비를 한다. 다행인 것은 마을의 노인들이 아직 정정하신데 시어머니만 불편한 몸으로 집안에 계신다. 함께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어머니를 보면 마음이 무척 아프다.
시어머니 이야기를 하는데 가쯔꼬씨의 눈가에 살짝 물기가 어린다.

“우리 며느리는 내 친구고 내 손발이여. 하루에도 몇 번씩 화장실 데려다 주지, 때 되면 파마 약 사서 머리 해 주지, 목욕탕 같이 다니며 등 밀어 주지. 늦게 까지 일해 항상 피곤할 텐데 십몇 년 동안 변함없이 잘해 주니 고맙지.”

시어머니의 칭찬에도 불구하고 가쯔꼬씨는 항상 죄스럽다. 경제적으로 부족하니 마음뿐이다. 그러나 마음으로라도 평화를 드리기 위해 노력한다.

시어머니 수발하며 살림 살고 농사지으랴, 거기다 부녀회 일까지 맡았으니 아이들 셋이 슬슬 걱정되어 질문을 던졌다. “아이들도 문제없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며느리가 애들 손잡고 학교까지 데려다 줬는데 이런 엄마가 어딨어.” 천성적으로 움직여야 되는 사람이다. 일 욕심도 많고 성취욕도 강하다.

뇌종양 진단 받은 남편
기도와 사랑으로 치유하다
“설마 했는데 남편이 뇌종양 진단을 받았는데 3개월밖에 살 수 없다는 거였어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죠. 전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지만 절망만 하고 있을 순 없잖아요. 부모님들도 안 좋으신데 남편까지 그러니 하늘이 정말 노랗게 보였습니다.”

가쯔꼬씨의 기도가 통했던 것일까? 열심히 병원과 집을 오가며 아픈 가족들을 위해 헌신했다. 그랬더니 남편은 정말 기적적으로 완치되어 일어났다.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스트레스 받지 않고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기르고 싶다. 공부를 더 시키고 싶어도 경제적인 부담이 많아 못 가리킨다.

어느 날 큰애가 학교에 갔다 오더니 씩씩대더란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친구들이 자기를 일본원숭이라고 놀렸다는 것이다. 어린 마음에 상처를 받은 것이다.
“그래서 차분히 붙잡고 앉아 설명을 해줬죠. ‘엄마에겐 다른 엄마가 가질 수 없는 장점이 있다. 엄마가 일본인이라 일본어도 배울 수 있고, 일본 사회, 문화에 대해서도 알 수 있으니 얼마나 좋니’ 하고요.”
오히려 딸애는 엄마가 일본인이어서 친구와 선생님의 관심의 대상이 되니 더 좋단다. 가쯔꼬씨는 딸이 제일 믿음직스럽다.

조직문화도 벌써 이해하고 있다. 마치 어른 같다. 가쯔꼬씨가 일본어로 말하면 아이들은 한국어로 대답한다.
특별히 안 가르쳤지만 들을 줄은 아는 셈이다. 아이들이 커 가면서 일본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서서히 가르쳐 줄 생각이다. <농림부 자료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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